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수PD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KBS2 예능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KBS
10일 열린 KBS2 새 예능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이하 크리코)의 제작발표회 주인공은 전현무, 박세리, 지예은 등 MC들도, 1회 출연자로 방송 최초로 일상을 공개한 지휘자 장한나도 아니었다. 예상을 벗어난 차림에 예상을 벗어난 언동을 보여준 연출자였다.
‘크리코’를 연출한 이창수PD는 이날 줄무늬 티셔츠에 LA 다저스의 파란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조금이라도 한국 연예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챌 모습이었다. 바로 어도어 민희진 전 대표가 지난해 4월 하이브를 성토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입었던 바로 그 착장이었다.
평소 푸들처럼 파마머리를 부풀리고 있는 그의 모습도 독특했는데, 민 전 대표의 착장도 하자 이상함은 배가했다. 그는 마치 작정했다는 듯 민 전 대표의 유산(?)을 거침없이 퍼뜨렸다. 인기 타사 프로그램과의 경쟁에 대해 “맞다이로 들어오라”는 공영방송 PD로서는 하지 않을 법한 말도 했다.

이창수PD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KBS2 예능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KBS
결국 절친한 관계인 MC 전현무가 “상돌아이”라며 그를 제지하기에 이르렀다. 이PD의 이상함은 곳곳에서 발현됐다. 남루한 듯한 세트에 고상한 명사의 소재를 얹었다. 그는 무엇보다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오는 15일 첫 방송 되는 ‘크리코’는 KBS 유튜브 채널 ‘구라철’을 시작으로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더 시즌즈’ 등을 연출한 이창수PD의 새 프로그램이었다. 원래 ‘월드클래스 K’라는 제목으로 기획됐지만, 명사의 다큐멘터리 형식이 명사 관찰예능으로 변화하면서 제목도 바뀌었다.
이PD의 기획의도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항상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경우에는 ‘땅콩 회항’ 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민희진 전 대표님의 모습을 보고 이번 ‘크리코’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인 전현무(왼쪽부터), 박세리, 지예은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KBS2 예능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KBS
예고편에서 공개된 1회 출연자는 세계 유명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 변모한 장한나였고, 2회는 베트남에서 박항서 전 감독에 이어 ‘축구한류’를 일으키는 김상식 감독이었다. 3회에는 뉴욕 할렘가의 대모로 이주 한국인의 끈기와 흥을 보여주는 요식업자 베티 박이었다. 이PD는 기획시간을 빼고는 대부분을 해외를 다니며 출연자 섭외에 공을 들였다.
그런 프로그램은 일요일 오후 9시20분에 앉았다. 이 시간대는 SBS ‘미운 우리 새끼’가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있었고, 최근에는 MBC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4’를 방송 중인 주말 예능의 격전지다. 보통 ‘영광’이라는 말을 하는 연출자의 소감과 달리 이PD는 서운함부터 내비쳤다.
그는 “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1박2일’의 ‘땜빵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셔서 기획했고, ‘더 시즌즈’의 경우에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없어지니 멋진 거 해보라 하셔서 기획했다”고 말했다.

방송인 전현무(왼쪽부터), 박세리, 지휘자 장한나, 방송인 지예은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KBS2 예능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KBS
그러면서 “그렇게 했더니 ‘미운 우리 새끼’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간대에 넣어주셨다. 개인적으로 너무 섭섭했고, 스트레스로 인해 20㎏이 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모든 출연자와 스태프들이 다 도와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현한 이PD는 “‘미운 우리 새끼’보다는 20분,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보다는 10분이 늦지만 ‘맞다이’로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뜻보면 해외 명사를 소개하는 그저 그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같던 ‘크리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오히려 이PD의 존재인지 몰랐다. 그는 “차별화 포인트에 고민을 많이 했다. 회사 설득이 사실 쉽지는 않았다. 교양이나 다큐의 이야기이고 데이터의 의한 기획이었다. 결국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방송인 전현무(왼쪽부터) 박세리, 지휘자 장한나, 방송인 지예은, 이창수PD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KBS2 예능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KBS
그러면서 “성공을 한 한국인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한국인만의 미침’이 있었다고 봤다. 그래서 제목에도 ‘크레이지’를 ‘CRAZY’가 아닌 ‘KRAZY’로 쓴다”며 “교양이나 다큐라는 부분에서는 기준이 있다고 본다. 과거에 연연하면 다큐가 되고, 현재를 다루면 예능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은 보시면 아실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결국 해외 섭외와 촬영을 이어간 끝에 세트를 꾸밀 돈은 없었고, 마치 임시 건물 같은 세트에 출연자들을 주저앉혀놓고 녹화를 한다. 이PD는 “이것도 현재는 돈이 없는데 잘 되면 바뀔 수도 있다고 출연자들에게 말했다”고 했다. 역시 예사롭지는 않다.
예사롭지 않은 PD가 만드는 예사로운 프로그램. 과연 그 특별함은 인기 프로그램과의 ‘맞다이’도 가능할지. 비범한 PD의 비범한 진심은 오는 15일 오후 9시20분부터 매주 일요일 전파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