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구창모가 2023 WBC에 앞서 캠프에서 훈련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초 KBO리그 실행위원회에서 10개구단 단장은 대표팀 관련 의제를 다뤘다. 2026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모든 구단이 적극 협조하자는 내용이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야구국제대회 WBC에선 대표팀 구성 단계에서부터 ‘대의’를 보고 움직이자는 제안이 있었고, 모두의 공감은 하나의 불문율이 됐다. 너무도 당연한 듯 들리는 주제를 10개구단 단장 협의체에서 다룬 것은 그간 행태는 일면 그렇지 못했던 것을 자인했기 때문이다.
WBC는 각 구단에는 ‘남의 일’일 수 있다. WBC 한국야구 대표팀이 1라운드 전패를 하고 돌아온다고 해서 KBO리그 구단 단장이나 감독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일은 없다. WBC는 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처럼 병역혜택이라는 부가적 보상을 통해 각 구단이 선수 운용의 상수를 늘릴 수 있는 무대도 아니다.
그러나 ‘남의 일’도 나쁜 것들이 쌓이고 또 쌓이면 그 여파로 자기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장, 프런트 가릴 것이 없이 상당수 야구인은 알게 모르게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는 시간이다.
한국프로야구는 외연으로는 ‘황금시대’을 열고 있다. 상징적 구호와 같던 시즌 1000만 관중을 돌파한 지 1년 만인 올해 1200만 관중을 넘어섰다. 정규시즌 경기 하나하나가 모두 포스트시즌 못지 않은 열기 속에 진행되는 새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만원 관중의 잠실야구장. 연합뉴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를 탄듯 순조롭게 올라가는 프로야구 인기의 동력을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자신 있게 집어내는 야구인은 없다. 대부분은 아이돌 콘서트장 못지않은 풍경의 야구장 스탠드를 바라보며 ‘아마도’라는 전제로 이런저런 유추를 하고 있을 뿐이다.
오리지널 야구인들은 물론 야구 주변인들 모두 1200만 관중을 성공과 확신의 숫자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야구의 본질로 파고들면 불안 요소가 바로 뒤따르기 때문이다.
한국야구라는 상품의 수요는 단기간 대폭 늘었으나 수요를 지속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품질은 어느 위상에 가 있는지 대부분이 자신하지 못한다. WBC에서 1라운드를 통과해 본선 라운드 성격의 미국 무대를 밟아본 지도 16년이 흘렀다. 2009년 WBC 준우승 이후 2013년, 2017년, 2023년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3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4강에 올랐던 2006년 초대 대회부터 결과로 쌓아 올린 경기력에 대한 자부심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해 이제는 바닥까지 내려와 있다.
최근 NC 좌완 구창모가 내년 1월 대표팀 사이판 캠프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과정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대회 참가를 열망한 선수 의지와는 별도로 구단이 부상 리스크가 있는 선수 몸 상태에 대한 우려감을 KBO에 전하면서 캠프 참가 명단이 정리됐다.
논란은 사안의 본질 주변부만을 좌우 콤비네이션으로 때렸다. 관련 내용이 수면 위로 올라온 뒤 리그 정상급 좌완 카드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대표팀의 전력적 아쉬움과 선수에게 거액을 투자한 구단의 권리, 현실적 입장 등이 어우러져 가치 판단의 설전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일에 대한 해석은 각 구단 단장들이 WBC를 두고 애초 잡아둔 방향성에서 시작해야 옳다.
구창모가 아닌 어떤 초특급 선수라도 3월 대회를 앞두고 몸에 이상이 생기면 출전할 수 없다. 가능한 최고의 경기력을 내야 하는 대표팀 또한 올스타전 준비하듯 ‘이름값’만 보고 아픈 선수를 쓸 이유가 없다.
지난 11월16일 일본 도쿄돔. 한국가 일본과 평가전을 7-7로 마친 뒤 그라운드에서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핵심은 WBC로 향하는 KBO리그 전체의 흐름과 분위기다. 조금 오래된 표현을 쓰자면 사명감이다. 적어도 이번만은 WBC 성적이 리그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까지 대부분이 체감한 이상 각 구단이 소속팀 선수 차출의 여파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NC는 억울해했다. “우린 (선수 부상 관련) 의견을 냈을 뿐 결정은 KBO 몫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통 과정에서 조금 더 세련되게 접근했어야 한다. ‘선수 부상 이력이 잦았던 만큼 구단 프로그램대로 1월을 보내고 2월 훈련 추이를 보며 다시 한번 대표팀이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구단을 이해할 수 있었을 터다. 아울러 NC가 걱정하는 선수와 필사적으로 WBC를 준비하는 대표팀 분위기까지 모두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구단이 하는 일은 결국엔 유형과 무형으로 팬들, 미디어 등과 소통을 잘하는 것이다.
여성팬을 몰고 다닌 1980~90년대 농구대잔치,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프로축구 등 주요종목 흥망성쇠는 본질의 중요성을 입증한 역사이기도 하다. 야구 자체가 좋아져 프로야구를 찾는 팬들은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번 WBC는 KBO 10개 구단이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한 관중을 영원히 함께 갈 동반자로 만들 발판이 될 수 있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