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IDIA)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페이커’ 이상혁을 만나고 서울 마포의 삼겹살집에서 대기업 총수들과 소주잔을 부딪치며 강남의 PC방을 깜짝 방문해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잠실 야구장 마운드에 올라 시구까지 선보였다. 화려한 무대 매너와 친근한 K-푸드 사랑에 대중은 환호하지만,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그의 파격적인 행보는 단순한 팬 서비스가 아니다.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넘나드는 ‘AI 제국’의 황제가 컴퓨텍스(COMPUTEX) 직후 숨 가쁘게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온 속내···, 과연 그는 무엇을 노리고 있으며 무엇에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송석록 경동대 교수
■ “PC방이 없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도 없다”
젠슨 황은 이번 방한 중 “한국의 e스포츠와 PC방 문화, 게이밍 커뮤니티가 엔비디아 성장의 모태였다”며 한국 시장의 기여도를 이례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이는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정확한 역사적 팩트에 기반한다. 엔비디아의 시초는 AI 칩이 아닌 PC 게이밍용 지포스(GeForce) 그래픽카드(GPU)였다.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망과 함께 폭발한 한국의 PC방 열풍과 e스포츠의 탄생은 엔비디아 GPU의 완벽한 테스트 베드이자 전 세계적인 그래픽카드 대중화의 도화선이었다. 지포스 탑재 PC를 기반으로 다져진 개발자 생태계는 고스란히 엔비디아의 AI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인 ‘쿠다(CUDA)’ 인프라로 이어졌다. 뿌리(게임·e스포츠)를 단단히 다져야만 상부 구조(AI 제국)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바로 젠슨 황이다.
■ ‘PC방 외교’로 확인한 게임 동맹
젠슨 황이 방한 일정 중 강남의 한 PC방을 찾아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와 연쇄 회동을 가진 파격적인 행보는 엔비디아가 그리는 AI 제국의 완성이 왜 게임 회사에 달려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는 고도의 두 가지 가치가 숨어 있다.
우선, 엔비디아는 최근 개인용 AI 에이전트 시대를 열어갈 차세대 윈도우 슈퍼칩 ‘RTX Spark(RTX 스파크)’를 발표했다.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인조이(inZOI)>와 엔씨소프트의 아이온2 등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타이틀들이 엔비디아의 신형 칩에 최적화되어 구동되는 모습을 증명함으로써, 한국 게임사들을 차세대 AI 플랫폼 확산의 가장 강력한 우군으로 포섭한 것이다.
둘째, 최근 엔비디아가 사활을 걸고 있는 현실 세계 상호작용형 ‘피지컬 AI’를 가장 빠르게 훈련시킬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게임이다. 크래프톤의 인생 시뮬레이션 인조이를 통한 인간 행동 모방 AI, 그리고 엔씨소프트의 25년 기술 동맹 기반 물리 컴퓨팅 기술은 엔비디아가 가상 물리 엔진 기술을 현실의 로봇 제어로 이식하는 데 필요한 최고의 전초기지가 된다.
■ 한국이라는 대체 불가한 퍼즐
미·중 갈등과 미국의 대중 규제로 엔비디아의 중국 매출 비중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기댈 곳은 완벽한 기술 우위를 가진 ‘대체 불가능한 공급망’뿐이다. 최신 AI 아키텍처인 ‘블랙웰(Blackwell)’ 기반 서버가 작동하려면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안정적 수급이 필수적인데, 이 시장의 90% 이상을 한국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선점하고 있다. 젠슨 황이 방한 직후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난 이유도 독점적 AI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형 공급망 체결에 있다.
동시에 엔비디아의 최종 목적지는 하드웨어를 넘어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생태계 선점이다. 산업용 로봇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은 엔비디아의 로봇용 AI 플랫폼(Omniverse, Isaac)을 가장 빠르게 상용화하고 대규모 데이터를 피드백해 줄 최적의 전초기지다. 그가 주요 기업들과 연괘 회동을 가진 것은 미래 AI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철저한 선제공격인 셈이다.
■ ‘락스타’ 마케팅과 빅테크 견제론
젠슨 황이 밀실을 벗어나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대중과 호흡하는 파격 행보 뒤에는 두 가지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다. 첫째는 ‘소버린 AI(Sovereign AI)’ 우군 확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자체 AI 칩 개발로 엔비디아의 독점을 깨려 하자, 독자적 AI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한국의 로컬 기업(네이버, 업스테이지 등)을 포섭해 엔비디아 생태계에 묶어두려는(Lock-in) 감성 마케팅이다. 둘째는 글로벌 인재 유치다. 엔비디아라는 브랜드의 매력도를 극대화해 한국의 우수한 AI 인재와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을 흡수함으로써, 자신들이 구축한 AI 제국의 영토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우리는 위기감 속에서 피어난 거인의 선제적 방어선을 보고 있다. 젠슨 황의 파격적인 방한 행보는 거대 제국의 군주가 느끼는 ‘기분 좋은 위기감’의 방증이다. 빅테크들의 자체 칩 도전, 중국 시장의 규제 압박, 공급망 병목 현상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그는 엔비디아의 시작점이었던 한국의 게이밍·e스포츠 정신을 기리고 크래프톤·엔씨소프트와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미래 생존의 핵심 열쇠인 HBM 공급망과 로보틱스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실천하고 있다.
K-푸드를 즐기며 환하게 웃는 젠슨 황의 얼굴 뒤에는, 다가올 글로벌 AI 전쟁에서 단 한 치의 영토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철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AI 제국 황제’의 냉철한 계산기가 두드려지고 있다. 한국은 대체불가능한 단 하나의 퍼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