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여정. 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제공
“과대평가되는 게 싫어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걸로 끝내자는 마음이에요.”
조여정은 인터뷰 내내 이 문장을 강조했다. 연차가 쌓였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는 그는, 그럴수록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려 한다고 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5일 개봉하는 영화 ‘살인자 리포트’를 선택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살인자 리포트’는 특종에 목마른 베테랑 기자 선주(조여정)에게 정신과 의사 영훈(정성일)이 연쇄살인을 고백하는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한정된 공간에서의 대화를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밀실극이라는 게 포인트다.
작품은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전달해야해 배우로선 쉽지 않은 구조였다. 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난 조여정은, 배우로서 두려움이라는 커다란 벽을 어떻게 넘고 있는지 솔직히 털어놨다.
배우 조여정. 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제공
“‘살인자 리포트’의 선주를 하면서 제 바닥이 드러날까 무서웠죠. 숨을 곳이 없으니까 표정이나 목소리 등에서 더 미세하고 디테일하게 표현해야 했어요. 그렇다고 도망가면 다음에도 계속 피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맞아보기로 했어요.”
촬영은 쉽지 않았다. 대사량이 많아 시도 때도 없이 대사를 중얼거려야 했고, 체력적 한계도 매 순간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텼다.
“상대적으로 힘든 걸 보면 ‘그래도 오빠보단 덜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위로했어요. (웃음) 매니저랑 이동할 때도 계속 대사를 중얼거리다 보니, 대답인지 대사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죠.”
그 과정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준 건 상대 배우 정성일이었다. 두 사람은 2019년 드라마 ‘99억의 여자’ 이후 5년 만에 재회했다. 조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파트너의 모습에 안정을 얻었다.
“성일 오빠는 그대로였어요. 여전히 차분하고 집중력이 변하지 않았더라고요. 둘이서만 끌고 가야 하는 작업이었는데, 오빠가 앞에서 중심을 잡아주니까 안정이 됐어요. 오빠가 있기에 선택했다는 말이 진짜 빈말이 아니었어요.”
배우 조여정. 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제공
그는 늘 ‘도전을 즐기는 사람’으로 비춰졌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서 덤비는 게 아니라, 선택했으니 끝까지 버티는 편이라는 것이다. ‘살인자 리포트’도 그랬다.
“‘히든페이스’나 ‘기생충’, 이런 도전적인 작품들을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성격은 아니에요. 그냥 어쩌다 보니 선택을 한 게 이런 작품들인 거죠. 하지만 선택하면 결과적으로 도전이 되죠. 이번에도 도망가지 않고 끝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어요.”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가족들의 존재도 조여정을 지금의 태도로 이끌었다.
“지인들은 응원도 많이 하지만 제일 정확한 평가는 가족이에요. ‘우쭈쭈’가 전혀 없죠. 늘 냉정하게 현주소를 말해주니까 중심을 잡을 수 있어요.”
배우 조여정. 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제공
그렇다고 해서 그의 필모그래피가 무겁기만 한 건 아니다. 올여름 개봉한 ‘좀비딸’은 따뜻한 휴먼 코미디로 5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조여정은 이 작품이 주었던 숨 고르기를 소중하게 기억했다.
“순서상으로는 ‘히든페이스’ 다음에 찍은 게 ‘살인자 리포트’였는데, 그 사이에 ‘좀비딸’이 와줬어요. 숨을 쉴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작품이었죠. (웃음)”
오스카를 휩쓴 ‘기생충’ 의 여배우 조여정.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과대평가를 경계하며, 부족하다면 부족한 대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도망치지 않고 무대에 서는 그의 방식이다.
“‘내가 여기서 도망치면 나를 시험해 볼 기회가 다시 왔을 때 계속 도망다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그냥 부딪쳐보려고요. 그리고 제 실력이 과대평가 되지 않았으면 해요. 못하면 못하는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