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다큐 인사이트’
오는 9일 오후 10시 KBS1 ‘다큐 인사이트’는 배우 강신일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94세 김하종 씨. 그에게도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한 사람, 아버지가 있다. 한국전쟁 전후 어지러웠던 시기,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년 김하종. 그는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아버지에게 가는 길’은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경주유족회 회장 김하종 씨의 인생을 기록한다.
평생토록 아버지를 그리워한 이가 있다. 바로 94세 김하종 씨.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평생 아버지 없는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 아버지는 지금까지 한시도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27살부터 한평생을 달려왔다.
한국전쟁 전후는 좌우 이념 대립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질서한 시기였다. 1949년 7월, 김하종 씨의 고향 마을 사람 30여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총부리는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하종 씨의 아버지는 시신을 수습하러 갔다가 무자비하게 폭행당했다. 엉겨 붙어 죽어 있는 친척들을 보고, “시신을 옷이라도 갈아입혀 매장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KBS1 ‘다큐 인사이트’
무자비한 총살과 폭력으로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들은 민보단. 이들은 해방 이후 좌우 이념 대립이 격렬했던 시기 반공을 목적으로 조직된 우익 청년 단체 중 하나였다. 경찰의 치안 유지 지원을 명분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지만, 아무런 적법 절차 없이 무고한 주민들을 좌익으로 몰아 학살했다. 민보단에게 죽임을 당한 경주 지역 주민은 최소 2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숨죽여 살아가는 동안, 주민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자(경주 내남면 민보단장 이협우)는 국회에 입성해 내리 3선을 지냈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다. 김하종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악착같이 공부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고, 법무부 형정국에서 일하게 됐다.
4·19 혁명 이후 세상이 바뀌면서 마침내 숨죽이고 있던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경주유족회(당시 경주지구 피학살자 유족회)가 조직됐고, 김하종 씨는 27세의 나이에 회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유족들과 함께 학살 가해자인 민보단장 이협우를 재판대에 세워 사형선고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힐 수 있겠다는 희망도 잠시.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다시금 시련이 찾아왔다. 정권을 잡은 군부가 유족회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 유족회 활동은 어느새 국가를 위협하는 범죄가 되어 있었고 3년간 복역해야 했다. 그 사이 가해자인 민보단장 이협우는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유족회 간부가 탄압받는 것을 보면서 유족들의 증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고 유족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옥살이까지 한 김하종 씨. 이후에도 그는 신원특이자로 끝없는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KBS1 ‘다큐 인사이트’
“우리 아버지만 (진실 규명) 됐다고 해서 그냥 방치할 수는 없잖아요 하는 김에 내가 마무리 짓고 가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경주유족회 회장, 김하종)
27세에 처음 경주유족회 회장을 맡아 이제는 94세가 된 김하종 씨.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청춘을 다 바쳤다. 그러나 국가를 상대로 70여 년 전 사건의 진실을 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과 같이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경우, 진실 규명을 위해 국가 차원의 자료 확보와 조사가 필요하다. 독립적인 국가 조사기구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1기가 2005년 출범했으나 5년 만에 종료됐다. 2기 출범까지 그 후로 10년이 걸렸다.
간절했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기 출범. 김하종 씨는 1960년 유족회 활동을 시작한 지 63년 만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진화위 2기 동안 김하종 씨의 아버지를 포함해 270여 명의 경주 지역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결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남은 유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하종 씨는 3기 진화위에서 남은 유족들의 한이 모두 풀리는 것을 보고 싶다.
자신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모두의 아버지를 위해 평생을 바친 김하종 씨.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여정을 만나본다.
배우 강신일
다양한 작품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배우 강신일이 ‘아버지에게 가는 길’의 나레이터로 참여한다. 깊고 힘 있는 목소리의 강신일 배우와 김하종 씨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다큐 인사이트’의 ‘아버지에게 가는 길’은 2026년 4월 9일 목요일 밤 10시 KBS1에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