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행정 달인 채수훈 황등면장, 58곳 돌며 황등면지 쓴다

입력 : 2026.05.18 13:59
  • 글자크기 설정

112년 숨결 담은 황등면지, 기록 넘어 미래 이정표 세운다

‘작은 기록이 역사로’ 황등면지, 58곳 누벼 사료 발굴

황등석산·아가페 품은 황등면지, 매력적인 체류 공간 청사진

채수훈 황등면장이 황등면지 편찬의 의미와 지역 미래 청사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채수훈 황등면장이 황등면지 편찬의 의미와 지역 미래 청사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993년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해 32년간 현장을 누빈 채수훈 면장은 2022년 익산시 최초의 ‘왕궁면지’ 발간을 성공시키며 지역사 기록의 새 지평을 연 인물이다. 최근 에세이 『익산 이야기, 꽃으로 피다』를 출간하며 익산의 숨은 가치를 조명해 온 그는, 이제 2026년 연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고향인 황등면의 112년 역사를 집대성하는 마지막 과업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왕궁의 신화를 넘어 고향 황등에서 면민 공동체의 미래 이정표를 세우고자 직접 58개 마을을 발로 뛰고 있는 그의 진심과 여정을 기록하기 위해 마련됐다.

왕궁 신화 쓴 채수훈 면장, 고향 황등서 마지막 봉사

전국적인 답사 열풍 속에서도 유독 지역의 역사와 ‘면지’라는 기록물에 천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황등면지 편찬위원들과 함께 황등석산이 문화예술공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답사한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사진 왼쪽) 일제강점기 철도 교통과 물산의 중심지였던 황등역. 미식 여행 지도의 핵심 명소로 거듭날 예정이다.(오른쪽)

황등면지 편찬위원들과 함께 황등석산이 문화예술공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답사한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사진 왼쪽) 일제강점기 철도 교통과 물산의 중심지였던 황등역. 미식 여행 지도의 핵심 명소로 거듭날 예정이다.(오른쪽)

“1993년 공직을 시작할 무렵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전국의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정작 내가 사는 터전인 익산은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오더군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멀리 있는 유산만 찾던 시선을 고향으로 돌리자 잊힌 이야기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왕궁면장 재임 시절, 지역의 뿌리와 정신을 찾는 작업이 주민들의 애향심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비자치단체인 읍면동 단위에서 소홀했던 기록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2022년 왕궁면지의 성공 이후, 퇴임을 1년 남긴 시점에 다시 고향 황등으로 부임하여 면지 편찬을 시작하셨습니다. 황등면만이 가진 매력과 조명하고 싶은 서사는 무엇입니까?

“황등은 고대 호남(호수의 남쪽)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황등호’가 있던 전라도 역사의 시원과도 같은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철도 교통의 요충지이자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황등석 산업의 중심지로, 척박하면서도 역동적인 삶의 궤적을 간직하고 있죠. 단순히 유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황등역과 오일장을 통해 번성했던 물산의 역사, 그리고 동연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치열한 계몽운동과 교육 운동 등 인물 중심의 생생한 생활사를 면지에 담아 황등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습니다.”

112년 역사 호남 시원 황등호, 미식 관광 엮는 청사진

이 방대한 기록을 지역 경제 활성화나 관광 자원과 연계하려는 구체적인 구상도 가지고 계신가요?

“면지는 과거에 박제된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와 숨 쉬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 아가페 정원, 황등석산, 나훈아의 고향역 무대인 황등역을 하나의 선으로 엮어 관광객이 반나절 이상 머물 수 있는 ‘황등 미식 문화 여행 지도’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면지 편찬 과정에서 발굴된 풍부한 이야기들은 이 관광 코스의 강력한 스토리텔링 자산이 될 것입니다. 주민들이 생산한 자료와 제가 현장에서 채록한 구술이 결합하여 황등을 다시 가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청사진을 완성하는 중입니다.”

1년이라는 짧은 임기 내에 면지 발간을 마무리하는 것이 무리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어떻게 한계를 극복하고 계십니까?

“왕궁면지 발간 당시 정립한 체계적인 매뉴얼이 있기에 단기간 내 완수가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행정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민관이 협력하는 클라우드 펀딩 방식을 도입했고, 익산시 최초로 ‘고향사랑 기부제’ 특정 사업 승인을 받아 한 달 만에 1,200만 원의 후원금을 모으는 등 재원 마련도 순조롭습니다. 무엇보다 면장이 기획부터 실무까지 직접 책임지는 속도감 있는 추진력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58개 마을 전수조사 강행, 역사 기록과 복지 융합 행정

58개 마을을 직접 도는 전수조사 방식이 독특합니다. 이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특별한 조사 원칙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바향으로) 익산시 최초로 고향사랑 기부제 특정 사업 승인을 받은 황등면지 편찬 후원 홍보 현수막, 삼각형 모양의 제1전망대와 황등석산 전경, 익산 최초의 왕궁면지를 비롯한 지역 읍면지들. 황등면지는 미래 이정표 역할을 할 기초 통계 자료, 나훈아의 히트곡 ‘고향역’의 실제 무대인 황등역 앞에 세워진 기차 모양의 고향역 기념 조형물.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바향으로) 익산시 최초로 고향사랑 기부제 특정 사업 승인을 받은 황등면지 편찬 후원 홍보 현수막, 삼각형 모양의 제1전망대와 황등석산 전경, 익산 최초의 왕궁면지를 비롯한 지역 읍면지들. 황등면지는 미래 이정표 역할을 할 기초 통계 자료, 나훈아의 히트곡 ‘고향역’의 실제 무대인 황등역 앞에 세워진 기차 모양의 고향역 기념 조형물.

“자료 수집은 결코 책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역사 기록 조사와 함께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병행하는 현장 행정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노인 인구가 42%에 달하는 황등의 현실에서 어르신들의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드리면,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장롱 속 족보와 옛 사진이 쏟아져 나옵니다. 마을의 민원을 시정에 즉각 반영하는 과정을 통해 주민들은 ‘면지가 나를 위한 일’임을 체감하게 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많지만,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불붙기 시작한 지금이 가장 보람찬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황등면지가 지역사회에 어떤 기능을 하길 바라며 퇴임 후의 계획은 어떠하십니까?

“황등면지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한 책자가 아니라, 황등면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소중한 ‘기초 통계 자료’가 될 것입니다. 수집된 영상과 사진들은 역사 기록관이나 갤러리의 핵심 콘텐츠로 활용되어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다른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저는 모든 기록과 노하우를 지역의 공적 자산으로 남기고 연말이면 조용히 자연인으로 돌아가 쉴 생각입니다. 고향에 세운 이 마지막 이정표가 후세들에게 지역의 진면목을 알리는 귀한 등불이 되길 소망합니다.”

채수훈 면장이 2022년 익산시 최초로 발간했던 왕궁면지 당시의 뜻깊은 기념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채수훈 면장이 2022년 익산시 최초로 발간했던 왕궁면지 당시의 뜻깊은 기념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

기자 정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