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스 포옛 전북 현대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
축구는 ‘감독 놀음’이다. 똑같은 선수라도 하나로 묶는 지도자의 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올해 K리그1에선 전북 현대가 새삼 감독의 힘을 절감하고 있다.
우루과이 출신의 거스 포옛 감독(58)이 지난해 12월 전북에 부임하면서 잠시 잊혀졌던 ‘전북 천하’의 부활이 예고됐다.
전북은 지난 21일 FC서울과 K리그1 20라운드에서 1-1로 비기면서 16경기 무패 행진(11승5무)을 질주했다. 지는 법을 잊어버린 전북은 승점 42점을 쌓으면서 당당히 순위표 꼭대기를 점령했다. 21일 기준 2위 대전 하나시티즌과 승점차는 무려 9점에 달한다.
포옛 감독은 “오늘 경기로 승점 42점을 쌓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난해 정규리그 38경기 승점과 같다. 지금까지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활짝 웃었다.
포옛 감독이 전북의 승점을 강조한 것은 지난해 팬들이 겪은 강등 위기의 악몽을 잊어버리자는 얘기다.
K리그1 최다 우승(9회)을 자랑하는 전북은 지난해 정규리그를 12개팀 중 10위로 마치면서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밀려났다. 다행히 1부에 잔류했지만 K리그1 최고 명문이라는 자존심에 이미 큰 상처를 입은 뒤였다.
변화가 절실했던 전북은 큰 무대에서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를 물색했고, 지난해 위르겐 클린스만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후임으로 최종 후보군에 올렸던 포옛이 낙점됐다. 당시 전북 내부에선 포옛 감독이 선굵은 축구를 고집하느라 현대 축구의 트렌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감독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전북은 단숨에 K리그1 최다골(34골)과 최소 실점을 자랑하는 강호로 돌아왔다. 시즌 초반에는 순위가 10위까지 밀려나기도 했지만 수비부터 단단하게 굳힌 뒤 조금씩 순위를 끌어 올렸다. 최근에는 전북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닥공(닥치고 공격)까지 살아나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전북의 한 관계자는 “주요 선수를 살펴보면 콤파뇨와 송범근을 빼면 큰 변화가 없는데 성적은 큰 차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포옛 감독의 선수단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성적을 내는 비결은 선수도 모르는 재능을 일깨웠기에 가능했다. 올해 K리그1 득점 1위(12골)를 달리는 전진우(26)가 대표적이다. 2018년 수원 삼성에 데뷔한 이래 지난해까지 7년간 11골이 전부였던 그는 올해 19경기만 뛰고도 그보다 많은 골을 넣었다. 측면 날개로 한정됐던 역할을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가깝게 뛰면서 과감한 슈팅을 요구한 포옛 효과다. 전진우는 “처음에는 쉬운 요구를 하시다가 점점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축구에 대해 명확하게 짚어주시니 선수로는 편하다”고 말했다.
포옛 감독의 리더십이 더욱 놀라운 것은 벤치 멤버들까지 품에 끌어안았다는 점이다.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선덜랜드 시절부터 주전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밀려난 선수들이 불만을 가지기 쉽지만,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선수들을 달랬다. 콤파뇨의 부상으로 기회를 얻자마자 3경기 연속골(4골)로 폭발한 티아고는 “감독님의 요구대로 훈련에 최선을 다하면 기회는 올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포옛 감독이 정작 전북의 승승장구를 경계하는 것도 흥미롭다. 전북도 언젠가는 무패 행진이 끝나게 마련이고, 연패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지금 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세간에서 전북이 2021년 이후 첫 우승컵을 들어올릴 것이라 예상하는 것과는 딴 판이다.
포옛 감독은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지만 축구는 변화 무쌍한 종목”이라면서 “아직 목표를 말하기에는 이르다. 우리 선수들이 기본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자신감이라는 흐름을 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