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프란시스코 이정후가 15일 오라클파크 홈에서 열린 애리조나전 7회말 2점 홈런을 때린 뒤 세리머니하며 홈으로 들어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 이정후가 지난 14일 애리조나전 부진을 깨는 홈런을 때리고 팀 동료 엘리엇 라모스와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슈퍼스타는 슬럼프 탈출도 특별하다. 이정후(27·샌프란시스코)가 ‘좌타자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홈 오라클파크에서 연이틀 홈런을 때려냈다. 이틀 연속 홈런을 포함한 4경기 연속 안타로 직전 3경기 무안타 부진을 드라마틱하게 털어냈다. 슈퍼스타의 자질을 갖췄다는 미국 현지의 평가를 새삼 증명했다.
이정후는 15일 홈에서 열린 애리조나와 경기 7회말 2점 홈런을 때렸다. 한복판 체인지업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타구 속도 162.72㎞, 총알 같이 날아간 공은 오라클파크 특유의 맞바람을 뚫고 오른쪽 담장 너머에 꽂혔다. 슬럼프 탈출을 알리는 확실한 한 방이었다. 전날에도 이정후는 오라클파크 오른쪽 담장 같은 곳으로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반등 조짐을 보였다. 이틀 동안 시즌 5·6호포를 날렸다.
최근까지 이정후는 부진했다. 지난 8~10일 이어진 원정 3경기에서 총 1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이정후의 부진이 숫자 이상으로 크게 다가온 건 그전까지 활약이 원체 꾸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시즌 이정후는 3경기는커녕 2경기 연속 무안타도 없었다. 어쩌다 안타를 못 치고 나면 바로 다음 경기 멀티 히트로 회복했다. 3경기 연속 무안타는 올해 이정후에게 낯선 경험이었다.
이정후는 11일 미네소타전에서 나흘 만에 안타를 쳤다. 1회 첫 타석 좌전 안타를 때렸다. 그러나 여전히 온전한 타격감은 아니었다. 이후 네 타석을 희생타 하나, 무안타로 마쳤다. 이정후는 시즌 첫 슬럼프에서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하려 했다. 12일 애리조나전 1회말 첫 타석 2사 1루에서 기습 번트를 시도했다. 번트 타구가 투수 정면으로 향하며 아웃이 됐다. 결과를 떠나 4번 타자다운 선택이 아니었다. 현지 중계진도 “2아웃 뒤 번트 시도는 좋지 않다. 이정후는 점수를 내줘야 하는 타자”라고 실망스러워했다. 그러나 이정후의 번트 시도는 부진 탈출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정후는 이날 번트 아웃 바로 다음 타석에서 깨끗한 우전 안타를 때려냈다.

한 샌프란시스코 팬이 이정후를 위한 한국어 응원 구호를 알파벳으로 쓴 쪽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정후의 부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틀 연속 안타로 타격감을 조율한 이정후는 13일 팀 4연패 탈출에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때렸다. 상대 투수가 2사 2루에서 앞선 타자 엘리엇 라모스를 고의4구로 거르고 이정후와 승부를 선택한 타석이었다. 이정후는 투수의 잘못된 선택을 홈런으로 응징했다. 샌프란시스코 이정후 팬클럽 ‘후리건즈’가 일제히 일어나 환호했다. 이날 ‘한국문화유산의밤’ 행사를 맞아 오라클파크를 찾은 한인 팬들도 함께 열광했다.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행사의 날에 반등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그리고 이정후는 15일까지 연이틀 홈런을 터뜨리며 부진 탈출을 확실하게 입증했다.
슬럼프 탈출 과정 자체가 극적이다. 4번 타자의 기습번트라는 ‘처절한’ 시도를 했고, 상대 투수가 앞선 타자를 고의4구로 거르는 ‘굴욕’도 경험했다. 부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던 시점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홈 팬들 앞에서 때렸다. 14일 홈런은 이번 시즌 이정후가 홈에서 때린 첫 홈런이었다. 15일 기록한 이틀 연속 오라클파크 홈런은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처음이었다. 홈런 치기 가장 어려운 구장에서 가장 부진하던 중에 홈런을 때려냈다.
이정후는 시즌 초 뉴욕 양키스 원정 3연전에서 3홈런 대활약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가 오랜 시절 찾아 헤맨 슈퍼스타가 드디어 나타났다는 찬사도 이어졌다. 이정후의 연이틀 홈런으로 샌프란시스코 팬들의 기대치는 한층 더 높아졌다. 슬럼프조차 극적으로 이겨내는 것, 그 또한 슈퍼스타가 갖춰야 할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정후 팬 클럽인 ‘후리건즈’ 멤버들이 15일 샌프란시스코 홈에서 열린 애리조나와 경기에서 이정후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