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규가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파라과이를 상대로 2-0으로 앞서는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0-5. 지난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브라질전이 끝난 뒤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냉정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 일본은 브라질을 3-2로 깼다. 우리가 완패한 상대를 일본이 이긴 것이다. 같은 날 한국은 파라과이를 2-0으로 제압했다. 똑같이 나흘 전 일본과 2-2로 비긴 상대다. 한국은 대패한 충격을 벗어났다는 수확을 얻었고 일본은 세계 강호들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일본 선수들은 브라질을 꺾은 뒤 “우리 목표는 월드컵 우승”이라며 “이번 승리에 너무 흥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축구는 최근 강호들을 종종 꺾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스페인을 2-1로 잡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점유율 17%에 불과했지만, 효율적이고 치밀한 역습 전술로 세계 최고 패스 축구를 자랑하는 스페인을 무너뜨렸다. 같은 대회 조별리그 1차전에서 일본은 독일을 2-1로 잡았다. 수비 안정성과 전방 압박의 조화를 통해 피지컬에서 밀린 일본이 조직력으로 유럽 강호를 제압한 경기다. 2023년 9월 볼프스부르크에서 열린 평가전에서도 일본은 독일을 4-1로 대파했다. 이 승리들은 단발적 이변이 아니라, 체계적 육성과 일관된 철학이 결합된 결과로 평가된다.
브라질축구대표팀이 14일 일본에 패한 뒤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로이터
일본축구협회는 2005년 ‘2050년 월드컵 우승, 축구인구 1000만명 확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며 ‘재팬스 웨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대표팀 강화, 유소년 육성, 지도자 교육, 지역·생활축구까지 4대 부문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축구 생태계를 하나의 순환 구조로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플레이 철학 측면에서는 ‘일본다운 축구’를 확립하기 위해 공격 비전과 수비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빠르고 정확한 패스, 조직적인 전환, 끊임없는 움직임, 상대 압박 속에서도 공을 유지하는 기술적 완성도를 중시한다. 또한 연령대별 ‘이상적인 선수상’을 제시해 어린 선수부터 연령대별로 성인 대표팀까지 일관된 철학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대표팀 플레이의 실제 토대는 유소년과 지도자 교육이다.
국내 축구 전문가들은 “일본은 우리와 기량이 비슷하거나 조금 더 뛰어난 기량을 고루 갖춘 대표팀을 3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선수층이 두텁고 선수들이 일관된 육성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누구나 들어가도 고른 기량을 보인다는 뜻이다. 한국축구가 남녀대표팀, 연령대별 대표팀 등에서 모두 일본에 밀린 지 오래다. 일본 학원, 클럽팀이 한국에 자주 와서 평가전을 치른 것도 옛날 이야기가 됐다. 지금은 한국을 찾는 일본 수준급 축구팀은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다. 일본의 눈에는 한국으로부터 배울 게 없다는 뜻이다.
일본 오가와 고키가 1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브라질전이 끝난 뒤 기뻐하고 있다. AP
한국 축구의 정체성, 장점은 무엇일까. 현재 한국 축구는 투지, 근성, 빠른 역습, 끈질긴 수비, 순간적인 폭발력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부족한 기술은 계속 연마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만의 플레이로 일본과 비긴 파라과이,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 등을 꺾은 파라과이, 철벽 수비를 뽐낸 파라과이를 꺾었다. 한국축구의 장점과 무기는 분명히 있는데 그게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다.
한국축구가 추구해야 하는 ‘코리안 웨이’는 무엇일까. 대한축구협회는 2024년 ‘MIK(Made in Korea)’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빠르게, 용맹하게, 주도적으로’가 슬로건이다. 한국 축구 정체성을 정립하겠다는 비전을 담았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은 어떻게 싸워야 할까. 그리고 왜 그렇게 싸워야 할까. 이 질문에 현실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답을 찾은 뒤 한국 축구 전체 부문에서 강력하게 실행해야 한다. 이걸 실행하려면 지도자들의 밥그릇 싸움, 지나친 팀 성적 지향 주의, 자기 팀·자기 선수·자기 자녀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사라져야한다. 지금 한국축구의 상태는 축구와 관련된 모든 이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과물도 변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