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빗사위’는 ‘고비 중 가장 큰 고비’ 영어로 ‘클라이맥스(Climax)’를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이명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 포스터. 사진 NEW
‘이명세 감독’과 ‘12.3 비상계엄’. 이 두 단어를 병치하기엔 처음에는 어색하다. 이명세 감독이 누군가. ‘지독한 사랑’의 단칸방에서 솟아오르는 주전자의 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故 안성기와 박중훈의 빗속 결투 장면, ‘형사 Duelist’에서 보름달에 가려진 담벼락 밑 그림자에서 춤추는 듯한 두 주인공의 검술 장면. 그는 ‘지독한 스타일리스트‘라 불렸다.
그런 그가 곧이곧대로 펼쳐지는 장면을 담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도 이상했지만, 그 소재가 ‘12.3 비상계엄 사태’라는 점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명세 감독의 새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은 2024년 12월3일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를 다루고 있다. 스타일리스트가 다루기엔 너무나 엄혹하고 건조한 소재다.
이명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 한 장면. 사진 NEW
이명세 감독은 이 작품을 놓고 ‘시네마틱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갖다 붙였다. 93분의 작품 역시 그런 평가가 그대로 나올 만하다. 그는 특유의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화려한 편집 그리고 유머와 냉소를 빠르게 집어넣는 기술을 발휘하면서 12.3 비상계엄 사태를 보는 또 다른 시선을 창조해냈다.
내용은 모두 다 아는 것과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20대 대통령으로 부임한 이후 펼쳐지는 국정의 난맥상이 이어지고, 각종 재판을 통해 드러난 당사자들의 발언 내용이 자막이나 녹취, 공식석상에서의 발언 등으로 이어진다. 초반과 후반에는 이명세 감독 특유의 미장센이 등장하면서 과연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가 맞는지 의심하게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명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 한 장면. 사진 NEW
비상계엄 사태는 국회로 국민들을 불러 모았고, 이질적인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특수부대가 헬기로 여의도 상공을 날았다. 계엄해제 요구를 하기 위한 안건이 상정되고, 의원들이 모이면서 한쪽에는 공수부대의 진입을 실시간으로 막는 국민들과 국회 보좌진의 모습이 배열돼 긴장감을 높인다. 오히려 계엄해제 요구가 통과되고 이 사실이 퍼지는 장면에서는 다큐멘터리 특유의 시각으로 연출을 자제했다.
결국 비상계엄은 저지됐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이명세 감독은 이러한 숨 막히는 12월3일부터 12월4일 새벽까지의 상황을 실사와 AI 화면, 웹툰 스타일의 연출과 각종 게임을 방불케 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현란하게 표현했다. “놀면 뭐하겠냐” 싶어 했다고 하긴 하지만 스타일리스트로서 맺혀왔던 응어리가 12.3 비상계엄이라는 소재를 만나 응축돼 터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명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 한 장면. 사진 NEW
단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의 정수를 담고 있느냐는 장르적 질문에 있어서는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명세 감독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 그리고 내란의 중심인물들을 다루는 시각은 비판적이다 못해 조소가 섞여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조롱에도 가깝기 때문이다. 진보 성향의 방송인 김어준씨의 기획이 있었기에 작품은 키치적이고 뜨겁지만, 한편으로는 정서적으로나 표현적으로 과한 부분도 못지않다.
이명세 감독을 따르는 표현들은 그가 유명세를 얻기 시작할 때부터 한결같았다. 이미지는 화려하지만 스토리는 빈곤하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가 짜여 있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명세 감독은 작정하고 화려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로서의 본령을 갖고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느냐에 대한 질문에서는 주저할 수도 있다. 감독의 의중이 빠지는 다큐멘터리의 모습은 그 현실성으로 관객을 더욱 사로잡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