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박해민. LG트윈스 제공
NC 박민우. NC다이노스 제공
최소 프로 15년 차 이상의 백전노장들이지만, 이들은 마치 세월을 거스르듯 여전히 프로 무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젊은 시절의 강속구나 파워, 스피드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노련함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원숙미가 돋보인다. 그들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들’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들은 언제쯤 야구의 깨달음에 도달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베테랑 선수들은 “야구를 알고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컨택 능력과 주루 플레이, 수비 센스까지 두루 인정받아온 ‘팔방미인형’ 외야수 두산 정수빈과 LG 박해민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수빈은 “사실 어느 순간 ‘야구를 알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야구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며 웃었다. 그는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했을 때가 가장 쉬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해민 역시 “아직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는다”며 “지금도 야구를 알고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 순간 더 발전해야 한다고 느낀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2006년 데뷔와 동시에 투수 3관왕을 차지하며 KBO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신인왕과 정규시즌 MVP를 동시에 거머쥔 ‘야구 천재’ 한화 류현진 역시 비슷한 생각을 전했다. 타고난 제구력과 뛰어난 손 감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그조차 “어릴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경기 준비 과정이 조금 더 편해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류현진은 “야구를 알고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선수들의 스타일도 계속 바뀌고, 기술과 트렌드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래서 아직도 내가 야구를 완전히 알고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것이 나오면 계속 배우고 싶고, 나 역시 더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KT 김현수. KT위즈 제공
롯데 전준우는 “야구를 하면서 언젠가는 무언가를 깨닫는 극적인 순간이 올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더라”며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봤다. 그는 이어 “프로에서만 20년을 뛰었는데도 아직 매 시즌 조금씩 새롭게 알아가고, 또 모르는 것이 생긴다”며 “그래서 야구가 더 무섭고 어려운 스포츠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타격 기계’라는 별명을 가진 KT 김현수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는 “솔직히 지금도 야구를 잘 모르겠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며 “야구를 정말 깨닫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온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자신만의 터닝포인트를 경험했던 선수들도 있다. KIA 에이스 양현종은 2010년을 떠올렸다. 꾸준히 1군 경험이 쌓였고, 직전 시즌 통합 우승까지 경험하며 한층 성숙해졌다고 느낀 시기다. 양현종은 “그때쯤 마운드에서 완급 조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변화구 제구와 효율적인 타자 승부에 대해 느끼면서 비로소 진짜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입단 후 7년이 지나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았고,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녹슬지 않는 타격감을 유지하며 ‘대기만성형 선수’의 상징이 된 삼성 최형우 역시 치열했던 20대를 떠올렸다. 그는 “20대 후반에 정말 많은 걸 느꼈다”며 “당시에는 타율 2할8푼대에 20홈런 정도 치는 타자였는데, 이대로 연봉 3~4억원 수준의 선수로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남기 위해 정말 많은 시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한두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롯데 전준우. 롯데자이언츠 제공
키움 최주환. 키움히어로즈 제공
1차 지명 신인으로 입단한 뒤 긴 침체기를 극복하고 10승 선발투수, 그리고 30홀드 불펜 필승조로 화려하게 변신한 SSG 노경은은 의외로 ‘단순함’에서 해법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두산 시절 두 시즌 연속 10승을 거둔 2013년을 자신의 터닝포인트로 꼽았다.
노경은은 “그전까지는 야구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다”며 “그런데 오히려 쉽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모든 것이 훨씬 잘 풀렸다. 프로 10년 만에 느낀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야구는 결국 심플하게 생각할 때 정답일 확률이 높은 스포츠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민우는 프로 입단 후 미국 교육리그에 참가했던 2013년을 자신의 전환점으로 떠올렸다. 그는 “당시 미국 루키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내가 정말 좁은 시야 안에 갇혀 있었다는 걸 느꼈다”며 “야구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주환은 경험의 축적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그는 “꾸준히 경기에 나서고, 선배들의 플레이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경험이 쌓였다”며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야구에 눈을 뜨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설문 대상|평균 나이 ‘38.3세’, 프로야구 베테랑 10명에게 묻다
삼성 최형우(1983년생) SSG 노경은(1984년생) 롯데 전준우(1986년생)
한화 류현진(1987년생) KT 김현수(1988년생) KIA 양현종(1988년생) 키움 최주환(1988년생)
LG 박해민(1990년생) 두산 정수빈(1990년생) NC 박민우(1993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