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스포츠IN

‘인생경기’ 앞둔 손흥민, 박지성보다는 조금 더 기쁘길

입력 : 2025.05.21 05:00 수정 : 2025.05.22 05:07
손흥민이 20일 스페인 빌바오에서 밝은 표정으로 훈련하고 있다. 로이터

손흥민이 20일 스페인 빌바오에서 밝은 표정으로 훈련하고 있다. 로이터

2008년 5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는 유럽축구의 열기가 피어올랐다.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가 운명을 건 한 판을 벌였다. 당시 한국 팬들의 시선은 오직 한 사람에게 향했다. 박지성. 그는 앞선 준결승 두 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나서 리오넬 메시를 비롯한 바르셀로나 공격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팀의 결승 진출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컨디션도, 활약상도, 누구보다 빛났다.

결승전 무대, 박지성 이름은 명단 어디에도 없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그를 아예 제외했다. 이유는 전술적 판단이었다. 박지성은 양복 차림으로 관중석에 앉아 그라운드를 내려다봤다. 팀이 승부차기 끝에 우승하기까지 그의 가슴엔 아쉬움과 씁쓸함이 얽혀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세리머니에 나섰지만, 그 환희 한가운데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기는 힘들었다. “가장 기쁘면서도 가장 슬펐던 순간이었다.” 훗날 그가 남긴 회고다. 퍼거슨 감독은 결승 당일, 박지성과 개인 면담을 갖고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수년이 지나 퍼거슨 감독은 “그 결정을 후회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다만, 그 말은 전략적 실수를 인정한다기보다, 선수에게 보내는 위로에 가까웠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2025년 5월, 또 한 명 한국인이 유럽 무대 결승전을 기다리고 있다. 손흥민이다. 한국시간으로 22일 새벽 4시,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리는 유로파리그 결승전. 상대는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손흥민은 지난 몇 달간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몸 상태를 회복했고, 경기 감각도 점차 끌어올리는 중이다. 독일 무대에서도, 토트넘에서도 단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보지 못한 손흥민. 어느덧 33세. 그는 “이 순간을 위해 10년을 기다렸다”며 결승전을 앞두고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안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손흥민을 출전 명단에 포함할 것이라 암시했다. 하지만 그가 선발로 나설지, 벤치에서 대기하다 투입될지는 확답하지 않았다. 물론 그럴 이유도 없다. 결승전이라는 무대에서, 선발 라인업을 미리 노출하는 것은 상대에게 전략을 알려주는 어리석은 짓이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침묵은 곧 계산된 선택이자 냉정한 행동이다.

토트넘은 2018-2019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던 적이 있다. 당시 에이스 해리 케인은 부상 여파로 준결승을 건너뛰었고, 결승전 직전 복귀했다. 그러나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고, 기대를 모은 선발 출전은 끝내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팬들은 앞선 준결승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린 루카스 모우라가 벤치에 머물고 케인이 선발로 나선 데 대해 “최악의 선택”이라 비판했다. 당시 손흥민은 풀타임 출전했다. 브라질 호나우두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 당일 발작 증세로 병원에 실려갔다. 처음에는 명단에서 제외됐지만, 본인의 강한 의지로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경기력은 처참했고, 브라질은 프랑스에 0-3으로 완패했다. 아무리 큰 무대라고 해도, 에이스의 무조건적인 출전은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누구나 결승전에 뛰고 싶어 한다. 팀의 주장이라면,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까지 오른, 그러나 여전히 ‘무관’인 손흥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국내 팬들도 그의 출전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축구는 감정이 아니라 냉정으로 승부를 가리는 경기다.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주전이 돼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다행히 손흥민이 아예 출전하지 못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선발로 나설지, 교체로 투입될지만 남았다. 선발이든, 리저브든. 팬들이 바라는 건 하나. 건강한 손흥민, 우승하는 순간, 그라운드 위에 뛰는 손흥민이다. 이제 곧, 그의 인생 경기가 펼쳐진다. 팬들은 조마조마한 마음과 약간의 불안을 품고 내일 새벽을 기다린다.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