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박보영이 1인2역에 나서는 tvN 새 주말극 ‘미지의 서울’ 포스터. 사진 tvN
1인2역은 이제 기본이 됐다. ‘한 명 출연료로 두 명의 배우를 쓸 수 있다’는 등의 농담도 이제는 잘 통하지 않는다. 비슷한 캐릭터로 여러 서사를 변주할 수 있고, 시청자들의 보는 재미도 배가된다. 지금 안방극장은 1인2역이 스타의 등용문이 됐다.

배우 박보영이 1인2역에 나서는 tvN 새 주말극 ‘미지의 서울’의 주요 장면. 사진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후속으로 오는 24일 첫 방송 되는 tvN 새 주말극 ‘미지의 서울’에서는 배우 박보영이 1인2역으로 등장한다. 그는 극 중에서 쌍둥이 자매 유미지와 유미래를 연기한다.
드라마는 얼굴 빼고는 모든 처지가 다른 쌍둥이 자매가 인생을 맞바꾸는 비밀을 만들고, 그 여정에서 서로 사랑과 인생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박보영은 극 중 일란성 쌍둥이로 일용직 근로자로 낙천적인 삶을 사는 미지와 똑똑한 완벽주의자지만 인생의 벼랑 끝에 선 미래를 함께 연기한다.

SBS 금토극 ‘귀궁’에서 이정 역을 연기 중인 배우 김지훈. 사진 SBS
실제 박보영은 각각 미지와 미래 그리고 미지인 척하는 미래와 미래인 척하는 미지 등 실질적으로는 1인4역의 설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각각의 상대역으로 박진영, 류경수가 캐스팅돼 러브라인 역시 두 명의 남자배우와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SBS 금토극 ‘귀궁’에서 악귀에 잠식당한 군주 이정 역을 연기 중인 배우 김지훈. 사진 SBS
비슷한 시간대 방송되는 SBS 금토극 ‘귀궁’에는 김지훈이 사실상 1인2역으로 열연 중이다. 극 중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강성한 나라를 꿈꾸는 개혁 군주 이정 역을 연기한 김지훈은 초반 선함과 영특함을 보이다 중반 이후부터 팔척귀에 잠식당하며 다른 인물이 되고 있다.
그는 악귀에 빙의돼 미쳐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연기하며, 팔척귀가 깨어나지 않을 때는 팔척귀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인물을 그린다. 같은 인물이지만 빙의의 코드를 통해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을 연기하는 셈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 역을 연기한 배우 아이유. 사진 넷플릭스
이러한 ‘1인2역’ 코드는 올해 안방극장에서 흥행의 요소로 크게 들어서고 있다. 상반기 인기작품이었던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와 JTBC ‘옥씨 부인전’에 모두 1인2역이 등장했다.
아이유는 꿈꾸는 문학소녀 애순과 그의 뒤를 묵묵히 지키는 관식의 삶을 다뤘던 작품에서 애순의 젊었을 때 모습과 중년 애순(문소리)이 낳은 금명을 연기했다. 애순의 순수함과 천진함 그리고 삶에 찌들면서도 결기는 잊지 않는 금명의 묵직한 모습을 한 번에 그려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금명(오른쪽) 역을 연기한 배우 아이유. 사진 넷플릭스
‘옥씨부인전’에서는 추영우의 1인2역이 빛났다. 그는 명문 대감댁의 기녀에게서 나온 서자로 송서인이라는 삶을 살다 전기수가 된 천승휘 그리고 주인공 옥태영(임지연)과 혼인한 양반댁 맏아들 성윤겸 등 두 사람을 연기한다. 예인과 양반의 다른 느낌을 신예 추영우가 극적으로 다르게 그리면서 추영우는 상반기 크게 주목받은 연기자가 됐다.
1인2역의 코드는 과거 동화 ‘왕자와 거지’처럼 닮은 사람이 서로 처지를 바꾸는 서사를 꾸며내며 극성을 만들어내는 전통적인 서사로 꼽혔다. 주로 우리나라에서는 ‘미지의 서울’처럼 쌍둥이 형제의 설정으로 많이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빙의나 다중인격 등 긴장감을 주는 설정이 장르물을 중심으로 도입되며 그러한 상황에서 성격이 갈라지는 인물도 많이 등장했다.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송서인 역을 연기한 배우 추영우. 사진 JTBC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다른 삶에 대해 시청자들이 갖는 호기심이 투영된 작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은 서사를 단순하게 만들지 않고,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데 좋다”면서 “최근 ‘평행우주’처럼 한 인물이 다른 삶을 살아보는, 마치 게임 같은 서사를 시청자들에게 부여한다”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성윤겸 역을 연기한 배우 추영우. 사진 JTBC
드라마평론가인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일단 쌍둥이나 부모처럼 혈육을 묘사하는 ‘1인2역’과 빙의, 다면적 캐릭터로서의 ‘1인2역’은 다르게 봐야 한다‘면서 ”전자의 경우는 핏줄의 연속성을 보여주기 위한 측면이 있고, 후자에는 인간의 감정적인 양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장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두 평론가는 입을 모아 “이러한 1인2역의 코드 역시 배우들의 연기력이 받쳐줘야 하는 설정”이라며 “배우의 입장에서도 한 작품에서 여러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흥미로운 형식”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