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이호수 역을 연기한 배우 박진영. 사진 BH엔터테인먼트
2007년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배우 신동욱은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있는 거잖아요”라는 대사를 남겼다. 비록 신동욱이 부정확한 발음으로 대사를 소화해 “누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는 거잖아요”라고 희화화됐지만, 이는 현대인의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한 대사로 남아있다.
지난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 역시 이런 ‘상처 하나쯤’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유미지(박보영)는 육상선수로 전도유망했지만, 부상으로 꿈을 꺾었던 상처가 있었고, 유미래(박보영)는 잘 나가는 회사원이었지만 동료를 도왔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해 영혼이 무너진다. 한세진(류경수) 역시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아버지를 잃은 상처가 있다.
박진영이 연기한 이호수는 실제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와 당한 교통사고로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고, 다리도 온전치 못하다. 하지만 그의 조심스러운 성격은 상처를 고이 덮어두는 데만 집중해 다른 사람의 상처에만 귀 기울였다. ‘미지의 서울’은 그 상처들이 돋아나고 치료되는 이야기였다.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이호수 역을 연기한 배우 박진영. 사진 BH엔터테인먼트
“이호수라는 친구의 느낌이 다른 캐릭터와는 달랐던 것 같아요. 귀가 한쪽이 안 들린다는 설정이었는데, 누구보다도 피해자와 약자에 귀를 기울이려는 모습이었죠. 안 들리지만, 누구보다 들으려 했던 아이였어요. 이런저런 말을 하기보다는 이겨낼 수 있게 돕는 모습이 짙었습니다. 호수처럼 좋은 사람이 될 순 없지만 이러한 경험을 남기면 어떨까 싶었죠.”
공교롭게도 ‘미지의 서울’ 이호수는 박진영이 군 복무를 하고 난 후 처음으로 택한 작품이었다. 10년 정도의 연예계 활동 이후 다가온 ‘전환의 시간’. 그는 좀 더 다른 배우가 되고 싶어 ‘미지의 서울’을 택했고, 이호수에 몰입했다.
“너무 큰 장애를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또 평이하게 사는 친구도 아니에요. ‘경계’, ‘중간’의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저라면 장애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노력할 것 같았어요. 말을 또박또박한다던가, 들리긴 하지만 못 듣는다는 자각이 있으니 속에서 검열을 계속했을 것 같고요.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호수가 대사를 늘 반 템포 늦게 시작해요. 바로 반응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는 설정이었죠.”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이호수 역을 연기한 배우 박진영 출연장면. 사진 tvN
상대역인 박보영이 미지와 미래, 미지인 척하는 미래와 미래인 척하는 미지 모두 ‘1인4역’을 하는 모습도 그는 마치 극 중의 호수처럼 박보영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품고, 참아주는 모습을 연기하면서 이강 작가의 한강 윤슬 같은 반짝이는 대사들도 뇌리에 들어왔다.
“김로사(원미경·아역 문수아)가 유명을 달리하던 상월(박환희)에게서 ‘언젠가는 너를 알아줄 사람이 올 거야’라고 듣는 대사가 와닿았어요. 사실 우울감을 느낄 때 가장 힘든 것이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잖아요. 그리고 세진의 할아버지가 세진에게 ‘왜 종점까지 가려고 하냐. 끝이 중요하냐. 시작이 중요하지’라고 말하는 대사도 기억나요.”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이호수 역을 연기한 배우 박진영 출연장면. 사진 tvN
2012년, 이후 2014년 그룹 갓세븐(GOT7)의 멤버로 데뷔하기 전부터 연기했던 그는 입대 전 찍었던 영화 ‘하이파이브’와 드라마 ‘마녀’를 연이어 공개한 후, ‘미지의 서울’ 역시 배우로서의 연착륙을 도왔다. 예전에는 외운 대사를 그대로 하지 않으면 자책을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제는 좀 더 덜어내고 들으면 더욱 좋은 연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에게 시간이 더하는 일이 주는 교훈은 스스로의 말을 덜어내고 듣는 일이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보면 모두가 좋아 보이잖아요. 호수도 변호사라 멋있고 대단해 보이고, 미래 역시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다 곪아있는 거죠. 그걸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빛나 보이지만, 뭐든 곪아있을 수 있다’는 것. 저는 그런 일이 있으면 내 사람을 찾아가요. 그러면 제 표정을 보고 다 알아주더라고요.”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이호수 역을 연기한 배우 박진영. 사진 BH엔터테인먼트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박진영은 댄스그룹의 멤버로서 이런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성격이 싫었다. 힘과 긴장을 올려야 했지만, 남들만큼 오르지 않는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미지의 서울’ 대사처럼, 누군가를 이런 모습을 좋아해 줄 사람이 있을 거라 믿었고 지금은 멤버들이,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고 있다. 혼자 끙끙 앓는 시기를 지나, 그 역시 또 다른 ‘미지(未知)의 미래(未來)’를 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번 좋은 이야기의 힘을 느꼈어요. 함께 한다는 것의 재미도 느꼈고요. 이제 앞자리가 바뀌어 30대가 됐는데요. 이전에는 여유가 없었다면, 이제는 좀 더 귀담아듣고 같이 호흡할 수 있는 30대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잘 잡아내서 답답해 보이지 않는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