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도경수.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첫 악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완벽했다. ‘조각도시’에서 도경수는 사람을 조작하고 감정을 조각내는 사이코패스 안요한을 연기하며 섬뜩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인터뷰 자리의 그는 차분하고 따뜻했고, 그 간극은 오히려 배우로서의 힘을 확인시키는 지점이었다.
“너무 행복해요. 처음 도전해보는 악역인데 많은 분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반응을 체감하면서 지내는 게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난 도경수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에서 첫 악역을 맡기까지의 과정, 촬영장에서의 고민, 사이코패스 캐릭터의 결을 세우기 위한 감정 설계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동안 도경수에게 악역 제안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로맨스, 청춘, 서정적인 서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순한 이미지의 배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악역 제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의외로 ‘즐거움’이었다.
“늘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걱정도 부담도 없었고, 그냥 ‘재밌겠다’가 먼저였죠. 그동안은 악역과 거리가 먼 사연 있는 캐릭터들이 주로 들어왔는데 이번이 진짜 처음이었어요.”
도경수. ‘조각도시’ 한 장면.
눈빛 연기는 이번 작품의 핵심이었다. 많은 시청자가 “눈이 돌았다” “맑은 눈의 광인”이라며 호평했지만 담담했다.
“눈이 그래도 작은 편은 아니잖아요.(웃음) 감정 표현을 했을 때 눈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격하게 봐주시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눈이 돌진 않았고요.”
광기 어린 눈빛과 달리, 그는 촬영 내내 ‘전형적인 빌런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오히려 감정을 누르며 연기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빌런들을 보면 모습만 봐도 빌런인 경우도 많잖아요. 저는 그렇게 전형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오히려 ‘빌런처럼 안 보이게 대사를 쳐볼까?’라는 고민도 했었던 기억이 나요.”
안요한은 차분함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감정의 파동이 있는 인물이다. 도경수는 그 낯선 감정선을 새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악역 연기가 저한테 더 잘 맞는다기보단, 요한을 통해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높이를 처음 경험했어요. 촬영할 땐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고 재밌더라고요.”
도경수. ‘조각도시’ 속 한 장면.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 도사린 악마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의 외형 또한 치밀하게 설계됐다.
“평범한 스타일을 하면 너무 순해 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조각도시’ 속 헤어스타일인데, 우선 머리를 탈색한 뒤 전동드릴에 파마솔을 끼워 하나하나 머리를 꼬았어요. 그 텍스처가 육안으로 보면 진짜 잘 보이는데 화면에선 자세히 담기지 않은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웃음)”
도경수는 작품 속 안요한을 단순한 ‘사이코패스’로 받아들이기보다, 특정 순간에 드러나는 기이한 순수성과 집착의 감정 구조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요한의 본질이 ‘기형적으로 왜곡된 순수악’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편집된 장면이긴 한데, 우비남에게 받은 손가락을 주운 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부분이 요한이의 본질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사이코패스 역할과 안요한이라는 인물의 다른 점인 것 같아요. 겉보기에는 차분하고 마냥 악해보이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아이 같아지는 순수악의 면모 같은 것들 있잖아요.”
배우 도경수.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결말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단호하게 자신의 해석을 내놓았다.
“저는 요한이 죽었다고 생각해요. 칼에 찔리기도 했고, 폭발까지 했잖아요. 그리고 주인공인 태중이는 죄가 하나도 없고 너무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그런 악마 같은 요한을 구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죽었으면 좋겠어요.(웃음) 근데 또 작가님이 요한이를 살린다면…살아있어야겠죠? 일단 현재 엔딩은, 제2의 안요한은 그 어느 인물이든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열린 결말인 것 같아요.”
잔혹한 설계자와는 전혀 다른 온도로 말하는 배우 도경수. 그의 첫 악역은 ‘전무후무한 빌런’이라는 평가와 함께 새로운 커리어의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다음 페이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을 줄 몰랐어요. ‘조각도시’를 깊게 이입해서 봐주신 것 같아 정말 감사해요. 다음엔 요한과 상반되는 모습으로 찾아뵙고 싶습니다. 열심히 준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