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류승완 감독 “이번 영화하고 여한이 없어졌어요”

입력 : 2026.02.2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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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휴민트’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현장 연출 이미지. 사진 NEW

영화 ‘휴민트’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현장 연출 이미지. 사진 NEW

류승완 감독과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그는 정말로 행복한 감독이었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끌리는 영감을 따르고 이를 원 없이 펼쳐보는 일은 상업예술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류 감독은 그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당대를 상징하는 스타일과 작품성, 흥행을 모두 한 번에 거머쥔 경험이 있었다. 그 행복한 감독은 지금 거대한 전환기의 앞에 서 있다.

류승완 감독은 지난 11일 개봉한 ‘휴민트’에서 그야말로 하고 싶은 걸 다 해봤다고 했다. 좋아하는 액션도 거의 막바지 한 시간 쉴 새 없이 몰아쳐 봤으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황량하고 남루한 느낌을 위해 라트비아에서도 4개월을 넘게 체류해봤다. 거기에 그동안 그의 영화에서 부족하다고 여겨지던 멜로의 감정도 박정민, 신세경의 관계를 통해 실컷 해봤다고 생각했다.

“늘 그렇지만, 익숙함과 새로움을 어떻게 조화하느냐가 중요했어요. 환경도 인물도 바꿔보고 늘 그랬죠. 이번에도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인물의 정서를 관객이 찾아갈 수 있게 해보자 싶었죠. 관객이 ‘벌써 클라이맥스에 와 있는 거야?’하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리듬에 빠질 수 있도록요.”

영화 ‘휴민트’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현장 연출 이미지. 사진 NEW

영화 ‘휴민트’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현장 연출 이미지. 사진 NEW

국가정보원 요원이 나오는 첩보 액션인 데다, 북한 쪽 요원에 사연이 있고 서로 속고 속이는 반전이 거듭되는 로케이션물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그의 2013년작 ‘베를린’이 떠오른다. 실제 ‘베를린’의 인물 표종성(하정우)의 뒷이야기가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류 감독은 ‘휴민트’는 다른 영화라고 했다. ‘휴민트’는 그가 이별의 정서를 두고 만든 첫 영화였다.

“이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변하는 것들이나 헤어지거나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이 생겼어요. 남겨진 사람의 쓸쓸함에 대해서도요. ‘베를린’도 이런 정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게 앞서지는 않았어요.”

‘베를린’을 취재할 당시에 얻었던 이야기를 놓고 ‘휴민트’의 초고를 쓴 후 류 감독은 개봉까지 꽤나 긴 시간을 버텼다. 그 사이 시간이 지났고, 코로나19로 영화계에 혹한이 밀어닥쳤다. 그에게도 ‘베테랑’ ‘군함도’ ‘모가디슈’ ‘밀수’ 등 다양한 작품이 지나갔다. 그의 작품이 ‘이별’을 말했듯, 류승완 감독도 이번 작품을 통해 또 한 번의 ‘이별’을 결심하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 한 장면. 사진 NEW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 한 장면. 사진 NEW

“저는 항상 보고 좋아하는 장르가 있으면 그 요소를 반드시 넣어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도 ‘첩혈속집(1992·오우삼 연출),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1965·존 르카레 원작, 마틴 리트 연출)‘ 등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사무라이‘(1967·장 피에르 멜빌 연출)까지는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요.(웃음) 이번 영화를 하고 나서는 그런 표현을 썼는데 미련이 없어졌어요. 여한이 없달까요? 진짜 하고 싶은 걸 다 해봤어요. 이제 뭔가 유년기를 지나 홀가분하게 저의 다음 영화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는 류승완이 차릴 수 있는 모든 성찬을 구비한 작품이었지만, 그리고 때맞춰 터져준 ‘멜로장인’ 박건 역 박정민의 대중적 호감도 때문에 좋은 예감도 생겼지만, 개봉 2주 차 아직 160만명 관객 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극 중 납치 북한주민 여성들을 바라보는 ‘착취적 시선’에 대한 논란과 액션의 소재로서 통유리관의 존재, 여러가지 첩보액션 설정오류와 관련한 갑론을박 등 호재보다는 부정적인 이슈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쿨하게 비슷한 시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장항준 감독을 축하했고, 미소를 건넸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 한 장면. 사진 NEW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 한 장면. 사진 NEW

“영화를 공개하면서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마이크를 쥔 손에 땀이 나서 감전을 걱정할 정도였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관객이 들어찬 극장을 보고 울컥하기도 했죠. 마치 쇠락했다 다시 사람들이 오는 ‘부곡하와이’를 오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작품을 공개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저야 원래 목적이 박스오피스가 아니었고, 성공과 실패도 해봤지만 걱정되는 것은 후배들이에요. 그들이 놀 놀이터를 잘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있거든요.”

어느덧 연출 30년 정도가 된 그는 인터뷰집 ‘재미의 조건’을 최근에 출간하기도 했다. 매체환경의 변화, 밀려드는 글로벌 OTT의 공세, 무엇보다 2~3시간 극장을 버티지 않으려는 지금의 관객들, AI(인공지능)의 공습. 영화의 미래에는 ‘허들’ 투성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자신이 끌리는 곳을 향해 달렸고 이번 촬영에는 쓸개에서 엄지만 한 돌이 두 개 나올 정도로 고통을 참으며 몰입하기도 했다.

영화 ‘휴민트’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현장 연출 이미지. 사진 NEW

영화 ‘휴민트’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현장 연출 이미지. 사진 NEW

“이창동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너무 애쓰지 마라.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라고요. 결국 영화는 관객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어떤 분들을 위해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아요. 영화관에서,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 뭘까. 점점 규모를 줄이며 심플해져 봐야겠다 싶습니다. 아, 장항준 감독 ‘왕과 사는 남자’는 그런 의미에서 아낌없이 축하해주고 있습니다. 그 현장에 커피차도 보냈거든요. 잘돼야 제 다음영화에도 커피차를 받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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