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6년만에 백상 남우 조연상
‘김부장’→‘허수아비’ 명품 연기력
“선한 역할보다 악역을 많이하니
모두 이런 사람인줄 몰랐다네요
그냥 너무 감사한 요즘입니다”
ENA 드라마 ‘허수아비’에서 차무진 역을 연기한 배우 유승목. 사진 SM C&C
대한민국에 있는 별같이 많은 배우들 중에서는 ‘전성기’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부여받지 못한 이름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유승목(57)의 요즘은 그만큼 더 벅차다. 어디 하나 요행이나 우연에 기댄 것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 받아낸 주목이기 때문이다. 그는 매체들을 불러서 하는 인터뷰도 처음이라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소속사 SM C&C의 직원들은 그의 첫 인터뷰를 기념해 인터뷰 장소에 그의 연기 주요장면을 되새기는 사진들을 붙이고, 그의 이름도 크게 붙여놨다. 지난해 방송된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으로 최근 백상예술대상 방송부문 남자 조연상도 받았고,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최근작 ENA ‘허수아비’의 작품성과 흥행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ENA 드라마 ‘허수아비’에서 차무진 역을 연기한 배우 유승목. 사진 SM C&C
“그냥 너무 감사한 요즘입니다. ‘허수아비’를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좋아해 주셨어요. 가족들도 기뻐하죠. 딸들은 백상 후보가 되고, ‘유퀴즈’에서 섭외가 왔다고 할 때는 ‘진짜야? 이런 미X?’하면서 좋아하더라고요. 길가를 지나면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 보면 예전에는 ‘잘 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지만, 요즘은 축하 인사를 받고 있습니다.”
‘김부장’에서 그가 연기한 백정태 상무는 사내 정치에 밝고, 정무적이지만 김부장(류승룡)의 인사를 놓고 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모습도 보이는 등 다층적인 모습을 보였다. ‘허수아비’에서는 전형적인 빌런이었다. 서자 출신 딸을 두고 그가 야망에 걸림돌이 될까 봐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에게도 압박을 가하는 정치인 차무진을 연기한다. 그의 DNA를 물려받은 차시영(이희준)과 함께 극의 비극을 이끈다.
ENA 드라마 ‘허수아비’에서 차무진 역을 연기한 배우 유승목 출연장면. 사진 KT스튜디오 지니
“제가 박준우 감독님과 벌써 다섯 작품을 합니다. 지금 찍고 있는 ‘크래시 2’까지도 박 감독님의 작품이에요. 아마 ‘메리 킬즈 피플’ 당시 같이 하자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대본을 보고 안 보고를 떠나서 꼼꼼한 이야기와 긴장감이 있는 감독님의 작품에 신뢰가 있었어요. 그래서 하기로 했었죠.”
지금은 이춘재로 진범이 잡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총 10명의 피해자가 목숨을 잃은 희대의 사건이었다. 2019년까지 진범이 잡히지도 않은 미제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한국형 스릴러물의 전형이 됐다. 그런데 유승목은 당시 봉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초반 등장해 박두만 형사(송강호)를 괴롭히는 박 기자로 분했다.
ENA 드라마 ‘허수아비’에서 차무진 역을 연기한 배우 유승목 출연장면. 사진 KT스튜디오 지니
“‘살인의 추억’ 당시 ‘박 기자가 없어 속이 시원하다’는 대사는 송강호 형님이 넣어주신 애드리브였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분들이 저를 기억해주실 수 있었죠. 당시 영화는 진범이 누구냐는 부분이 중점이었지만, 이번 작품은 진범이 잡힌 이후의 작품이니 달라야 했죠. 당시 힘들었던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시청자들이 같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작품이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 출신이었던 박준우 감독은 당시 사건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와 섬세한 고증으로 사실성을 높였다. 그 역시 지금까지 했던 빌런으로서 더욱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애썼다. 함께 많이 붙었던 아들 역 이희준과 형사 강태주 역 박해수와의 연기, 그리고 많은 조단역들 스태프들의 노력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중반 퇴장 이후 마지막회를 보고 이희준, 박해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곽선영에게는 방송이 시작되는 바람에 문자가 늦어 다음 기회를 보고 있다고 웃었다.
배우 유승목의 첫 인터뷰 일정을 축하하는 소속사 직원들의 인터뷰 장소 장식 이미지. 사진 하경헌 기자
“저는 그동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받은 상도 물론 안 받았다고 제가 대충 살진 않았겠지만, 저에게는 용기도 주고 잘해나가라는 의미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꾸준히 연기를 해왔다는 박수 같기도 하고요. 지금이야 물론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고 관심을 주시지만, 분명 조금 지나면 조용해질 거로 생각해요.”
실제 만난 유승목은 역시 ‘유퀴즈’에 나온 것처럼 사려 깊고 섬세한 성격이었다. ‘김부장’에서 류승룡이 자신과의 작품을 모두 모아 사진첩으로 모아주자 감동하고, 곽선영에게 보내지 못한 문자에 신경을 쓴다. 이런 성격으로 악역을 하려다 보니 독기를 채워야 하는 시간이 필요해, 처음 악역을 했던 영화 ‘검은 집’에서의 연기를 앞두고는 뒷산에 올라 목검을 돌리기도 했다.
ENA 드라마 ‘허수아비’에서 차무진 역을 연기한 배우 유승목. 사진 SM C&C
“악역을 많이 하다 보니, 선배님들을 봬도 ‘이 배우 이런 사람인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해요. ‘7급 공무원’이나‘ 감자연구소’에서도 선역을 했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을 따로 고를 순 없어요. 단지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것뿐이고요. 조금 욕심을 내자면,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에게 감동도 주고 감성도 건드리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유승목은 1990년 연기를 시작한 이후 36년의 세월 동안 그저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배우’가 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한 것뿐이었다. 그런 소박한 바람과 함께 매일의 노력이 어우러져, 평범해 보이는 유승목이 범상치 않은 배우가 될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평범(平凡)이 만든 비범(非凡). 그 작은 하나가 유승목의 지금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