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일영(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기뻐하는 LG 선수들 | KBL 제공
프로농구의 마지막 승부가 열린 17일 잠실은 빨갛고 노란 불꽃이 섞인 열광의 도가니였다. 어느 한 쪽이 세 차례 이기고, 반대편이 거꾸로 세 차례 받아치면서 성사된 챔피언결정전 7차전. 서울 SK의 통합 우승을 바라는 팬들과 창원 LG의 창단 첫 우승을 기원하는 팬들의 함성이 서로 질 수 없다는 듯 장내를 울렸다.
하루 건너 반복되는 빼곡한 일정에 지친 양 팀 선수들이 마지막 힘을 짜낸 원동력이었다. 던지고 던지는 슛이 림을 맞추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했지만 달리고 달렸다. 마지막 승자도 젊은 피들이 상대보다 한 발을 더 뛴 LG였다.
조상현 감독이 이끄는 LG가 이날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SK를 62-58로 눌렀다.
힘겹게 4승을 채운 LG는 창단 첫 우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1997~1998시즌부터 프로농구에 뛰어든 LG는 과거 두 차례 준우승(2001년·2014년)이 최고 성적이었다. LG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10개 구단에서 우승이 없는 팀은 이제 수원 KT와 대구 한국가스공사만 유이하게 됐다.
허일영은 식스맨으로 출전 시간(평균 17분38초)이 많지 않지만 기자단 투표 80표 중 32표(28.8%)를 얻어 팀 동료인 칼 타마요(23표)와 아셈 마레이(22표)를 제치고 챔피언결정전 MVP에 뽑혔다.
천신만고 끝에 달성한 LG의 첫 우승은 지독한 암흑기에 벗어났다는 신호탄이다. LG는 김종규와 김시래, 조성민이 함께 뛰었던 2018~2019시즌에 마지막으로 ‘봄 농구’를 경험한 뒤 3시즌 연속 배제됐다. 2020~2021시즌에는 꼴찌의 굴욕도 경험했다.
그러나 LG는 조 감독이 2022년 지휘봉을 잡으면서 놀라운 반등을 경험했다. 그는 과거 미국프로농구(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왕조를 이끌었던 명장 스티븐 커처럼 선수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LG를 한 팀으로 묶었다.
화려한 공격보다는 끈질긴 수비, 나홀로 플레이보다는 협업을 강조하자 거짓말처럼 성적이 올라갔다. LG는 3년 연속 정규리그 2위에 올랐다. 두 번의 포스트시즌에선 4강 플레이오프에서 핵심 전력인 아셈 마레이의 부상으로 멈췄지만 세 번째 도전에선 선수 구성에 과감한 칼을 대면서 성과를 냈다.
아셈 마레이와 유기상, 양준석만 남겨놓고 무려 8명의 선수를 새롭게 데려왔다. 그 결과 울산 현대모비스와 4강 PO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LG의 상대는 정규리그에서 역대 최소인 46경기 만에 조기 우승을 달성한 SK였다. LG의 열세가 점쳐졌지만 1~3차전을 내리 승리하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조 감독이 준비한 맞춤형 전술이 제대로 통했다.
조 감독은 SK의 최다 강점인 속공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인 공격 리바운드를 주문하고, 자밀 워니를 틀어막는 수비를 준비한 것이 챔피언결정전 내내 주효했다. 적장인 전희철 SK 감독이 “상대가 잘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다.

챔피언결정전 7차전을 응원하는 LG 팬들 | KBL 제공
위기도 있었다. 4경기 만에 우승을 확정지을 것 같았던 기세가 이어진 3경기의 패배로 흔들렸다. 챔프전 한 경기 최소 득점 신기록(48점)의 수모를 겪은 4차전부터 속절없이 밀렸다. 그러나 LG는 마지막 위기에서 웃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유기상과 양준석, 칼 타마요 등 젊은 피가 주축인 LG가 베테랑 위주의 SK보다 조금 더 생생한 플레이를 보여준 게 주효했다. 여기에 LG의 베테랑 슈터 허일영이 고비마다 3점슛을 꽂고, 마레이가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면서 LG를 응원하던 팬들이 염원하던 우승의 마지막 조각을 채웠다.
이번 우승으로 LG가 젊은 선수 위주의 선수 구성으로 새로운 강호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게 됐다. LG는 트레이드로 데려온 전성현과 두경민이 부상 등으로 제 몫을 못한 사이 유기상과 양준석 등 젊은 선수들이 새로운 주축으로 올라섰다. 챔피언결정전에서 깜짝 해결사로 발돋움한 필리핀 출신 포워드 타마요 역시 이제 20대 중반에 접어드는 젊은 선수다. 오는 11월이면 국군체육부대에서 국가대표 포워드 양홍석까지 합류하는 만큼 LG는 차기 시즌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평가다.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LG 왕조가 기대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