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명나라 사신 우곤 역을 연기한 배우 김형묵. 사진 누아엔터테인먼트
하나의 배역을 위해, 그 배역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배우들은 얼마만큼의 노력을 할까. 흔히 우리는 배우가 작품 안에서 빛나는 장면만을 바라볼 뿐 그 안에 어떤 각고의 노력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막연하게 ‘치열한 노력을 했을 거야’ 정도의 생각을 했을 순 있다.
배우 김형묵이 최근 치러낸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 그리고 그 안에서 빛난 명나라 사신 우곤 역은 연기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 노력의 결과가 느껴지는 결과물이었다. 딱히 촬영 전 중국어에 인연이 없었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2주 만에 누구나 끄덕일 만한 중국어 실력자로 거듭났다. 그의 노력은 중국어를 잘 아는 사람이 들으면 더욱 체감할 수 있다.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명나라 사신 우곤 역을 연기한 배우 김형묵 출연장면. 사진 tvN
그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극 중 맛 표현을 하고,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시청자들의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은, 그의 말대로라면 ‘손수건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는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와 연상호 감독 영화 ‘군체’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폭군의 셰프’에 매달렸다. 매일 몇 시간을 투자했다고 단순히 수치로만 말할 수 없는 초인적인 의지가 배역에 스며들었다.
“지난해 방송한 MBC ‘밤에 피는 꽃’에서 호조판서 염흥집을 연기했는데, 감독님이 좋게 봐주셔서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특별출연인 줄 알았죠. 한 달 전에 중국어로 대사를 하기로 결정이 났어요. 제게는 실질적으로 2주의 시간이 있었죠.”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명나라 사신 우곤 역을 연기한 배우 김형묵. 사진 누아엔터테인먼트
‘폭군의 셰프’에 등장한 우곤은 실제 중국의 사신 유근을 모티프로 한 인물이다. 당대의 악한 인물로 죽을 때도 처참했다고 알려졌다. 김형묵은 당장 보이는 중국어의 문턱이 높았지만, 연기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당장 대사를 급하게 외워 중국어를 그럴듯하게 보이게 할 수 있었지만, 우곤이라는 인물도 그려내고 싶었다. 언어와 연기, 둘 다 놓칠 수 없었다.
“압박감이 엄청났죠. 중국어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아비수 역 문승유나 공문례 역 박인수는 중국어를 할 줄 알거나, 중국인 연기를 해봤죠. 매일 잠도 못 자는 압박이 이어졌어요.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할까’ 마음이 들었지만 제 마음 깊은 심연에는 도전하고 싶은, 내 자신을 시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초반에는 그렇게 대본을 기본으로 발음과 기본을 쌓아갔죠.”
배우 김형묵이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 명나라 사신 우곤 역을 준비하며 했던 중국어 공부의 흔적. 사진 김형묵 제공
제작진에서도 언어 자문을 해주긴 했지만, 연기까지 적용하기엔 너무 시간이 짧았다. 그때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김한민 감독의 ‘노량’에서 중국어 지도를 했던 배우 고해성이었다. ‘노량’ 뒤풀이 당시 만나 인연을 맺은 이후 SOS를 쳤다. 고해성은 그에게 ‘중국어 선생님’뿐만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형은 할 수 있다”를 말해준 ‘멘털 코치’였다.
“하루에 4~5시간을 자면서 12시간, 길게는 16시간을 매달렸어요. (고)해성이가 녹음해준 부분을 성조를 살려서 외우고 스스로 익힌 부분을 적용했죠. 2, 3일 전에 촬영 부분을 완성하면 모두가 놀랐어요. 사신으로 와 이헌(이채민)을 만나는 장면이 처음이었어요. 처음에는 모자랄 수 있었지만, 2~3차 촬영에 가면서 나아졌어요. 촬영 2주 전부터 3차 경연 촬영까지가 단 10주였습니다.”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명나라 사신 우곤 역을 연기한 배우 김형묵의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공연 장면. 사진 누아엔터테인먼트
10주 중 ‘사랑은 비를 타고’ ‘군체’ ‘폭군의 셰프’ 일정을 빼고 난 40일 동안 그가 다룬 문장은 대사로는 350여 개, 대사 속 문장은 A4 한 줄 분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477~500문장에 이른다. 전체 단어는 중복단어를 포함해 약 3000개에서 3500개 정도 된다. 피로 때문에 촬영장 인근에 공유 오피스를 구하고, 연습실도 따로 구했다. 이틀 전에는 자신의 분량에 대한 자체 리허설도 했다. 초반에는 김땅내음PD가 그를 도왔고, 촬영장에서는 고해성과 함께 극 중 통역사 역을 연기한 배우 곽진도 그를 도왔다.
“많은 교훈이 있었고, 가치관이 바뀌는 경험이었죠. 생각이 바뀌는 게 가장 컸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힘들었던 부분, 나태한 부분 역시 밀어붙였을 때 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지금도 연기를 준비하다가 나태해지면 그 순간을 떠올리려고 애써요. 이제는 자신감이 생겨서 중국어 학원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말을 배우고 있는데요. 언젠가는 중국이나 대만 쪽의 작품을 하면서 그 언어권의 분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