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 ‘병훈의 하루’ ‘직사각형, 삼각형’을 연출한 배우 겸 감독 이희준.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연기에 이어 연출력도 훌륭하다. 단편 ‘병훈의 하루’와 중편 ‘직사각형, 삼각형’으로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배우 겸 감독 이희준이 연출작으로 관객들과 설레는 첫만남을 갖는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경외심이 커요. OTT 등장 이후 극장 가는 관객이 줄어드는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건 변함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주어진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에요.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영화인인가 싶은 게, 제가 구상하고 만드는 이야기들이 영화 형식을 띄고 있더라고요. 이번에 관객들을 처음 만나는데, GV(관객과 대화)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너무 떨리고 설레요. 제 작품을 보면서 ‘맞아. 어느 집이나 저래. 그 얘길 재밌게 담아줬네’란 ㅁ라을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희준은 1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연출작 ‘병훈의 하루’ ‘직사각형, 삼각형’을 만든 이유부터 작품에 담긴 의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단편 ‘병훈의 하루’ ‘직사각형, 삼각형’을 연출한 배우 겸 감독 이희준.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 “강박증 다룬 ‘병훈의 하루’, 제 공황장애 경험에서 시작됐어요”
‘병훈의 하루’는 17분짜리 단편이다. 강박증을 심하게 앓는 ‘병훈’(이희준)이 의사의 제안으로 자신의 강박을 이겨내기 위해 명동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저는 공황장애가 있어요. ‘병훈’ 같은 강박증은 아니지만, 공황장애를 4~5년 앓았는데요. 이 증상을 스스로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여야 좋을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극 중 ‘병훈’도 ‘저 아파요’라고 계속 사람들에게 고백하는데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야지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 경험이 반영된 거기도 한데,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지. 정신차려!’라고 스스로 다그치고 자책할 수록 그 증세는 더욱 심해져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책하지 않는 태도를 이 작품을 만들면서 배우고 싶었고요. 저 역시 공황장애를 받아들이고 넘어섰을 때 비로소 가로수가 초록초록하게 빛나는 기억이 나는데요. 그래서 그걸 장면으로 반영했어요. 이 영화를 전주국제영화제서 본 어떤 관객 하나가 ‘내 친구가 공황장애가 있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게 됐다’며 울던 기억도 나네요.”
그는 공황장애에 대해 100m 달리기에 비유했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보다 너무 빨리 뛰어서 넘어졌다고 가정해볼게요. 그런데 무릎에서 피가 나는 거예요. ‘왜 넘어졌냐, 바보야’라고 스스로 혼내면 안돼요. 그냥 밴드 하나 붙이고 ‘왜 그렇게 빨리 뛰었을까. 내 속도를 지켜야겠다’고 다시 뛰면 됩니다. 그래서 제 주변에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런 말을 해주곤 해요. 네가 너무 잘하고 싶었구나. 그 마음 알아. 근데 그냥 넘어진 거야. 일어나서 털어버려. 그런 얘길 ‘병훈의 하루’에 담고 싶었어요.”

단편 ‘병훈의 하루’ ‘직사각형, 삼각형’을 연출한 배우 겸 감독 이희준.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 “‘직사각형, 삼각형’ 아내 이혜정 깜짝 출연, 리얼하고 재밌다고”
두번째 연출작 ‘직사각형, 삼각형’은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가족 모임에서 이야기가 해묵은 갈등으로 번지면서 벌어지는 요절복통 가족드라마다. 가족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의외의 코미디가 재미를 더한다.
“출발점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을 보고, 이런 한국영화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보다가 스님이 종이를 접어 앞으로 보면 직사각형이지만 옆에서 보면 삼각형이다란 얘길 들려줬어요. 그 두 아이디어가 뭉쳐서 지금의 영화로 완성됐어요. 가족 구성원 사이 층위를 내서 이들 관계 사이 갈등을 재밌게 보여주고 싶었고요.”
중편영화지만 캐스팅 라인업이 화려하다. 진선규, 오의식, 권소현, 김희정, 정종준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해 완벽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저와 모두 친한 배우예요. 연극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라 ‘내가 쓴 대본이야’라고 보여줬는데, 흔쾌히 출연하겠다고 해서 소정의 금액을 받고 재능기부해줬어요. 3회차에 걸쳐 찍었는데, 워낙 대사가 많아서 배우들과 일주일간 연극연습실을 대관해서 연습하고 촬영에 들어갔죠. 배우들이 전체 신을 외워줬고, 유능한 스태프들이 도와준 덕분에 계획대로 찍을 수 있었어요.”
특히 아내인 이혜정과 ‘황야’를 함께한 허명행 감독이 깜짝 출연해 웃음을 자극한다.
“마지막 장면에 두 사람이 연인으로 등장하는데요. 촬영 당시 ‘황야’ 홍보 활동을 돌 때라 출연을 부탁했어요. 대사를 그대로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게 연기해달라고요. 또 이혜정에게도 배역을 하나 맡기고 싶었는데, 욱하는 남친을 둔 카리스마 강한 이웃집 여자 역을 제안했죠. 그랬더니 스스로 세 보이는 헤어메이크업을 직접 하고 나타났더라고요. 진짜 유능한 배우들이 제 영화에 함께 해준 셈이죠. 후에 이 영화를 보고 이혜정은 ‘어떻게 이렇게 리얼하냐’며 좋아하면서도, 자신의 연기를 부끄러워하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잘하지 않았나요? 연기를 배운 적 없는데 참 다재다능한 것 같아요.”
한편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슬로건 아래 오는 5월 9일까지 열흘간 펼쳐진다. 전세계 57개국 224편(해외 126편·국내 98편)의 영화가 전주 영화의 거리를 비롯해 전주시 일대에서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