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회의 열린 KS1차전 잠실
치리노스 돌발 변수 뒷이야기
유연 임기응변 속 5차전 엔딩
지난 30일 대전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 6회를 마친 LG 치리노스가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루고 난 뒤에는 과정마저 아름답다. 그러나 결과를 모르고 겪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은 전쟁처럼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야구 LG 선수단은 지난 1일 잠실구장에 집결해 스탠드를 채운 팬들과 함께 우승 축하 파티를 즐겼다. 비가 내릴 듯하면 그치고 또 그러기를 반복하던 지난 26일 한국시리즈 잠실 1차전과 하늘 색깔은 비슷했지만 가족 동반으로 소풍 가듯 그라운드를 오간 선수들의 표정은 완전히 달랐다.
이날 염경엽 LG 감독, 김정준 수석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 및 관계자들이 내놓은 한국시리즈 후일담에 따르면 한화와의 잠실 1차전이 열린 26일 아침만 해도 LG는 전체 구성원이 ‘초비상’이었다.
에이스로 시리즈를 준비하던 외인투수 요니 치리노스가 큰 경기를 시작한 당일, 몸상태에 이상을 호소했다. 날벼락이었다. 청백전부터 좋지 않던 부위에 문제가 생겼다. 한국시리즈 준비 과정에서 고정 상수로 뒀던 치리노스의 잠실 1·2차전 등판 불발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시리즈 이후 내외부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 치리노스의 4차전 정상 피칭 가능성은 밖으로 알려진 내용보다 부정적이었다.
LG는 긴 시간 마련한 ‘선발 플랜’을 한국시리즈를 눈앞에 두고 긴급히 틀었다. 1차전에 톨허스트를 내세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LG 내부에서는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한화와 삼성을 비교 분석하는 동안 한화 타자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공에 약하다는 진단을 내린 터였다. 치리노스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톨허스트를 앞세우는 게 승산을 높이는 길이었다.
그러나 2차전 선발이 문제였다. 3차전 선발로 내정돼 있던 임찬규는 지난 22일 LG의 마지막 청백전 선발투수였다. 4이닝 57구만을 던졌지만 몸과 마음의 루틴을 깨고 나흘만 쉬고 선발로 나와야 했다. 1차전 불펜 대기에 이어 4차전 선발로 준비하던 좌완 손주영이 급히 루틴을 바꾸기도 어려웠다.
지난 31일 한국시리즈 대전 5차전. LG 염경엽 감독이 외인투수 톨허스트, 치리노스와 포옹하며 우승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차전이 열리던 날 오전 긴급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염경엽 감독은 2차전 선발로 임찬규를 당겨 넣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대전 3차전 이후의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염 감독은 2일 전화 통화에서 지난주 여정을 돌아보며 “큰 경기에서는 변수가 나타나면 빨리 대응해야 한다. 시리즈 전체 ‘4경기’를 잡는 걸 기준으로 플랜을 새로 짰다”고 말했다.
LG 벤치는 대전 3차전 선발로 손주영을 예정일보다 하루 앞당겨 올리기로 한 가운데 4차전은 여러 갈래로 대비한다.
우선 4차전으로 등판을 미룬 치리노스가 기대대로 회복한다면 치리노스가 선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 비상상황에 마련한 플랜A였다. 여기에 치리노스가 통증을 털어내지 못할 경우에는 송승기가 선발로 나서는 플랜B를 준비했다. 치리노스가 4차전 선발로 등판하더라도 평소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계산에 넣어야 했다. 선발 ‘1+1’ 카드를 붙이는 플랜C도 곁들인 이유였다. 치리노스가 선발로 등판한 4차전에는 2차전 선발이던 임찬규가 경기 초반부터 불펜 등판 준비를 했다. LG가 이날 임찬규를 불펜 롱맨으로 이어가는 상황이 됐다면 송승기를 선발 카드로 돌려 6차전 이후를 대비하는 길도 마련했다.
치리노스는 LG의 갖가지 상상 중 최상에 가까운 모습을 구현해 냈다. 4차전 선발투수로 6이닝 4안타 1실점으로 역투하며 LG의 고민 범위를 좁혔다.
지난 27일 한국시리즈 잠실 2차전에서 LG 선발 임찬규가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한국시리즈는 결국 선발 매치업 ‘변수 싸움’에서 갈렸다. LG가 한국시리즈 1차전 당일 선발 스케줄을 급히 조정한 것처럼 한화 또한 삼성과 플레이오프 5차전에 외인투수 폰세와 와이스를 모두 소모한 뒤 플레이오프에서 불펜투수로 맹위를 떨치던 문동주를 1차전 선발로 당기고, 2차전 선발로 류현진을 올리는 등 정규시즌은 물론 정우주를 깜짝 선발로 썼던 플레이오프와는 마운드 구성에 변화를 줬다.
한국시리즈 각종 투수 지표에는 돌발 변수에 대응한 양팀 성적이 담겨있다. LG는 한국시리즈를 4승1패를 마무리하는 동안 팀 평균자책 3.48을 기록하며 5경기 팀평균자책 7.12의 한화를 압도했다. 팀 피OPS 또한 0.609로 0.840의 한화를 크게 앞섰다.
두 팀 마운드 싸움에는 수비력 차이도 스며들었다.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한화 마운드의 BABIP(인플레이타구 피안타율)이 0.315였던 데 반해 LG 마운드는 BABIP 0.282로 야수들의 지원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