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백기태 역을 연기한 배우 현빈.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우민호 감독의 시리즈 디즈니플러스의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현빈은 그동안 쌓아놨던 대중의 기대감을 보기 좋게 배신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부도 거머쥐기 위해 마약사업을 했던 중앙정보부 요원을 그렸던 작품에서 현빈은 야망을 넘어 야욕의 캐릭터였던 백기태로 분했다.
위로는 권력의 정점에 충성하며 상납금을 대고, 아래로는 마약업자들과 거래해 일본과 사업을 했다. 이른바 ‘히로뽕’을 파는 중앙정보부라는 로그라인을 가진 드라마에서 현빈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눈빛을 보였다. 차가운 경멸의 눈빛, 살고자 하는 악다구니의 눈빛,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의뭉스러운 눈빛이다.
“백기태를 단순한 ‘악인이다’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고 공감 가는 부분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물론 불편하고, 반대급부도 생깁니다. 하지만 응원을 하는 부분도 있고요. 이게 아마 기태나 우리 드라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겪었던 아픔이나 힘든 상황이 결국 기태를 욕망과 야망, 권력과 부로 내몰아간 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백기태 역을 연기한 배우 현빈의 캐릭터 포스터.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나서 일본에서도 자랐던 백기태 캐릭터는 결국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어, 기태는 월남 파병을 자처한다. 이곳에서 전쟁이라는 약육강식이 사람에게 어떤 기회와 실패의 장이 되는 걸 체험한 후 강자로 나아간다. 그는 야망을 드러내지만, 이 이유가 동생인 백기현(우도환), 백소영(차희) 등 동생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일말의 동정은 산다.
“기태가 나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족에게 하는 일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라도 이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이 상황을 대입하면 과연 ‘아니야?’라고 물을 수 있는 작품이죠. 누구나 선택의 기준이 성공이냐 양심이냐 다를 수 있지만, 그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방심하면 누구나 백기태처럼 된다고 봐요.”
특히나 선 굵은 작품으로 유명했던 우민호 감독의 전작답게 이번 작품 역시 진한 누아르의 향기가 곳곳에 배였다. 현빈은 우람한 중앙정보부 요원을 위해 전작 ‘하얼빈’에 비해 13~14㎏ 이상을 증량했고, 일부러 몸에 맞는 정장을 골랐다. 그리고 깔끔하게 빗어넘긴 ‘포마드’ 머리에 시종일관 꺼내 피는 담배의 연기는 분위기를 더했다. 함께 출연한 오예진 역 서은수는 그를 ‘톰 하디’라고 표현했다.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백기태 역을 연기한 배우 현빈 출연장면.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위압감을 주는 외모를 위해 증량을 했고요. 누구에게나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성격을 상징하는 머리를 했죠. 담배는 권력의 상징처럼 묘사되는데요. 처음 황국장(박용우)에게 담배를 붙여주던 기태가 나중에는 천석중 비서실장(정성일)만 피는 시가를 물며 끝이 나죠. ‘하얼빈’에서도 우민호 감독님과 담배를 많이 피웠는데, 이번에는 너무 담배 장면이 많아 힘들었어요. 기태가 피던 건 ‘금연초’입니다.(웃음)”
현빈은 극 중 장건영 검사 역 정우성과 정성일 등과 주로 연기했다. 멋지다고 생각한 선배들과의 호흡은 큰 영감이 됐다. 여기에 특유의 ‘엇박’ 연기를 간직한 표과장 역 노재원, 그의 인간적인 면을 꺼내주는 이케다 유지 역 원지안과의 호흡도 인상을 남겼다.
“지금의 모습이 전에 보지 않으셨던 모습일 수도 있어요. 이 캐릭터를 좋아해 주셨다는 전제 아래 말씀을 드린다면, 저도 나름대로 많은 작품을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표현했습니다.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하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머뭇대기보다, 자신 있게 다가갈 힘이 생깁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제게 그런 작품인 것 같아요.”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백기태 역을 연기한 배우 현빈 출연장면.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0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였던 그는 2014년 영화 ‘역린’의 정조, 2017년 영화 ‘공조’의 북한요원 림철령과 2019년 ‘사랑의 불시착’ 북한 군인 리정혁 등 거친 면 안에 순애보를 간직한 인물을 연이어 연기하면서 스스로의 무게를 더했다. 최근작 ‘교섭’이나 ‘하얼빈’ 그리고 ‘메이드 인 코리아’ 역시 현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중량감’으로 모여들게 했다.
“특별히 남다르게 사는 건 아닌 것 같고요. 명분이 없다면 잘 안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 납득이 돼야 연기를 하는 거 같아요. 아내(손예진)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같은 배우여서 그런지 장면 단위로 이야기를 해주고요. 짧게 나오는 장면에서도 인상을 받는 등 좋은 이야기를 해주죠.”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백기태 역을 연기한 배우 현빈.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미 한류 팬들에게도 알려진 인물이지만 글로벌 OTT 플랫폼에서 공개된 이번 작품으로 그의 입지는 더욱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하반기에 공개 예정인 두 번째 시즌 더욱 격랑 하는 서사도 예고하고 있다. 현빈이 생각하는 방향성은 늘 똑같았다. 굳이 무거운 역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었다. 명분이 있다면 코믹과 호러를 하는 현빈도 볼 수 있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