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전반전 끝나고 찾아가 고개 숙이는 것도 봤다”…이상범 감독이 소환한 ‘언니 농구’

입력 : 2025.09.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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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 하나은행 감독이 지난 2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열린 박신자컵 조별리그 B조 덴소 아이리스와 2차전을 지켜보고 있다. WKBL 제공

이상범 하나은행 감독이 지난 2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열린 박신자컵 조별리그 B조 덴소 아이리스와 2차전을 지켜보고 있다. WKBL 제공

여농 첫발 20년 경력 지도자
‘이상한 문화’ 일침

“다 옛날 일”…“옳은 지적”
지도자들도 갑론을박
“젊은 팀일수록 특히 불리
사라져야 할 문화”
공감대 형성

2000년대 중반 베스트셀러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남자를 화성인에, 여자를 금성인에 비유했다. 남녀가 서로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 아래 갈등을 해결해가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어쩌면 농구 코트에도 서로 다른 문화가 존재하는지 모른다.

출범 10주년을 맞이한 박신자컵에서 ‘언니농구’가 키워드로 떠올랐다. 줄곧 남자농구 현장에서 지도자로 활약하다 올해 여자농구에 첫 발을 내디딘 이상범 부천 하나은행 감독이 지난 2일 “(여자농구에) 언니농구가 있다. 왜 코트 밖이 아닌 안에서도 선후배 관계가 존재하느냐”고 말하면서다. | 관련기사 7면

남자농구에서 지도자로 20년 넘게 활동한 이 감독은 “여자농구는 내 생각과 달리 복잡한 게 많다”고 운을 떼면서 “어린 선수들이 힘을 잃는 상황은 솔직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이 짚은 ‘언니농구’란 어린 선수가 베테랑 선수를 상대할 때 적극적인 몸싸움을 회피하는 현상을 칭한다.

이 감독은 “경기가 끝나면 후배가 (거칠게 플레이한 것에 대해) 선배를 찾아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심지어 전반전이 끝나고 먼저 찾아가 고개를 숙이는 것도 봤다. 선배 선수가 ‘왜 그랬냐’고 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코트에선 서로 경쟁해야 한다. 스타가 되려면 본인이 살아야 한다. 남자농구에서는 이런 문화를 보지 못했다”고 자신이 목격한 현상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팀 내부에선 선후배 관계가 어느 정도 지켜져야 한다. 내가 지도했던 KGC인삼공사(현 정관장)와 DB에서 그렇게 팀을 운영했다. 하지만 코트에선 선후배 관계가 없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언니농구를) 바꾸려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언니 농구는 실제로 존재할까.

많은 지도자들이 “과거에나 있었던 일”이라고 하지만, 일부 인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2024~2025시즌 WKBL 챔피언인 부산 BNK의 박정은 감독은 “언니농구라 말하는 현상은 지금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예전에는 언니들이 (농구의) 수가 높으니까 동생들이 뒤처지는 게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인천 신한은행 지휘봉을 잡고 사령탑으로 데뷔한 최윤아 감독도 “실력 차가 워낙 많이 나니 옛날에도 눈치를 보는 경향은 있었다”고 말했다.

남자농구와 여자농구를 모두 경험한 현장의 한 관계자는 언니농구라 표현하니 이상하게 들릴 뿐 이 감독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예컨대 남자농구에선 감독이 어린 선수를 향해 상대 팀 베테랑에게 강하게 부딪치라고 주문하면 그대로 수행한다. 여자농구에선 그게 쉽지 않다”며 “남녀 농구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선수단 중 다수가 2000년대생 어린 선수들로 구성됐다는 특성도 언니농구의 경향을 좀 더 체감할 수도 있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남자농구와 여자농구의 환경 차를 인정하기도 한다. 20년 가까이 여자농구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위성우 아산 우리은행 감독은 “남자농구에서 (여자농구로) 왔을 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고졸 선수가 다수인 여자농구는 대졸 선수가 많은 남자농구와 달리 신인과 베테랑의 나이 차이가 크다”며 “나이 차이가 벌어질수록 기량 차이도 크다. 기본적으로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상대의 신인이 우리 김단비 같은 선수를 상대하려면 쉽겠느냐”고 말했다.

위 감독은 ‘언니농구’가 사라져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했다. 위 감독은 “코트에서 내가 선수들을 질타하는 것도 ‘왜 상대에게 안 부딪치느냐’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어린 선수들이 조금 더 과감해져야 한다. 그래야 발전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전반전 끝나고 찾아가 고개 숙이는 것도 봤다”…이상범 감독이 소환한 ‘언니 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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