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드라마 ‘착한여자 부세미’에서 김영란과 부세미를 연기한 배우 전여빈. 사진 매니지먼트mmm
직접 만난 전여빈은 굉장히 깊고, 넓은 배우였다. 매체가 여럿 모이는 라운드 인터뷰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짧은 대답이 선호되지만,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꽤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에 열정을 다했다. 그러고 분위기가 자신의 말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다고 하면 얼굴을 붉히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해 동석한 기자들의 손사래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삶과 연기를 함께 성찰하고, 캐릭터에 굉장히 빠져든다는 점에서 전여빈은 ‘깊은’ 배우였고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촬영현장의 여러 동료 배우, 스태프들과도 마음을 나눈다는 점에서 그는 ‘넓은’ 배우였다. 4일 막을 내린 ENA 드라마 ‘착한여자 부세미’는 그런 의미에서, 전여빈의 진가를 다시 확인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장르적 만족감뿐 아니라 흥행에서도 성과를 냈다.
“촬영 막바지에 ‘시청률 7%를 넘기면 발리로 포상휴가를 간다’는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오늘(인터뷰 날짜는 4일 오후였다) 어제 방송이 6.3%가 나왔으니 마지막회에 7%가 넘었으면 좋겠네요. 갑자기 시청률이 오르니까 심장이 너무 떨렸어요. 아침마다 상대역 진영이와 윤주 언니, 감독님, 담당PD님의 연락이 오곤 했었죠.”
ENA 드라마 ‘착한여자 부세미’에서 김영란과 부세미를 연기한 배우 전여빈. 사진 매니지먼트mmm
‘착한여자 부세미’는 5일 발표된 4일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집계로 전국 가구기준 7.1%를 기록했다. 그들이 염원하던 7%를 넘은 셈이다. 물론 시청률로 드라마의 모든 부분을 평가할 순 없다. 전여빈은 과거 ‘멜로가 체질’을 방송할 때 1%가 안 되는 시청률에서도 많은 화제성과 열기를 느꼈다. 무엇보다 사계절을 모두 들여 열정을 다한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김영란과 부세미, 1인2역을 하게 된 작품이었는데요. 처음 김영란에게 다가갈 때는, 버림받은 길고양이의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생존본능이 가장 중요한 친구고 손길을 내밀어도 도움을 받지 못할 것 같은 친구였죠. 외형도 체중을 다소 감량해 바삭거리는 느낌을 내고 싶었고요. 의상에서도 다소 헐렁한 느낌을 냈죠. 나중 부세미가 돼 유치원 선생님으로 사는데, 편집은 됐지만 꿈을 잃은 영란에게 가성호 회장(문성근)님이 기회를 주신 설정이었어요.”
ENA 드라마 ‘착한여자 부세미’에서 김영란과 부세미를 연기한 배우 전여빈 출연장면. 사진 KT스튜디오 지니
드라마는 생존을 위해 살던 주인공 영란이 시한부 재벌회장과 계약결혼을 감행한 후 막대한 유산을 노리는 세력을 피해 3개월 동안 신분을 바꾸는 이야기를 담았다. 범죄 스릴러가 기반에 있지만 부세미가 중간 신분을 바꾸고 무창이라는 지역에서 살 때는 로맨스와 휴먼 드라마, 심지어 코미디의 느낌까지도 냈다.
“초반 스릴러나 액션 부분을 좋아하셨던 분들은 중간에 코믹과 로맨스가 들어오면서 다소 아쉬워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12회를 채우기 위해서는 저도 복합장르가 조금 더 다가가기 쉬웠을 거라 생각해요. 실제 저희 어머니께서도 초반보다는 무창에서의 장면들이 더 편하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쉬운 부분은 또 다음 작품을 약속드리고 싶어요.”
극 중 평범한 일상을 갈망하면서 그렇게 결핍을 드러낸 김영란의 캐릭터와 비슷하게, 올해 전여빈이 보여준 연기의 전당에서는 유독 그런 작품을 많이 만났다. 권혁재 감독의 영화 ‘검은 수녀들’에서는 의사 출신으로 구마의식에 뛰어드는 수녀를, 남궁민과 함께한 드라마 ‘우리 영화’에서는 시한부로 마지막 작품을 통해 감독과 사랑을 하는 이다음을 연기했다.
ENA 드라마 ‘착한여자 부세미’에서 김영란과 부세미를 연기한 배우 전여빈 출연장면. 사진 KT스튜디오 지니
“대본을 볼 때는 캐릭터만 보는 건 아니고요. 작품 전체를 볼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인연이 있었던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런 마음이었나?’ 싶긴 하지만 확고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거예요. 저의 마음을 흔든 시나리오와 인물이었습니다. 이번 작품도 ‘착함’이란 것이 긍정과 부정의 의미로 보일 수도 있다고 봤어요. 좋아하던 표현은 아니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착함을 넘은 ‘선함’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벌써 연기를 시작한 지 줄잡아 10년. 전여빈의 이름은 조용히 그러나 굳건하게 우리의 곁으로 다가와 있다. 김영란에서 부세미의 삶으로 ‘리셋’을 원했던 인물. 그토록 원했던 연기를 하는 전여빈에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제안을 수락할까. 전여빈은 촉촉이 젖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빠졌다.
ENA 드라마 ‘착한여자 부세미’에서 김영란과 부세미를 연기한 배우 전여빈. 사진 매니지먼트mmm
“누구나 다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 순간 충실했기에 다시 산다는 게 무섭고 상상이 잘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노력도 있었지만, 당연히 큰 배우가 아니고 운이 좋았어요. 좋아하는 연기를 업으로 삼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됐으니, 그 꿈을 이뤘으니 지금 삶을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성공이라는 관점에서도 지금은 진행형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들에 다 앞서서, 제 연기를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만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