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히어라. 마인드마크 제공
배우 김히어라가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문장 끝에는 오랜 시간 스스로와 싸워온 흔적이 묻어 있었다.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그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23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난 김히어라는 자신을 둘러싼 여러 겹의 시선과 불안, 그럼에도 놓지 않았던 연기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살아 있는 지금, 그 자체가 기적이에요.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보다, 다시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해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제게는 기적이고, 기적을 믿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영화 ‘구원자’ 스틸컷
2023년 학교 폭력 논란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는 김히어라.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구원자’는 축복이라 불리는 마을 오복리에 이사 온 한 가족에게 닥친 기적과 저주를 그린 오컬트 작품이다. 김히어라는 그 속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 ‘춘서’로 분했다.
“정말 우연이었어요. 미국에서 잠시 쉬고 돌아온 시기였고, 친구랑 가을 햇살 좋은 날 카페에 있었죠. ‘언제까지 이렇게 편안하지만 편안하지 않은 여유를 즐길까’ 고민하던 찰나에 대표님 전화를 받았어요. 대본 한 편을 보내주시겠다는 거예요. 처음 몇 장 읽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어요. ‘이건 해야겠다’ 싶었죠. 30분 만에 결정했어요. (웃음)”
김히어라는 ‘춘서’를 단순히 불행한 인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삶의 바닥에서 기적을 발견해내는 인물이라 했다. 대사보다 감정의 무게로 움직이는 캐릭터였기에, 연기 과정에서 자신과의 대화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도 미혼모 역할을 맡긴 했지만 이번엔 완전히 달랐어요. 춘서는 아들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이가 걸을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그게 기적이라고 느꼈고, 그걸 뺏기지 않기 위해, 다시 찾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인간의 삶 자체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배우 김히어라. 마인드마크 제공
김히어라가 ‘구원자’를 만나게 되기까지는 자신과의 숱한 싸움이 있었다. 논란 이후 그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그 선택이 ‘도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멈추기보다 배움을 택했다. 연기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기 위한 자기방식의 싸움이었다.
“그냥 누워 있을 수가 없었어요. 보증금 빼서 비행기 표를 끊고, 영어 공부를 하고, 낯선 곳에서 미팅도 다녔어요. 말이 잘 안 통해도 부딪쳤죠. 공부하고, 걷고, 듣고, 울다가 웃었죠.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아직 나한테도 무대가 있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어요.”
김히어라는 자신에게 붙은 이미지나 평가에 대해 길게 해명하기보다, 작품으로 대답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붙잡고 다 설명할 순 없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연기예요. 연기로 보여드리는 게 제일 정직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김히어라. 마인드마크 제공
‘더 글로리’ 이후 따라붙은 강한 이미지에 대해선, 우려보다 기회를 먼저 언급했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다양한 결을 실험해야 하는 시기라고 봤다. ‘춘서’는 그에게 새로운 무기였다.
“저는 몰랐는데, 저라는 사람 자체가 에너지가 되게 세다는 걸 알았어요. ‘더 글로리’와는 다른 전혀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센 캐릭터’로 비춰지더라고요. 그래도 전 춘서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구원자’는 저에게 기회였어요. 지금은 캐릭터에 대한 우려보다 기회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긴 인터뷰의 끝에서 김히어라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유명하고 스타가 되고 싶다기보다, 오래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윤여정 선배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선생님 연기 너무 좋았어요’라는 말을 듣는 배우. 그게 제 꿈이에요. 좋은 배우, 귀한 배우로 오래 기억되고 싶어요”
영화 ‘구원자’는 오는 11월 5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