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9단이 3일 중국 칭다오 농심공장에서 열린 제27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1국에서 중국의 리친청 9단과 대국하고 있다. 칭다오 | 윤은용 기자
“어릴 때부터 꿈꿔온 무대에서 이렇게 뛸 수 있게 돼서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첫 판을 이기게 돼서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13전 14기 끝에 이룬 농심신라면배 출전. 그리고 데뷔승까지. 이지현 9단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지현은 3일 중국 칭다오 농심공장에서 열린 제27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1국에서 한국의 1번 주자로 나서 중국의 리친청 9단을 226수 만에 백 불계승으로 꺾고 한국에 첫 승을 안겼다.
이지현 본인에게 있어 뜻깊은 승리였다.
이지현은 2010년 첫 도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꾸준히 농심신라면배의 문을 두드렸으나 늘 예선을 넘지 못했다. 군 입대 기간을 제외하고 도전한 횟수만 무려 13번이었다. 20회 대회와 21회 대회 때는 예선 결승까지 올랐으나 끝내 고비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초반부터 승승장구해 예선 결승까지 순조롭게 올랐다. 그리고 결승에서 한국 바둑 랭킹 2위 박정환 9단을 완파하고 14번째 도전 만에 농심신라면배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지현은 대국 후 취재진과 만나 “당연히 기분이 너무 좋다. 첫 주자로 나와 부담이 좀 됐는데, 그래도 책임감을 갖고 대국에 임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0년 첫 도전 이후 겪은 수많은 도전, 그리고 좌절들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지현은 “사실 (2010년 첫 도전 때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그래도 여러번 도전하면서 예선 결승에서도 졌고, 그럴 때마다 많이 좌절을 했다”며 “그래도 이렇게 다시 운 좋게 뽑히게 돼 영광인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다만, 정작 농심신라면배 데뷔승을 거두는 순간에는 별다른 생각이 안 들었다고 했다. 이지현은 “그런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막상 대국이 끝나고 나니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직 대회가 끝난 것이 아니다보니 긴장 상태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만 18세 나이로 입단했지만, 기량을 만개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이지현을 ‘대기만성의 표본’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지현은 “내 장점은 꾸준함이다. 그것을 지금까지 잘 이어온 것이 지금 성적이 잘 나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지현에게 있어 농심신라면배 데뷔승은 어떤 의미일까. 분명 개인에게 기념비적인 승리지만, 이지현은 그것보다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고전했던 것을 벗을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성적이 워낙 안 좋았기에 부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 점에서 오늘 승리가 나에게 의미가 있고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이제 이지현은 4일 일본의 후쿠오카 고타로 7단을 상대로 2연승에 도전한다. 이지현은 “과거 연습 대국에서 내가 한 번 패한 적이 있다”며 “일본의 신예 기사들이 예전과는 달리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오늘 붙은 리친청 같은 상대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대국해야 할 것 같다”고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