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단기대체 외인 3이닝 6실점 6볼넷
첫 등판 아쉬움 남겨
대형콘서트장 같은 KBO 야구장
낯설고 긴장감 증폭
수만명 앞 마운드 평온함부터 찾아야
진짜 피칭 보여줄 듯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불펜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으로는 ‘괜찮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이숭용 SSG 감독도 150㎞대 초반까지 나오는 패스트볼에 좌우타자별로 쓸 수 있는 변화구를 고루 장착하고 있는 새 일본인 좌완투수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경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걱정했던, 한가지 변수가 실전 마운드에서 튀어나왔다. 트래킹데이터로는 측정할 수 없는 감정의 색깔이 일상적이지 않은 듯했다.
SSG 히라모토 긴지로는 지난 9일 잠실 두산전에서 1회부터 스트레이트 볼넷 2개 포함, 3타자 연속 볼넷을 허용하며 흔들렸다. 1회 3실점 이후 2회를 무실점으로 어렵게 넘겼지만 3회까지 볼넷만 6개를 내주면서 3안타 6실점으로 KBO리그 첫 등판 이력을 마쳤다.
긴지로는 자기 공을 던지지 못했다. 기존 외인투수 화이트의 단기대체 선수로 SSG 유니폼을 입은 긴지로는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긴 했지만,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 소속으로 올시즌 이닝당 탈삼진수 14.77개를 기록할 만큼 까다로운 좌완이었다. 그러나 KBO리그 첫 등판에서는 상대 타자들과 싸우기도 전에 본인과 싸우는 데 급급했다.
LG 투수코치 시절부터 꾸준히 성과를 내며 다양한 구성의 투수진을 끌어온 이력의 SSG 경헌호 투수코치는 긴지로가 넘어야 할 첫 등판 숙제를 내다보고 함께 예습도 했지만, 누군가의 감정을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KBO리그 야구장은 그 자체로 세계 어느 리그에도 없는 풍경이다. 그날 잠실야구장은, 긴지로에게 대형 콘서트장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마운드는 투수판이 아닌 수만관중에 둘러싸인 무대였을 것이다. 관중석에서 쏟아져 나오는 응원가의 볼륨이 달랐고. 360도 시야에 걸리는 스탠드의 색깔과 움직임도 달랐을 것이다. 긴지로가 간접 체험할 수 있었던 일본프로야구 1군 구장에선 요란한 응원전이 벌어져도 질서정연한 나팔 소리가 들리는 정도다. 긴지로는 자기 밸런스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등 명품 드라마를 집필한 박해영 작가의 새 작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최근 대중 속으로 들어와 있다.
드라마 속 황동만(구교환)이 차고 있는 감정워치에는 ‘긴장’, ‘흥분’, ‘난감’, ‘안도’ 같은 상황에 따른 착용자의 심리 변화가 그에 어울리는 컬러와 함께 나타난다. 드라마의 몰입도를 키우기 위한 가공의 디바이스이긴 하지만 감정워치에 들어오는 신호로 극중 인물은 자신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황동만의 감정워치가 실존한다면, 긴지로 손목에 한 번쯤 채워보고 싶은 게 SSG 스태프의 지금 마음일 것이다. 긴지로의 다음 등판은 15일 문학 LG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구장별로 평균관중 및 응원전 체감 강도가 다채로웠지만, 프로야구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최근에는 어느 야구장에 가도 열기에 차이가 거의 없다. SSG의 홈 문학구장 또한 뜨거운 응원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다시 마운드에 오를 긴지로의 그날 감정은 어떤 색깔일까. 이왕이면 SSG 고유 유니폼 컬러인 붉은색보다 ‘랜더스벅 유니폼’ 초록 빛깔의 긍정과 평온함이 뜨면 어떨까. 긴지로의 진짜 피칭을 기다리는 또 한 번의 닷새가 흐른다.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속 ‘감정워치’. 가운데는 SSG 긴지로가 전력을 다해 투구하고 있는 모습. JTBC 방송화면 캡처·SSG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