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A4 산들. 오디컴퍼니 제공
“내가 ‘엘’이 가능한가? 할 수 있나?”
스스로에게 던졌던 의문은 4개월의 시간을 지나 환호와 확신으로 바뀌었다.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디큐브링크아트센터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난 B1A4 산들은 뮤지컬 ‘데스노트’의 명탐정 ‘엘(L)’로 살아온 치열하고도 뜨거웠던 기록들을 덤덤하게 털어놨다.
산들에게 이번 작품은 ‘성공한 덕후’의 설렘인 동시에, 이름만으로 압도적인 전작 선배들의 존재감을 넘어서야 하는 커다란 심리적 장벽이었다.
뮤지컬 ‘데스노트’ 엘 역을 맡은 B1A4 산들. 오디컴퍼니 제공
“성공한 덕후 느낌으로 ‘완전 대박인데?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싶다가도, 한편으론 이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이 컸어요. 처음엔 너무 무서워서 진짜 큰일 났다 싶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하지만 관객분들께 내가 생각하는 엘의 본질만큼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는 생각으로 무대에 섰고, 그 진심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지금은 매 순간 행복합니다.”
그는 원작의 만화적 설정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본 너머 엘이라는 인물이 가졌을 법한 근원적인 ‘외로움’을 탐구했다.
“제가 이해한 엘은 사차원 천재지만 ‘누가 이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참 외롭겠구나’ 싶은 인물이었어요. 사람들에게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스스로를 닫아버린 그 내면을 이해하려 노력했죠. 남들은 엘의 독특한 대사나 자세가 오글거리지 않냐고 묻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저 엘의 삶 자체로 존재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뮤지컬 ‘데스노트’ 엘 역을 맡은 B1A4 산들. 오디컴퍼니 제공
라이토와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돋보이는 장면에서 산들은 상대를 압도하기보다 교묘하게 자극하는 방식을 택해 극의 텐션을 높였다.
“제가 라이토를 잡아먹듯이 생각하며 그의 화를 유도하는 거예요. ‘재밌네, 계속해봐’라는 느낌으로 유인하고 긁는 역할이죠. 딱 부딪혀서 같이 성내는 게 아니라, 그가 스스로를 드러내게끔 화를 받아주는 거예요. 그런 호흡들이 무대 위에서 맞아떨어질 때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뮤지컬 ‘데스노트’ 엘 역을 맡은 B1A4 산들. 오디컴퍼니 제공
폭발적인 가창력을 요구하는 넘버 ‘The Game Begins’나 ‘변함없는 진실’을 소화하면서도, 산들은 뮤지컬 배우로서의 자존심과 대중의 피드백 사이에서 끊임없이 타협점을 찾아갔다.
“제 활동에 관심이 많아 후기를 거의 다 찾아봐요. 예전엔 평가 하나하나에 휘둘렸지만, 이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는 여유가 생겼죠. ‘그 부분은 관객이 보기에 아니었나? 다음번엔 다르게 해보자’며 공연을 복기하고 타협해 나가는 과정이 저를 성장시켜요. 무대 위에서 그 누구보다 엘을 잘 표현하고 싶어 하는 제 ‘욕심’이 계속 저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B1A4 산들. 오디컴퍼니 제공
공연이 약 한 달여 남은 지금, 산들에게 ‘데스노트’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4월 21일 B1A4 컴백 준비를 병행하면서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무대 위 명탐정의 그것처럼 날카롭고도 반짝였다.
“덕후로서 화려한 기억이자, 뮤지컬 배우 산들을 대중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킨 소중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공연의 낭만을 깨고 싶지 않아 원작 애니메이션도 끝날 때까지 안 보려고 아껴두고 있어요. 이 뜨거운 패기를 마지막 공연까지 온전히 무대 위에서 쏟아붓고 싶습니다.”
한편, 산들은 오는 3월 14일 마지막 무대를 끝으로 ‘데스노트’ 여정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