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동작만 본다고? 심리까지 AI로 분석하는 축구 시대 도래

입력 : 2025.04.21 07:21 수정 : 2025.04.21 07:49
로봇 축구 자료사진. 게티이미지

로봇 축구 자료사진. 게티이미지

“선수들이 싸우는 의지가 부족했다.”

경기 후 전문가나 해설위원의 단골 멘트다. 그러나 이 말은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할까. 축구에서 몸싸움, 패스, 슈팅처럼 심리 상태나 리더십, 감정 조절력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최근 유럽 축구 현장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로 모색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영국 매체 가디언이 21일 분석했다. 특히 브라이턴을 비롯한 일부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선수를 선발하거나 스카우트할 때 단순한 기술·피지컬 데이터를 넘어 심리적 프로파일을 분석하는 첨단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1부리그에서 활약한 전직 수비수 야우 아만콰는 이러한 심리 분석 혁신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현재 축구 해설자이자 분석 기업 ‘인사이드 아웃 애널리틱스’ 공동 설립자인 그는 “전술이 아니라 심리에 집중해 경기를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가 펼쳐진다”고 말한다. 아만콰는 “선수가 20m 슛을 허공에 날린 뒤 45초 후 팀 동료가 등을 토닥이는 짧은 장면은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경기 중 조용한 리더십이 발휘된 전형적인 예”라며 “선수로서 익힌 심리적 단서와 행동은 언뜻 보이지 않지만,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아만콰는 심리학자 게이르 요르데트 교수와 함께 지난 6년간 전 세계 프로경기 수천 시간을 분석했다. 프리미어리그와 여자 슈퍼리그 전 경기 영상을 정밀 분석해 총 10만 건 이상 개별 행동을 데이터화했다. 이를 통해 선수들의 감정 조절, 리더십, 자기 인식 등을 수치화할 수 있는 ‘행동 기준 지도’를 구축했다. 행동 기준 지도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센터백 100명의 다양한 경기 영상 수백개를 분석한 뒤 성격 및 멘탈 유형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 기준을 활용하면 예컨대 “이 수비수는 감정 조절력이 리그 내 동일 포지션 선수 중 상위 5%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 요르데트 교수는 “단순히 행동 횟수를 세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비교할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제는 특정 행동이 어떤 맥락에서 얼마나 드물거나 특출난지 판별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 분석 기법은 이미 바이에른 뮌헨, 브라이턴 등 일부 구단이 실전 적용 중이다. 바이에른에서는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 시절 심리 담당자였던 막스 펠카가 분석 보고서를 코칭스태프에 제공했다. 그는 경기 후 각 선수의 자세, 고개 방향, 손 제스처 등을 종합해 한 페이지 분량의 ‘심리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는 실제 선발 라인업 결정에도 반영됐다. 펠카는 “전술, 체력, 통계처럼 심리도 숫자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 수비수가 자신의 바디랭귀지를 바탕으로 어떻게 리더십을 표현할 수 있을지 질문했을 때, 이 데이터는 그 출발점이 되어줬다”고 밝혔다. 현재 그는 브라이턴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선수들을 분석하며 파비안 휘르첼러 감독에게 주요 심리 행동 요약을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초기에는 모든 데이터를 수작업으로 분류·분석했지만, 최근에는 AI 기술이 본격 투입되며 효율성과 정확도가 크게 높아졌다. 요르데트 교수는 “이제는 동시에 여러 팀의 경기를 병렬 분석할 수 있게 됐고, 구단이 스카우팅 중인 선수의 심리 데이터를 사전에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AI 분석을 통해 특정 선수가 이적 대상으로 적합한지, 혹은 예상치 못한 리스크(경기 중 분노 폭발, 위기 상황에서 책임 회피 등)를 사전에 발견할 수 있다”며 “‘좋은 영입’인지 ‘심리적 적색 경고’가 필요한 건지 판단을 도와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경기 승패는 기술과 체력, 전술로 결정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두려움, 책임감, 자신감, 리더십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이제는 그것마저 숫자로 분석하고, 전략의 일부로 만들려는 축구계의 진화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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