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임대차 분쟁은 어느 날 갑자기 터지지 않는다. 대부분 ‘협의’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대화가 결국 분쟁으로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의견을 나누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각자의 답을 정해놓은 채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과정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협의가 실패하는 이유는 대화의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화의 출발점부터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임대차 계약 체결 이후 협의가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대체로 두 가지다. 임대인이 임대료 인상을 요청하거나 퇴거를 요구할 때다. 임대인에게는 이것이 자산 관리와 운영의 문제일 수 있으나, 임차인에게는 생계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서로 체감하는 무게가 전혀 다르기에, 협의는 구조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
임대인은 자신의 요청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합리적인 조정이자 정당한 재산권 행사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임대인이 무심코 내뱉은 가벼운 한마디가 임차인에게는 삶의 기반을 흔드는 충격이자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협의가 성립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대화에 임하기 때문이다. 협의라는 형식을 빌렸을 뿐, 실제로는 특정 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요식 절차이거나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다. 이 순간 협의는 상대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가 된다.
이러한 방식은 필연적으로 한쪽의 포기를 전제로 한다. 상대방이 이를 수용하면 관계는 유지되겠지만, 거부하는 순간 갈등은 급격히 폭발한다. 결국 누군가의 일방적인 양보나 소송이라는 강제적 해결 절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협의가 갈등의 완충 장치가 아닌, 분쟁의 예고 단계로 전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협의의 성패는 내용보다 전달하는 방식에서 결정된다. 특히 첫 제안의 태도가 중요하다. 상대방이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던지는 말은, 시작도 하기 전에 상대의 방어 기제를 자극한다. 협의는 설득의 기술이기에 앞서 이해의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무에서 협의가 원만한 합의로 성사될 때는 공통점이 있다. 충분히 이른 시점에 요청을 전달하고, 상대방에게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고, 단 한 번의 대화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할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즉, 성공하는 협의는 자신의 조건을 관철하는 대화가 아니라, 상대의 사정을 확인하며 ‘조건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협의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긍정적인 해결책이 보인다.
반대로 이익과 손해만 따지며 상대의 사정을 외면한 채, 압박을 통한 요구를 협의로 포장한다면 대화는 방어와 반박의 소모전으로 변질될 뿐이다.
임대차 분쟁을 줄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협의를 시작하는 태도의 변화다. 협의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타이밍과 배려가 맞물릴 때 비로소 협의의 문이 열린다. 그 문을 스스로 닫아버린 이후에는 법의 절차로도 다시 열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황규현 교수는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이자 부동산·임대차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임차인 보호를 위한 주택임대차 규제에 관한 연구(영국, 미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시 소상공인과 주무관으로 근무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주요 저서로는 ‘NEW 상가임대차 분쟁 솔루션’을 포함한 5권의 전문 서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