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파라과이 축구 대표팀의 친선경기. 오현규가 추가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파라과이를 2-0으로 제압하며 브라질전 0-5 참패의 충격을 씻어냈다. 텅 빈 관중석과 야유 속에 시작된 경기는 엄지성과 오현규의 골, 그리고 전반보다 나아진 후반 경기력으로 환호와 파도타기 응원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은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엄지성과 오현규의 연속골로 승리를 거뒀다. 브라질전 이후 흔들렸던 팀 분위기를 바로잡고, 2026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을 앞두고 FIFA 랭킹(23위) 수성에도 성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2만2206명. 수용 인원 6만 6000명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경기 당일까지 티켓 4만 5600장이 팔리지 않았고, FC서울의 시즌 평균 관중(2만 4464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1년 전만 해도 대표팀 경기 티켓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조용했던 경기장에 처음으로 큰 함성이 터진 것은 경기 시작 전이었다.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이 등번호 13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손흥민에게 전달하며 A매치 최다 출전 기록(137경기)을 기념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이 소개될 때는 여전히 야유가 쏟아졌다.
손흥민은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섰지만 브라질전처럼 활약이 아쉬웠다. 황인범을 중심으로 2선 자원들이 활발하게 자리를 바꾸며 상대 수비를 분산시켰지만, 정작 손흥민의 침투 능력을 살리는 패스나 움직임은 나오지 않았다. 슈팅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한 채 오프사이드 한 차례만 기록하고 후반 들어 오현규와 교체됐다.
한국은 브라질전과 같은 3-4-2-1 포메이션으로 출격했다. 소속팀에서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는 박진섭(전북)이 스리백 중앙 수비수로 나섰다. 중원은 황인범과 김진규가 맡았고, 좌우 윙백 이명재와 김문환이 상대 진영 깊숙이 들어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선제골은 이 경기로 A매치 선발 데뷔전을 치른 엄지성의 몫이었다. 전반 15분 황인범이 왼쪽 풀백 이명재에게 볼을 내주고 바로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상대 수비 시선이 황인범에게 쏠린 사이 이명재가 올린 크로스는 상대 수비수의 어정쩡한 볼 처리로 엄지성에게 흘렀고, 그의 침착한 마무리로 완성됐다.
한국은 발 빠른 공격수도 없고 전방 압박이 강하지 않은 파라과이를 상대로 전반전을 주도했다. 다만 높은 볼 점유율에도 슈팅은 3개에 그쳤다. 다양한 패턴 플레이가 부족했고,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전반 43분에는 이한범이 후방 빌드업 도중 김승규 골키퍼에게 내준 볼이 너무 짧아 상대 공격수에게 뺏기며 일대일 상황을 허용했지만, 김승규의 슈퍼 세이브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다양한 조합을 찾아보겠다는 홍 감독의 말대로 후반 들어 적극적인 교체가 이뤄졌다. 손흥민 대신 오현규, 이동경 대신 이강인, 이한범 대신 조유민이 투입됐다.
오현규는 과감한 슈팅과 빠른 발을 활용한 침투로 상대 수비를 힘들게 했다. 후반 3분 박스 오른쪽 하단 근처 프리킥 상황에서 상대 수비 진영이 갖춰지기 전에 이강인이 내준 패스를 받아 먼 골대를 보고 바로 슈팅했다. 후반 13분에는 김문환의 패스를 받아 지체 없이 슈팅으로 연결했다. 높게 오른쪽으로 빗나가긴 했지만 적극성이 돋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면서 한국은 파라과이에게 주도권을 내줬고 아찔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후반 25분 프리킥 상황에서 디에고 곤잘레스가 박스 밖에서 왼발 감아차기 슛으로 크로스바를 맞혔다. 튀어나온 공을 안토니오 사나브리아가 헤더로 연결했지만 높이 뜨면서 한국은 실점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후반 초반부터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여주던 오현규가 해결사로 나섰다. 파라과이가 공세 수위를 높이며 수비라인을 높이 끌어올리면서 뒷공간을 내줬다. 후반 30분 이강인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탈압박 뒤 중앙으로 침투하는 오현규를 보고 스루패스를 내줬고, 오현규가 상대 오프사이드 트랩을 절묘하게 깨고 상대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왼발 슛으로 골문 오른쪽 하단 구석에 꽂으며 2-0으로 앞서 나갔다.
후반 교체 투입된 이재성이 왼쪽 측면에서 활동량으로 공수 연결 고리 역할을 충실히 해줬고, 이강인은 전반전 이동경이 그랬던 것처럼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고 절묘한 방향 전환 패스로 빌드업의 막힌 혈을 뚫어주는 역할을 해줬다. 확실히 전반전보다 나은 경기력이었다.
대표팀의 브라질전보다 나아진 경기력에 관중석 분위기도 달라졌다. 오현규의 쐐기 골이 나온 이후 응원 목소리는 더 커졌고 파도타기 응원까지 나왔다. 텅 빈 관중석과 야유로 시작된 경기는 환호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