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대부분의 임대차 관계는 갈등이 아니라 기대에서 출발한다. 임대인은 응원의 덕담을 건네고, 임차인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소송을 염두에 두고 계약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많은 분쟁은 결국 법정으로 향한다. 왜 대화는 멈추고, 협의는 무너질까?
임대차계약서에 처음 도장을 찍는 순간의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하다. 임차인은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기대를 안고 가게 문을 연다. 임대인은 현재로서는 합리적인 수준의 임대료를 받으면서, 향후 시장 상황에 맞춰 적절한 조정이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당장의 조건이 서로의 기대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더라도, 미래에 대한 낙관 속에서 계약의 세부 조건은 종종 부수적인 요소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임차인의 영업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시작하면, 임차인이 품고 있던 낙관도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임차인에게 임대료는 곧 영업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장사가 일정 부분 잘 이루어지더라도 인건비, 재료비, 각종 고정비가 함께 상승하는 경우가 많아 임대료 인상에는 본능적으로 부담을 느끼게 된다. 특히 법에서 정한 범위를 넘어서는 인상 요구를 받게 되면, 임차인은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반면 임대인은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바라본다. 임대인으로서는 늘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법에서 허용한 5% 인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마저도 협조하지 않는 임차인에게는 서운함과 반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임대인에게 임대료 인상은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재산권의 행사이자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숫자, 같은 규정을 두고도 임대인과 임차인의 체감은 전혀 다르다. 임차인에게 5%는 생계의 압박이지만, 임대인에게 5%는 최소한의 조정에 불과하다. 이 간극이 바로 분쟁의 출발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계약 체결 당시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 당사자가 도장을 찍는 순간에도, 그 이면에서는 누군가가 더 많이 양보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로는 임대인도, 임차인도 모두 만족하지 못한 채 “일단 이렇게 하자”는 불완전한 합의에 머무르기도 한다.
이 불완전한 합의는 경기 침체, 매출 감소, 시세 변화 같은 외부 변수 앞에서 쉽게 균열을 드러낸다. 그때부터 대화의 언어는 달라진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는 말과 “이미 합의하지 않았느냐”라는 말이 충돌한다. 협의는 점점 어려워지고, 감정은 앞서 나간다. 과거의 불만까지 떠오르면서 대화는 해결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승패의 문제가 된다. “누가 옳은가”보다 “누가 이길 수 있는가”가 앞서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송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라 유일한 출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감정이 누적된 이후에는 법이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이 되기 어렵다. 각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임대차 분쟁이 소송으로 가는 이유는 누군가가 처음부터 악의를 품었기 때문이 아니다. 서로 다른 기대와 기준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소송은 그 관계가 더 이상 조정되지 않는다는 신호에 가깝다.
분쟁을 줄이는 데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제가 아니라, 합의의 순간에 기대의 차이를 직시하는 태도다. 임대료가 오를 때 임차인이 무엇을 잃게 되는지, 임대인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계약 단계에서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면, 많은 분쟁은 법정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소송은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대화가 끝난 뒤에 남는 마지막 수단이다. 임대차 분쟁을 이해하려면 왜 대화가 실패했는지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 황규현 교수는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이자 부동산·임대차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임차인 보호를 위한 주택임대차 규제에 관한 연구(영국, 미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시 소상공인과 주무관으로 근무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주요 저서로는 ‘NEW 상가임대차 분쟁 솔루션’을 포함한 5권의 전문 서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