
정현이 15일 부산 스포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린 부산오픈 챌린저대회(총상금 20만달러) 단식 1회전에서 에밀 루수부오리(핀란드)를 상대로 스트로크를 날리고 있다. 부산오픈챌린저 대회조직위원회 제공
화려했던 시간과 멀어져 있다. 재기를 위한 몇 번의 몸부림도 실패했다. 그러나 건강한 모습으로 코트 복귀를 노리는 정현(478위)이 테니스를 대하는 자세만은 변함 없다.
부산오픈 챌린저대회(총상금 20만달러)에 와일드카드로 기회를 얻어 출전한 정현이 15일 부산 스포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린 단식 1회전에서 에밀 루수부오리(핀란드)를 2-0(6-2 6-4)으로 눌렀다.
부상으로 오랜 암흑기를 걷던 정현에겐 의미가 큰 승리였다. 정현의 국내 대회 출전은 지난해 10월 ATP 시슬리 서울오픈 챌린저 이후 처음이었다. 정현은 그때 대회(2회전 진출) 이후 처음으로 2회전에 올랐다.
정현은 경기 직후 “많은 팬들이 늘 응원해주는데 매번 한 경기만 하고 갈 때가 있어서 마음의 짐이 있었다”며 기분좋게 웃었다. 정현은 2015년 이 대회 우승자다. 대회 센터코트 복도에는 정현의 우승 사진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정현은 “부산에서는 좋은 기억도 많다. 많이 응원도 해주셔서 감사하다. 부산 팬들이 기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현은 2017년 넥젠파이널스에서 우승했고, 2018년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에서는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꺾는 이변을 쓰며 4강 진출하는 등 한국 테니스 역사에 굵직한 이정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후 발, 발목, 허리 등 부상이 끊이지 않으면서 상승세가 꺾였다. 몇 번의 복귀 시도도 부상 재발로 무산되며 내리막을 걸었다. 그러는 사이 1996년생인 정현도 20대 후반이 됐다.
정현은 포기하지 않고 지난 시즌 하반기부터 다시 코트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이번 시즌 들어서는 국제테니스연맹(ITF) 퓨처스 대회에서 세 차례나 우승하며 기대감을 높인다. 정현이 우승한 ITF 대회는 하위 레벨 대회였지만 기량을 체크하는 동시에 몸 상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정현은 “그동안 복귀할 때마다 안 좋아져서 바로 재활을 했다. 경기에 일찍 질 때도 많았다”면서 “(우승한 대회는)낮은 등급의 대회였지만, 결승까지 연달아 경기를 소화면서도 부상이 재발하지 않으면서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현이 15일 부산 스포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린 부산오픈 챌린저대회(총상금 20만달러) 단식 1회전에서 에밀 루수부오리(핀란드)를 상대로 서브를 넣고 있다. 부산오픈챌린저 대회조직위원회 제공
이번에 1회전에서 상대한 루수부오리는 한때 세계랭킹 37위까지 찍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지만 손쉽게 요리했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번 대회는 앞서 우승한 대회 보다 레벨이 높은 ATP 챌린저 대회다. 챌린저급 대회 출전 역시 서울오픈 이후로 처음이다. 정현은 “오랜 기간 부상으로 아팠고 날이 추울 때는 몸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열을 내면 괜찮다. 부상 트라우마를 떨쳐가고 있다. 지금은 통증이 없으니 경기에만 포커스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부산오픈은 챌린저 중에서도 큰 대회 속한다. 투어 타이틀이 있는 선수, 100위권 선수들도 출전한다”며 “대회 전에는 이런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상태일까라는 의문이 있었다”며 이날 승리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팬들에게 감사도 전했다. 정현의 경기에는 평일 낮 경기임에도 약 500여 명이 몰려 응원했다. 정현은 “국내에서 하는 대회 부담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부담을 더 갖는 것 같다. 항상 복귀할 때마다 많은 분들 찾아와주시고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재기를 꿈꾸는 정현의 도전은 계속된다. 정현은 이번 대회 목표를 묻는 질문에 “뭔가를 얻기 위해, 나를 테스트하기 위해 대회에 나간 적은 없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서 챌린저 레벨에서 경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다시 한 단계씩 밟아가려 한다”고 다짐한 정현은 부산오픈 이후 14일부터 개막하는 광주오픈 챌린저까지 출전 일정이 잡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