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수미. EMK엔터테인먼트 제공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발레 교사 미세스 윌킨슨으로 분한 전수미의 무대 위 카리스마는 서늘할 정도로 매섭다. 일상에 찌들어 탄광촌 아이들에게 독설을 내뱉는 캐릭터를 너무 완벽히 소화하는 탓에, 실제 모습도 무섭고 까칠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그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무대 밖에서 만난 전수미는 오히려 통통 튀는 애교와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초긍정 에너지’로 가득 찬 반전 매력의 소유자였다.
12일 오후 서울 경향신문 본사에서 만난 전수미는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 성격과 윌킨슨 역 사이의 간극에 대해 묻자 그는 “제가 원래 이렇게 막 떠들고 애교도 부리고 이런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며 미소 지었다.
극 중 윌킨슨 부인은 거친 입담을 자랑하지만 속내에는 따뜻함을 품은 인물이다. 그는 배역의 서늘한 말투를 완성하기 위해 평소 ‘츤데레’ 말투를 쓰는 지인과 끊임없이 통화하며 일상 속 냉소적인 억양과 말투를 훔쳐오는 숨은 노력을 기울렸다.
특히 2023년 마흔넷에 아이를 품에 안은 늦깎이 ‘워킹맘’인 그에게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이번 작품은 남다른 고충을 안겼다.
배우 전수미가 ‘빌리 엘리어트’ 무대에서 아역과 열연을 펼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저는 기본적으로 아기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 사실 연습 때 조금 힘들었어요. 속으로는 아이들이 귀여워 죽겠는데, 외국 연출님이 ‘이 여자의 경력 단절 원인은 아이다. 그걸 인지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연습할 때 따뜻한 마음이 눈빛에서 들킬까 봐 일부러 아이들에게 ‘야, 꺼져. 가!’라고 윌킨슨 말투를 사용하며 거리를 두고 대하기도 했죠.”
4명의 다채로운 ‘빌리’들과 번갈아 호흡을 맞추는 경이로움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네 명의 빌리가 정말 다 달라요. 누가 더 낫다 할 것 없이, 한 친구는 성인 배우가 대사를 치는 것같은 느낌이 완벽하게 있고, 또 한 친구는 너무 순수하고 맑아서 빤히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요. 완전 장난꾸러기인 친구가 있는가 하면, 굉장히 섬세해서 저까지 같이 예민해지게 만드는 친구도 있죠. 그날 무대에 오르는 빌리가 누구냐에 따라 극의 공기와 호흡이 완전히 달라지니 매 회차가 새롭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N회차’ 관람을 하시나봐요.”
배우 전수미. EMK엔터테인먼트 제공
무대 밖으로 걸어 나온 전수미는 그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씩씩한 ‘엄마’로 돌아간다. 밤 12시에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새벽엔 대본을 보면서도, 다음 날 아침 7시면 어김없이 눈을 떠 아이를 챙기는 열혈 육아를 실천 중이다. 쉴 틈 없는 강행군 속에서도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특유의 무한 긍정 마인드다.
“제가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다 괜찮아. 하면 되지 뭐’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제 안에 되게 커요. 육아 때문에 아이에게 소홀하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텐션을 올려서 놀아주거든요. 그러려면 체력 관리를 위해서 운동도 두 배로 해야되고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에너지가 크다 보니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는 매서운 눈빛과 까칠한 말투로 객석을 압도하다가도,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이내 무장해제되어 애교 섞인 미소를 짓는 전수미. 본연의 따뜻하고 유쾌한 에너지를 철저히 지워낸 채, 고립되고 서늘한 윌킨슨 부인으로 완벽히 분한 그의 열연이 무대를 묵직하게 채우고 있다. 전수미의 서늘한 카리스마가 빛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권투 대신 발레를 꿈꾸는 소년 빌리의 기적 같은 성장과 연대를 그린 명작으로, 현재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