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제재·독재의 그림자 넘어…이라크, 40년 만에 월드컵 귀환

입력 : 2026.06.03 07:14
  • 글자크기 설정
이라크의 그레이엄 아널드 감독(가운데)이 지난 3월 31일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과달루페의 BBVA 스타디움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 승리 후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라크는 이날 승리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4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AFP연합뉴스

이라크의 그레이엄 아널드 감독(가운데)이 지난 3월 31일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과달루페의 BBVA 스타디움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 승리 후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라크는 이날 승리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4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AFP연합뉴스

40년은 너무 긴 기다림이었다. 전쟁과 국제 제재, 정치적 혼란 속에 갇혀 있던 이라크 축구가 마침내 월드컵 무대로 돌아온다.

이라크는 지난 3월 멕시코에서 열린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볼리비아를 꺾고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무려 40년 만의 본선 복귀다. 공교롭게도 이라크가 월드컵 티켓을 확정한 장소 역시 40년 전 첫 월드컵을 경험했던 멕시코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이라크 대표팀 선수로 뛰었던 카림 알라위는 이제 관중석에서 후배들의 도전을 지켜보게 됐다.

이라크는 이번 대회에서 노르웨이, 프랑스, 세네갈과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됐다. 알라위는 3일 BBC와 인터뷰에서 “1986년보다 더 어려운 조”라며 “프랑스는 여러 차례 세계 정상에 오른 강팀이고 노르웨이는 유럽의 신흥 강호, 세네갈은 아프리카 챔피언 출신이다. 당시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라크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4월 4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오픈톱 버스를 타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라크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40년 만에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전국적인 축하를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라크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4월 4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오픈톱 버스를 타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라크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40년 만에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전국적인 축하를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7위인 이라크는 과거와 비교해 훨씬 국제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잉글랜드 챔피언십의 알리 알하마디, 네덜란드 리그에서 뛰는 지단 이크발, 덴마크 챔피언에 오른 케빈 야코브 등 유럽 무대 경험을 갖춘 선수들이 주축이다.

2025년 부임한 그레이엄 아널드 감독의 역할도 컸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호주를 16강으로 이끌었던 아널드 감독은 이라크의 험난한 예선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라크는 21경기에 걸친 긴 여정 끝에 아랍에미리트와의 플레이오프를 통과했고, 이어 볼리비아를 꺾으며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라크 축구의 40년 공백은 단순한 경기력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알라위는 “국가가 겪은 것처럼 대표팀 역시 전쟁과 정치·경제적 위기, 국제 제재를 견뎌야 했다”며 “예선 준비와 운영 과정에서도 체계적인 계획이 부족했던 시기가 많았다. 그것이 오랜 공백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라크 축구에는 독재자였던 사담 후세인 체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다. 1984년 사담 후세인은 자신의 아들 우다이 후세인에게 이라크 축구 운영을 맡겼다. 이후 대표팀 선수들은 패배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가혹한 처벌과 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정권 붕괴 이후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선수들은 콘크리트 공으로 훈련을 강요받거나 채찍질과 구금 등의 처벌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를 직접 경험한 알라위는 “그 시절에는 상벌 체계가 매우 엄격했다는 정도로만 말하고 싶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도 축구 환경은 안정되지 못했다. 대표팀은 오랫동안 홈경기를 자국에서 치르지 못했고 월드컵 예선조차 요르단, 말레이시아, 이란 등 제3국에서 개최해야 했다.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20년이었다. FIFA가 남부 도시 바스라에서 국제경기 개최를 허용하면서 이라크는 비로소 중요한 홈 경기를 자국 팬들 앞에서 치를 수 있게 됐다. 이번 월드컵 진출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인해 지난 3월 볼리비아와의 플레이오프가 연기될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일부 선수들과 아널드 감독 역시 멕시코 이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결국 경기장에 도착한 이라크는 승리를 거뒀고, 귀국 후 바그다드 시내에서 오픈톱 버스 퍼레이드를 펼치며 국민적 환영을 받았다.

40년 전 월드컵 진출 당시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1985년 시리아를 꺾고 월드컵 진출을 확정했지만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 때문에 경기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렸다. 알라위는 “당시에도 조국 밖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기에 기쁨이 더 컸다”며 “귀국 후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축하했고 각종 행사와 축제가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1980년대 이라크는 올림픽 3회 연속 출전과 각종 지역 대회 우승을 차지한 황금세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알라위 역시 그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는 불운이 따랐다. 그는 파라과이와의 첫 경기 하루 전 부상을 당해 벤치를 지켜야 했다.

당시 이라크는 파라과이에 0-1로 패했지만 지금도 바그다드에서 회자되는 논란의 장면이 남아 있다. 전설적인 공격수 아흐메드 라디가 코너킥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었지만 심판이 공이 날아오는 도중 전반 종료 휘슬을 불어 득점이 인정되지 않았다. 알라위는 “벨기에전에서도 퇴장 판정이 나오는 등 불리한 판정이 있었다”며 “아쉬움은 남지만 월드컵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엄청난 관중과 세계적인 선수들, 그리고 다른 나라 선수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40년 만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 선 이라크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BBC는 “1986년 단 1골에 그쳤던 기록을 넘어서는 것, 그리고 첫 월드컵 승리를 거두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

기자 정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