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넘고 물건너 하루 166㎞씩 이동…‘31일 탐험’ 완주한 초인

입력 : 2025.10.0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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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안 요르넷이 지난 6월 28일 미국 캘리포니아 오번에서 열린 100마일 산악 울트라마라톤 ‘웨스턴 스테이츠 인듀런스 런’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AFP

킬리안 요르넷이 지난 6월 28일 미국 캘리포니아 오번에서 열린 100마일 산악 울트라마라톤 ‘웨스턴 스테이츠 인듀런스 런’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AFP

하루에 마라톤을 뛰고, 동시에 ‘투르 드 프랑스’ 한 구간에 해당하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린다고 상상해보자. 그것도 31일 동안, 단 하루 휴식도 없이 말이다. 스페인 출신 울트라러너 킬리안 요르넷(37) 은 이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현실로 만들었다.

요르넷은 최근 ‘스테이츠 오브 엘리베이션’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미국 본토(하위 48개 주) 내 1만4000피트(약 4267m) 이상 고도를 지닌 모든 봉우리, 이른바 ‘포틴너(Fourteener)’들을 인간의 힘만으로 완주하는 도전이다. 그는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워싱턴주에 걸쳐 총 72개 봉우리를 등정하며, 3,198마일(약 5146㎞) 을 이동했다. 이 기간 동안 총 고도 상승 40만3638피트(약 12만3000m) 를 기록했다.

요르넷은 하루 평균 103마일(약 166㎞)을 이동했으며, 그중 약 629마일은 달리거나 등반으로, 2568마일은 자전거로 이동했다. CNN은 “매일 아침 낯선 장소의 캠핑카에서 눈을 뜨면 오트밀로 아침을 때운 뒤 투르 드 프랑스급 자전거 구간을 달리고, 곧바로 아이스 액스와 크램폰을 들고 산을 뛰어올랐다”며 “하루 이동 시간은 평균 18시간, 수면은 5시간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이번 여정은 요르넷이 지난해 유럽 알프스의 4000m급 봉우리 82개를 19일 만에 모두 등정한 기록에 이은 또 다른 ‘인간 한계 실험’이었다. 그는 CNN을 통해 “작년 도전에서는 실수 한 번이면 죽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하루 14~18시간을 그런 정신적 긴장 속에서 버티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그는 올해 훨씬 더 거대한 도전에 나섰다. 콜로라도의 롱스 피크를 출발해 56개 포틴너를 완등한 뒤,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 워싱턴주의 레이니어 화산까지 올랐다. 요르넷은 “나를 가장 자극하는 것은 ‘탐험’이다. 지리적, 지질학적 탐험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탐험”이라며 “결국 내가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 직접 마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도전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지난 20년간 쌓아온 훈련 덕분”이라며 “신체는 반복된 긴 시간의 부하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극한의 환경에 몸을 던지면, 인간이란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르넷은 이미 울트라러닝계의 전설적인 존재다. 세계 최고 난이도의 산악 마라톤 ‘울트라 트레일 뒤 몽블랑(UTMB)’ 에서 4회 우승, 미국의 하드록 100, 웨스턴 스테이츠 100, 스페인의 제가마 아이즈코리 등에서도 정상에 섰다. 20세였던 2008년 UTMB 첫 우승으로 최연소 챔피언에 오른 그는 이후 스키산악월드컵 4회 챔피언, 그리고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단 6일 만에 두 차례 등정한 기록으로도 이름을 남겼다.

요르넷은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가 ‘속도’가 아니라 ‘탐구’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도전은 최대한 빠르게 가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길 위에서 배우는 것, 사람과 자연, 생명과의 연결이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이동할 때의 속도는 땅과 사람을 더 깊이 느끼게 한다”고 덧붙였다. 총 488시간을 이동하며 미국 서부 산맥을 가로지른 요르넷은 “우리는 한계에 부딪혀 멈추는 게 아니다. 멈추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한계일 뿐”이라며 “고통을 다루고, 고통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진짜 성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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