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농구 LG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끈 조상현 감독이 20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3연속 PO 탈락 뒤 부임
암흑기 팀에 강조한 원칙
“인사보다 중요한게 존중”
훈련시간 지각 용납안해
젊은피 등 잠재력 폭발엔
그만의 소통 철학 한몫
“술한잔? 이런건 소용없어
전술 의논 자유로워야”
“팀을 망가뜨리는 행동은 허용하지 않는다. 운동 시간만은 철저하게.”
프로농구 창원 LG를 3년 만에 하위권에서 챔피언으로 변모시킨 조상현 감독(49)의 확고한 첫 메시지였다. 이 원칙이 창단 28년 만의 첫 우승 역사를 만들어냈다.
연세대 출신으로 1999년 드래프트 1순위로 프로에 입문한 조 감독은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프로농구 역대 세 번째 인물이다. 선수 시절 SK(1999~2000시즌), 코치 시절 오리온스(2015~2016시즌), 그리고 감독으로 LG(2024~2025시즌)에서 우승하며 3개의 왕관을 썼다.
20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만난 조 감독은 “나는 기회를 준 것뿐이고 선수들이 가치를 만들었다”며 우승의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하지만 그가 LG에 심은 챔피언 DNA는 분명했다.
원칙을 세워 팀 문화를 바꾸다
LG는 조 감독 부임 전 2019~2020시즌 9위, 2020~2021시즌 10위(창단 첫 최하위), 2021~2022시즌 7위로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감독 교체, 주축 선수 이탈, 줄부상 등 악재가 겹친 암흑기였다.
부임 첫날부터 조 감독이 강조한 것은 원칙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서로 존중이었다. 인사하고 그런 게 아니라, 운동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팀을 망가뜨리는 행동에 단호했다. 조 감독의 선수단 장악력은 팀을 우승으로 이끈 첫번째 동력으로 평가받는다. “고참 선수들이 기분에 따라 운동하고, 늦게 나오는 것들이 팀 문화를 잘못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원칙이 세워지자 선수들의 자율성과 책임감도 함께 성장했다.
시즌 초반부터 나가 떨어진 공격 옵션
조 감독은 수비 중심의 팀 컬러로 2년 연속 정규리그 2위에 올랐지만 챔피언결정전까지는 가지 못했다. 공격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2024~2025시즌을 앞두고 국내 최고의 슈터 전성현과 베테랑 포인트가드 두경민을 영입했다.
“둘 다 공격력이 너무 좋은 선수들이다. 전성현의 슈팅 능력, 두경민의 경험과 경기 운영 능력을 활용해 더 다양한 공격 패턴을 구상했다”고 조 감독은 밝혔다.
그는 전성현, 두경민, 유기상으로 이어지는 1·2·3번 라인업과 양준석, 유기상, 두경민의 스몰 라인업, 슈터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공격 옵션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부상으로 일찌감치 틀어졌다.
“전성현은 무릎 부상으로 시즌 선발 멤버에 들어오지 못했고, 두경민이는 3경기 만에 전력에서 이탈했다. 코치들과 진짜 고민을 많이 했다.”
젊은 피의 반격
계획이 틀어지자 조 감독은 과감하게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젊은 선수들을 키워내려고 바꿨다. 그랬더니 이 선수들이 주축이 되면서 자기가 가진 능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1년생인 양준석, 유기상, 칼 타마요 트리오의 성장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타마요, 양준석, 유기상은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타마요는 한국 농구가 복잡한데도 첫해 시즌 치고 너무 훌륭하게 잘해줬다.”
양준석은 무릎 십자인대 부상에서 회복한 후 팀의 중심 플레이메이커로 도약했고, 유기상은 ‘차세대 슈터’라는 평가에 걸맞게 빠르게 적응했다. 이들의 성장은 조 감독의 코트 위 소통 철학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소통은 코트 위에서
조 감독의 소통은 특별했다. 그에게 소통은 선수들에게 편의를 봐주는 것이 아니었다.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고 술 한 잔 같이하는 게 소통이 아니다. 코트에서 감독이 원하는 방향에 대해 선수들이 이해하고, ‘감독님 이거 한번 해보면 안 될까요?’라고 할 수 있는 관계, 그게 진짜 소통이다.”
특히 양준석에게는 “나와 얘기를 많이 해라. 벤치 안 쳐다봐도 된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하고, 네가 판단을 하라”고 주문했다. 이런 소통 방식이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이끌었다.
노력하는 선수가 예쁘다
정인덕의 사례는 조 감독의 지도 철학을 잘 보여준다. 2018년 은퇴했다가 군 복무 후 2021년 연습생으로 복귀한 정인덕은 조 감독으로부터 ‘기회’를 받았다.
“정인덕은 태도가 너무 좋았다. 시키는대로 하려고 노력한다. 야간에 혼자 불 꺼놓고 연습한다. 정말 노력하는 선수가 예쁘다.”
기회를 얻은 정인덕은 2024~2025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상대 에이스를 봉쇄하는 수비 전문가로 우승에 이바지하며 다시 새 선수 인생을 시작했다.
베테랑의 리더십을 빌려 쓰다
40세 베테랑 허일영의 리더십도 중요했다. 세대교체 과정에서 그의 출전 시간은 줄었지만, 팀 분위기를 지키는 데 헌신했다. 조 감독은 “허일영이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 흐트러지지 않게 해줬다. 감독에게 불평불만이 있었겠지만 선수단의 분위기를 잘 잡아줬다”고 평가했다.
허일영은 “감독님, 걱정하지 말라. 팀 분위기는 내가 알아서 다 만들어 갈 테니까”라며 조 감독을 다독였다. 이런 팀 우선 태도가 결국 챔피언결정전 MVP로 이어졌다.
새벽 2시 체육관의 불빛
SK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LG는 3연승 후 3연패를 당해 마지막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조 감독은 철저한 분석과 준비로 이 위기를 극복했다.
“3연패 하는 동안 하루에 2시간도 못 잤다. 체육관에 새벽 2~3시에 나가 영상을 봤다. 다른 팀이 SK를 어떻게 이겼는지 연구했다.”
최종 7차전 승리의 핵심은 SK의 속공 제한이었다. “선수들에게 속공을 5개 미만으로 잡아달라고 했다. 결국 SK랑은 50~60점대 수비 게임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왕관을 쓰고도 등산화를 신다
첫 우승을 달성했지만 조 감독은 여전히 겸손했다. “왕조의 시작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스포츠는 변수가 많다. 왕조보다는 지속적인 강팀으로 만들고 싶다.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팀, 계속 4강권을 유지하면서 팀 문화도 좋게 만들어가고 싶다.”
그는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한다. “내가 추구하는 농구는 좀 더 빠른 농구다. 지난 두 시즌에는 속공이 2위였는데 올해는 꼴찌를 했다. 다음 시즌, 또 그 다음 시즌 조금씩 더 점수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만들겠다.”
사령탑으로서 그의 성장 뒤에는 아내가 있다. “내 아내는 직언을 잘 한다. 선수 시절 38살 때 ‘자리 차지하지 말고 은퇴하라’고 했다. 지금도 경기에서 지면 ‘책임지고 나와. 누구한테 위로받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한다.”
그는 “얼러주는 것보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태도는 그 리더십을 단단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