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내려놓고 선거하자”…드로그바, 2005년 월드컵 첫 진출 직후 TV 호소 ‘재조명’

입력 : 2026.01.11 09:01 수정 : 2026.01.1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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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많은 부를 가진 나라가 전쟁으로 추락해서는 안된다. 무기를 내려놓고 선거를 치르자. 총을 쏘는 일을 멈춰줘달라.”

2005년 10월 수단 하르툼의 한 축구장 라커룸에서 카메라 앞에 선 한 축구선수의 호소였다.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쥔 직후 첼시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는 환호 대신 ‘내전’을 말했다. “국가적 쾌거의 순간을 국가적 비극을 멈추기 위한 호소의 장으로 바꾼 장면은 지금도 코트디부아르에서 ‘가장 상징적인 1분’으로 회자된다”고 디애슬레틱이 10일 전했다.

드로그바의 ‘라커룸 호소’는 코트디부아르 축구대표팀이 2006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최종예선에서 수단을 3-1로 꺾고 첫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나왔다. 그는 팀 동료들을 배경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드로그바는 내전을 벌인 로랑 그바그보 당시 대통령 정부군과 반군을 향해 공개적으로 무장 해제를 촉구했다. 그는 “북부, 남부, 중부, 서부 모든 코트디부아르 국민에게 말한다. 우리는 오늘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며 “오늘 우리는 무릎을 꿇고 부탁한다. 용서해달라. 용서해달라.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총을 쏘지 말라(Stop firing your guns)”고 호소했다.

디디에 드로그바 등 대표팀 선수들이 2005년 10월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총을 쏘지 말라(Stop firing your guns)”고 호소하고 있다.

디디에 드로그바 등 대표팀 선수들이 2005년 10월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총을 쏘지 말라(Stop firing your guns)”고 호소하고 있다.

짧은 영상은 폭발적 파장을 낳았다. 수단전에서 2골을 넣은 아루나 댕다네(전 포츠머스)는 디애슬레틱에 “드로그바는 위대한 스트라이커였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 순간의 말은 즉흥적으로 나왔지만 국가적 응집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코트디부아르 내전의 기원은 1993년 펠릭스 우푸에부아니(초대 대통령) 사망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에서 독립한 1960년부터 장기집권했던 우푸에부아니는 코코아·커피 등 농산물 생산 확대로 경제 성장의 틀을 만들었지만, 그 사후 정치권은 급격히 분열됐다. 후계자로 집권한 앙리 코낭 베디에는 ‘국가 정체성’을 명분으로 외국 출생자 및 이민자 계층을 배제하는 정책을 강화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고위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법을 추진했고, 이는 북부 지역에 많던 말리·부르키나파소 이주민 출신 공동체의 반발을 불렀다. 우푸에부아니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알라산 와타라가 1995년 대선 출마에서 배제된 것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정치적 배제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2000년 대선에서도 와타라는 출마가 막혔고, 로베르 게이가 선거 패배 후 스스로 승리를 선언하려 하면서 시위가 폭발했다. 유혈 충돌로 35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집권한 그바그보 정부는 이민자 권리를 제한하는 정책을 추가로 강화했고, 2002년 9월 정부가 군을 동원해 병력을 해산하려 하자 반발한 군·세력이 봉기하며 무력 충돌이 본격화됐다. 반군은 아비장, 코로고, 부아케 등 주요 도시를 공격해 북부 지역을 장악했고, 정부군이 남부를 통제하면서 국토는 사실상 분단됐다.

내전의 혼돈 속에서도 코트디부아르 축구는 희망을 이어갔다. 콜로·야야 투레 형제, 디디에 조코라, 에마뉘엘 에부에 등 유럽파가 본격 등장했고, 드로그바는 2004년 마르세유에서 첼시로 이적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첼시에서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을 포함해 다수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201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바이언 뮌헨을 상대로 우승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결정적 인물’로 남았다.

디디에 드로그바가 2008년 자서전을 발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디디에 드로그바가 2008년 자서전을 발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현재 코트디부아르는 2010년 당선된 와타라 대통령이 장기집권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와타라는 2016년 개헌을 근거로 임기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2025년 10월 4선에 성공했다.

2011년 U-17 월드컵에 출전한 술레이만 쿨리발리는 “드로그바는 축구만 생각하는 많은 선수들과 달리, 존중과 책임을 보여줬다. 그는 나라를 위해 모든 걸 했다”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입양된 크리스티안 만프레디니도 “전쟁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늘 그것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국민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말했다.

디애슬레틱은 “2005년 하르툼의 좁은 라커룸에서 나온 1분짜리 영상은 전쟁을 끝내지는 못했다”면서 “하지만 그날 발언은 내전 시대를 살아낸 국민들에게 ‘공존할 수 있다’는 울림을 남겼다. 축구가 때로는 총성보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코트디부아르는 드로그바를 통해 경험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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