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 알론소 감독. 게티이미지
세계 최고 명문축구단 레알 마드리드 감독은 “단 한 번의 나쁜 결과로도 직업을 잃을 수 있는 자리”다. 13일 경질된 사비 알론소 감독(44)의 짧은 임기는 냉혹한 역사를 다시 확인시켰다. 알론소는 지난해 여름 클럽월드컵 직전 지휘봉을 잡아 초반 20경기에서 3경기만 빼고 모두 승리했고 11월에는 라리가 선두(2위와 승점 5점 차)까지 달렸다. 그러나 그는 스페인 슈퍼컵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에 2-3 패배를 당한 직후 경질됐다.
디애슬레틱은 “성적만 놓고 보면 급격한 위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레알은 라리가에서 바르셀로나에 승점 4점 뒤졌을 뿐이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도 다음 라운드 진출이 유력한 위치였다. 그런데 알론소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누적돼 있었다. 라커룸 내부의 균열, 경기력의 불균형, 전술 구현 과정에서의 마찰이 동시에 폭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레버쿠젠에서 ‘무패 분데스리가 우승’을 만들어낸 알론소 축구는 디테일과 구조를 중시한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기다려주는 구단이 아니다. 정교한 시스템 구축과 결과가 항상 병행되어야 하는 곳이다. 알론소는 충분한 시간 없이 전술 실험을 강행해야 했고, 그 과정이 결국 불신으로 전환됐다.
알론소의 시작은 처음부터 비정상이었다. 확대 개편된 클럽월드컵을 통해 곧바로 팀을 만들라는 요구를 받았고, ‘정상적인 프리시즌’을 확보하지 못했다. 체력·전술·조직을 단계적으로 쌓을 시간이 없자 알론소는 공식전에서 전술을 시험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부상이었다. 수비진은 시즌 전반 내내 붕괴 수준이었다. 라리가에서 알론소는 평균 경기당 3.1명 꼴로 선발 변화를 줬다. ‘스쿼드 안정성’ 지표상 레알은 리그에서 가장 일관성이 낮은 팀 중 하나로 분류됐다. 전술 구조가 자주 바뀌다 보니, 선수들은 위치와 역할을 직관적으로 공유하지 못했고, 조직 축구가 아니라 ‘상황 대처 축구’로 회귀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알론소의 전술적 핵심은 빌드업이다. 레알은 공격 전개 과정에서 상황에 맞는 스리백으로 자주 변화했다. 센터백이 벌어지고, 오렐리앵 추아메니가 수비 라인으로 내려와 3-2-5 또는 3-박스-3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레버쿠젠 시절 알론소가 구축했던 전진 구조와 유사했다. 추아메니가 좌측 하프스페이스로 이동해 공을 받는 변형, 애슬레틱 클루브전에서는 3-5-2에 가까운 형태, 베티스전에서는 평평한 3-4-3과 같은 구조가 나타났다. 전술적으로는 “질문을 던지는(상대를 흔드는) 유연함”이었다.
문제는 그 유연함이 레알에선 ‘흐트러짐’이 되고 말았다. 위치 감각 부족이 요인이었다. 미드필더 전반이 전진·측면 이동 성향이 강해, 중앙이 비어버리는 순간이 자주 발생했다. 중원 공간이 열리면, 레알은 전환 상황에서 수비가 급격히 취약해진다. 공격에서도 조직화 한계가 노출됐다. 알론소는 벨링엄, 비니시우스, 발베르데 같은 핵심 자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음바페의 결정력은 숫자로 증명됐다. 그는 리그 18경기 18골로 폭발했고, 팀 득점의 42%를 책임졌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공격이 과도하게 기울수록 팀 차원의 역동성은 약해지게 마련이다.
알론소는 취임 직후부터 수비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클럽월드컵 전 기자회견에서 “수비는 11명이 함께 해야 한다. 모두가 압박 방법을 알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니시우스, 벨링엄, 발베르데, 음바페까지 모두가 내려와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실제로 지표상 ‘전방 압박’은 개선됐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되며 강도는 떨어졌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알론소는 “과정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마드리드에서 감독의 생존은 전술 이상으로 ‘정치’에 좌우된다는 말이 있다. 전술적 이상이 강한 지도자보다 위·아래를 함께 관리하는 지도자가 오래 버틴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알론소의 전술은 레알이라는 거대한 스타 시스템을 집단 구조로 바꾸려 했으나, 설득과 신뢰가 먼저 무너졌다. 디애슬레틱은 “레버쿠젠에서 아이디어는 팀 전체를 움직였다. 하지만 레알에서는 그 아이디어를 지탱할 시간과 권위가 부족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