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 장갑의 비밀을 벗기다…기술, 역사, 고전과 혁신 사이

입력 : 2025.06.11 08:26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골키퍼 머빈 데이가 1973년 12월29일 토트넘 홋스퍼 슈팅을 맨손으로 잡고 있다.  게티이미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골키퍼 머빈 데이가 1973년 12월29일 토트넘 홋스퍼 슈팅을 맨손으로 잡고 있다. 게티이미지

리버풀 골키퍼 알리송은 지난 4월 안필드에서 토트넘을 5-1로 꺾고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한 순간, 로이쉬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번 우승으로 알리송은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피터 슈마이켈 이후 ‘로이쉬’ 장갑을 끼고 잉글랜드 1부리그를 우승한 최초 골키퍼가 됐다. 알리송은 2020년 리버풀 우승 당시 나이키 장갑을 착용했으나, 2023년 10월 로이쉬와 계약했다. 독일에 기반을 둔 로이쉬는 최근 브렌트퍼드로 이적한 리버풀 출신 골키퍼 카오이민 켈러도 쓰고 있다.

리버풀 골키퍼 알리송. 게티이미지

리버풀 골키퍼 알리송. 게티이미지

로이쉬는 골키퍼 장갑 제조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 중 하나다. 1973년 서독 국가대표 세프 마이어와 협업해 세계 최초로 라텍스 손바닥을 장착한 장갑을 만들어냈다. 이 장갑은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 이후 널리 확산되며 골키퍼 장갑 대중화를 견인했다. 그 전에는 원예용 고무장갑, 겨울엔 울장갑을 착용하는 골키퍼도 있었다. 아르헨티나 아마데오 카리소는 1945~1968년 리버 플레이트에서 장갑을 적극 활용하며 500경기 이상을 뛰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주역 고든 뱅크스는 골키퍼 장갑을 끼고 정원을 가꾸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장갑 역사는 무척 오래됐다. 1885년 영국 제조업자 윌리엄 사이크스는 세계 최초로 골키퍼용 가죽장갑을 특허받았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선 고든 뱅크스가 손바닥에 고무 돌기가 있는 실험적인 장갑을 사용했고, 이는 펠레의 헤딩슛을 막아낸 ’세기의 선방‘ 장면에도 등장했다. 이후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스코틀랜드 앨런 러프를 제외한 다수 골키퍼들이 장갑을 착용했다.

요즘 보급형 장갑은 25파운드대로 구입할 수 있지만 최상급 장갑은 80~180파운드에 이른다. 디애슬레틱은 “1980~90년대 투박한 디자인은 과거 유물”이라며 “현재 장갑은 제2의 피부처럼 밀착되며, 공기 배출구, 라텍스 펀칭존 등 다양한 기술적 요소들이 집약돼 있다”고 전했다. 좋은 장갑에는 네오프렌 등 고급 합성고무가 사용된다. 고급 장갑은 인체공학 설계를 바탕으로 손가락 길이와 굵기, 손바닥 모양 등에 맞춰 제작된다. 펀칭 능력도 최근 핵심이다. 아디다스는 2021년 유로 대회 당시 도나룸마가 착용한 장갑에 300개 가까운 미세 스파이크를 삽입해 펀칭 방향성과 제어력을 향상시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안드레 오나나. 게티이미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안드레 오나나. 게티이미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안드레 오나나는 경기 중 장갑에 바셀린을 바르는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다. 전문가들은 “바셀린이 라텍스 그립 성능을 향상시키지 않는다”며 “오히려 미지근한 물로 장갑을 적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장갑은 처음 사용하기 전에 코팅막, 수지를 제거하기 위해 세탁해야하고 사용 후엔 항상 물기를 남겨 보관해야 한다. 장갑을 쓴 다음 그냥 말려버리면 라텍스가 딱딱해지고 표면이 갈라져 그립력이 떨어진다.

골키퍼 장갑은 손가락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도 적용되고 있다. 아디다스 ‘핑거세이브’는 손가락이 과도하게 꺾이지 않도록 제작됐다. 일부 선수는 이보다는 테이핑을 선호한다. 2023년 은퇴한 롭 그린은 반복된 손가락 골절로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괴사 상태에 가까웠고, 웹 구조 장갑을 착용한 채 마지막 시즌을 치렀다. 사우샘프턴 애런 램스데일도 지난 시즌 네 손가락 장갑을 끼고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독일대표팀 수문장 마누엘 노이어가 장갑을 끼고 있다. 게티이미지

독일대표팀 수문장 마누엘 노이어가 장갑을 끼고 있다. 게티이미지

라텍스는 부드러울수록 그립이 뛰어나지만 내구성이 떨어진다. 반면 내구성이 강한 장갑은 그립력이 낮다. 피들러는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며 “지금은 라텍스 자체를 개선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디애슬레틱은 “현실적으로 값싼 장갑이 오래가긴 해도 고급 장갑 수준 그립감은 제공하지 못한다”며 “골키퍼 장갑 완성형을 향한 실험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엔 ‘슬리피 글러브’라는 비전통적인 장갑도 주목받고 있다. 영국 업체가 개발한 이 장갑은 그립이 없는 훈련 전용 장갑으로, 훈련 난이도를 인위적으로 높여 실전에서 감각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비다. 이 업체 공동 창업자 마크 로빈슨은 “실수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훈련 중에 길러야 한다”며 “실패 확률이 높은 훈련을 반복함으로써 실제 경기에서의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웰링턴 피닉스 골키퍼 라일리 포스터. 게티이미지

웰링턴 피닉스 골키퍼 라일리 포스터. 게티이미지

여성 골키퍼들의 장갑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 잉글랜드 대표 칼리 텔퍼드는 2016년 프리시즌과 협업해 손가락 길이를 줄이고 손등을 조인 여성 전용 장갑을 출시했으나, 대부분 여성 선수들은 여전히 남성용 소형 사이즈를 착용하고 있다. 잉글랜드 여자챔피언십 더럼 우먼스 소속 골키퍼 라일리 포스터는 영국 브랜드와 손잡고 여성 전용 장갑 개발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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