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표가 12일 사이판 올레아이 구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이판 | 심진용 기자
고영표는 최근까지 제주도에서 후배 투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여름부터 계획을 세웠다. 오는 16일까지 제주도에서 훈련하며 몸을 만드는 게 원래 일정이었다. 지난 9일 시작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이판 캠프에 합류하리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고영표는 12일 사이판에서 “제주도 훈련 계획을 세울 때 주변에서도 대표팀 들어가면 어떻게 할 거냐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대표팀에 뽑히지 않더라도 훈련은 해야 하니까 그대로 진행을 했다”고 말했다. 고영표는 “K시리즈(일본·체코와 평가전) 경기도 봤고, 공 빠른 선수들도 워낙 많아서 후배 투수들이 뽑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4년 참가했던 프리미어12 때 부진도 마음에 걸렸다. 당시 고영표는 예선 첫 경기 대만전에 선발로 나갔지만 2이닝 6실점으로 난타 당했다. 대만 천천웨이에게 만루홈런을 맞았다. 고영표는 “프리미어12 대만전 때 좋은 모습을 못 보여줬기 때문에 (WBC 대표팀 합류는) 사실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시즌을 치르는 동안에도 ‘설마 뽑히겠어’하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사이판 멤버로 확정되고 나서는 고민이 더 깊어졌다. 각오도 더 단단하게 다졌다. 고영표는 “감사하게도 뽑아주셔서 더 열심히 몸을 만들면서도 한편으로 고민을 되게 많이 했다. 대만전에 부진한 기억이 있는 만큼 대표팀에 나갈 때는 정말 더 신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 컨디션이 안 되면 팀에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2023년 WBC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당시 대표팀은 조별라운드 첫 경기에서 호주에 발목이 잡혔다. 엎치락뒤치락 접전하다 7-8로 졌다. 그날 선발 투수가 고영표였다. 3회까지 완벽한 공을 던졌지만, 4회 홈런을 맞았다. 5회 1사 후 재차 홈런을 내줬다. 4.1이닝 2실점으로 교체됐다.
고영표는 “첫 경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호주전을 지고 나니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리미어12 때 대만이 우승하는 걸 보면서 전체적으로 흐름을 잘 타야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나온다는 걸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고영표의 역할이 크다. 지난해 11월 평가전에서 대표팀 투수들은 제구 불안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국내에서 가장 컨트롤이 정교한 고영표는 젊은 후배 투수들에게 그 자체로 ‘교과서’가 될 수 있다. 고영표는 “여기서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말도 기술적인 것보다 오히려 멘털과 관련한 부분인 것 같다”면서 “마운드 위에서 부담을 느끼면 안 된다. 자기가 연습해온 걸 보여줘야 한다. 상대가 잘 쳐서 맞는 건 어쩔 수 없다. 훈련할 때도 그런 조언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2차례 국제대회에서 아쉬움이 컸던 만큼 3월 WBC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내려고 한다. 고영표는 “후배들이 잘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저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이 제주도에서 훈련한 선수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민수, 배제성, 이상동 등 KT 후배들, KT에서 한화로 이적한 엄상백, 그리고 엄상백과 한화에서 인연을 맺은 이태양(KIA), 배동현(키움) 등이 지금도 제주도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 고영표가 계획을 주도했고, 훈련을 도와주는 트레이너 비용을 비롯해 현지 식사와 차량 등 비용 전반도 부담했다. 고영표는 “함께 모여 운동하면서 몸 만드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캐치볼 밸런스도 좋고 지금 컨디션이 아주 좋다. 제주도에 남은 선수들도 열심히 운동하고 있을 거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