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 지속 ‘원유 재고량, 이대로 둘건가’
이란이 미국과의 휴전 합의 이후에도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놓지 않고 있다. 특히 이란은 해협 통과 선박 수를 하루 10여 척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암호화폐나 위안화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국제 사회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통행료 30억’ 요구, 혁명수비대 승인 없으면 통과 불가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은 최근 체결된 2주간의 휴전 기간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모든 선박이 군사조직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사전 승인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루 135척 오가던 해협 운송량이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특히 이란은 해협 통과를 조건으로 거액의 통행료를 요구하고 있다. 통행료는 선박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되며, 초대형 유조선의 경우 최대 200만 달러(약 3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제 수단 역시 서방 금융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암호화폐나 중국 위안화로 한정했다.
이란은 자국에 우호적인 국가의 선박에는 낮은 비용을 적용하는 반면, 미국이나 이스라엘 연계 선박은 철저히 차단하는 ‘차별적 통행 체계’를 구축해 해협을 무기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정보업체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쟁 이전 하루 평균 135척에 달했던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은 최근 한 자릿수까지 급감했다. 휴전 선언 직후에도 하루 통과 선박이 4척에 불과할 정도로 해상 물류는 사실상 마비 상태다.
전 세계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량 약 20%가 지나는 요충지가 막히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일부 통행료를 위안화로 결제하도록 한 점은 국제 원유 시장에서 달러 패권을 흔들고 서방의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국제 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르면 호르무즈와 같은 자연 해협은 인공 운하와 달리 통행료 부과가 금지되어 있어 이란의 조치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란이 선박별로 선별적 허가를 내주고 있어 사실상 원유 수송 흐름이 멈춘 상황”이라며 “명확한 안전 보장과 통행 자유가 회복되지 않는 한 글로벌 물가 압박과 에너지 대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통행료 이슈 고착화 흐름을 두고 국내 정유 4사인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HD현대오일뱅크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이 연간 1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억대의 통행료도 문제지만, 혁명수비대의 승인을 기다리느라 발생하는 용선료와 물류 지연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현재 해협 내에 우리 유조선들이 실제 묶여 있어 상황이 매우 긴박하다”고 전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쟁 전 하루 135척에서 최근 한 자릿수까지 급감했다. 이로 인해 국내 원유 수입량은 평시 대비 절반 수준인 하루 160만 배럴까지 떨어졌다.
■ 원유 재고량 바닥 막아야 ‘공장 가동 문제 우려’
업계에서는 현재 보유 민간 원유 재고가 수개월 뒤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정유사는 정제설비 가동률을 낮추는 ‘감산’을 심각하게 검토 중이다. 원유를 들여와 여기서 휘발유, 경유 등으로 뽑아내는 것인데 ‘감산은 곧 시장 내 정유 신규 공급량’이 줄어듬을 뜻한다.
이는 자동차산업, 제조업, 석유화학업계 등에도 치명타다. 이미 제품 포장재로 쓰이는 원료인 나프타(납사) 수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관련 공장 가동 중단 위기에 직면했다.
실제 울산에 한 정유 회사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원유 수입이 일부 막히자 정제 시설 3기 가운데 1기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정부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가동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정유사에 정부 비축유를 대여해 주는 ‘비축유 스와프(SWAP)’를 추진하는 한편,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홍해를 경유하는 우회 수송로 확보를 독려하고 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카자흐스탄 등 중동 외 지역에서 대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4월 중 약 5000만 배럴의 대체 원유를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평시 도입량(8000만 배럴)에는 여전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서울 평균 휘발유는 2017원, 경유도 2000원 라인을 돌파한지 오래다. 전국 평균도 2000원대 ‘육박’이다.
한 에너지 경제 전문가는 “통행료 부과는 결국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산업 전반의 물가 폭등을 초래할 것”이라며 “에너지 수급선 다변화를 위한 구조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