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연의 휴먼터치 “소통·공감으로 가뭄에 ‘단비’가 될래요”

입력 : 2026.07.0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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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버스’ 안내양에서 장르와 한계 넘은 엔터테이너로

[이사람] 김정연의 휴먼터치 “소통·공감으로 가뭄에 ‘단비’가 될래요”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출신 제1호 트로트 가수로 데뷔해 국민 안내양으로 불리며 농촌 어르신들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받아낸 가수 김정연이 ‘홍단비’라는 예명으로 인생 2막을 달린다. 무릎이 닳도록 고향 버스에서 쌓은 17년의 현장 감각은 가수·MC·강연자·작가를 넘나드는 멀티 플레이어의 내공으로 농축됐다. 예측 불가의 궤적을 걸어온 그가 ‘고향 버스’ 종점에서 내려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다. 17년간 전국 농촌 버스 노선을 누비며 수집한 인생의 서사가 ‘홍단비’라는 브랜드에 어떻게 녹여낼지 미리 만나보았다.

올여름부터는 ‘홍단비’라는 새 이름으로 활동하신다고요.

네.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을 적시는 사람이 되고 싶어 홍단비로 살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더구나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써온 이름을 바꾼다는 건 단순한 개명이 아니에요. 제 나이가 올해 57세인데요. ‘홍단비’라는 새 이름은 더 깊어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죠. 올여름에 선보일 제 신곡에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 그리고 ‘인생의 무늬’를 담았습니다. 신곡도 싣고 단비도 싣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공감도 싣고 여러분 곁으로 달려가는 단비 버스가 행복 버스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홍단비로 개명하고 유튜브 채널 「홍단비 TV」를 개설하셨어요. 첫 방송 업로드 즉시 조회수가 4만 천명을 넘었어요. 어떤 채널이기래 인기가 폭주하나요?

홍단비 TV는 진짜 사람 이야기가 담겨서 사람 냄새가 나는 채널입니다. 화려한 연예인 채널도, 자극적인 예능 채널도 아니라는 게 장점이죠. 홍단비 TV에는 대본도 없고 연출도 없습니다.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으로 사람을 소비하는 요즘 디지털 시장에서 저는 반대로 가고 싶었어요. 조회수를 위해 사람을 소비하는 걸 철저히 지양하기 위해 제 온몸 하나만을 장치로 삼고 무작정 다가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마주한 분을 세상의 주인공을 만들어드립니다. 구독자분들이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라는 기대감 때문에 사랑해주시는 거 같습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이 트로트 가수가 된 것은 데뷔 당시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되셨나요?

저도 제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어요. (웃음) 노찾사 시절에는 시대의 거대한 목소리를 노래했다면, 트로트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삶을 들여다보는 장르였어요. 겉으로는 결이 다른 것처럼 보여도 결국 둘 다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노찾사 시절 1992년,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끝나지 않은 노래’라는 타이틀로 노찾사 10회 정기공연을 했는데 일제강점기 대중가요 ‘복지만리’를 불렀어요. 이때 관객의 엄청난 호응을 받으면서 저 피에 ‘뽕필’이 흐른다는 걸 알았죠. 우연한 기회에 트로트 가수로의 전환을 제안받았고 2008년 1집 ‘사랑하니까’ 2011년 2집 ‘고향 버스’를 선보였죠.

[이사람] 김정연의 휴먼터치 “소통·공감으로 가뭄에 ‘단비’가 될래요”

2011년 발매한 2집 ‘고향 버스’가 국민 안내양을 만든거군요. 방송인으로서 가장 단단해진 순간은 언제였나요?

맞습니다. 2집 ‘고향 버스’가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죠. 그 버스는 단순한 방송 공간이 아니라, 대한민국 농촌의 시간을 기록하는 작은 역사책 같은 곳이었습니다. 방송인으로서 가장 단단해진 순간을 말씀하셨는데 여러 프로그램에서 내공을 쌓았어요. <아침마당> 화요일 고정 패널로 활동하면서 방송은 내가 빛나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빛나게 하는 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고, 청주 KBS <무대를 빌려드립니다> 단독 MC를 맡으며 진행자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언변보다도 사람의 떨리는 숨소리를 읽어내는 능력임을 확신했습니다. 저에게 방송은 기술이 아니라 ‘경청’의 예술이었습니다.

17년 동안 ‘고향 버스’ 안에서 수많은 어르신을 만나셨습니다. 그 시간은 어떤 의미였나요?

고향 버스 안에는 대본 없는 리얼 휴먼다큐가 완성됩니다. 어르신들은 자식 이야기하다가도 먼저 떠난 배우자를 떠올리며 눈물을 보이십니다. 대본대로 움직인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감동이 펼쳐지죠. 평생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어르신 마음속에서 꺼내려면 무릎을 꿇고 눈 맞추며 다가가야 합니다. 제 안내양 유니폼에 스며든 그 눈물들이 결국 일기가 되었고, 책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방송인이기 전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기록해주는 안내자였던 것 같아요.

결국 그 버스에서 내리게 된 이유가 무릎 때문이었다고요.

맞아요. 어르신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면 늘 무릎을 꿇어야 했는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 자세를 수만 번 반복하다 보니 관절이 완전히 망가졌어요..진통제를 달고 살다가 병원에 갔더니 이런 무릎으로 어떻게 버텼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고향 버스만 타면 이상하게 아픈 줄을 몰랐어요. 어르신들 얼굴만 보면 마음이 먼저 움직였으니까요. 하지만 버틸 수 없는 시간이 오더라고요. 지난 3월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이 ‘홍단비’로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때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사람] 김정연의 휴먼터치 “소통·공감으로 가뭄에 ‘단비’가 될래요”

20권 가까운 일기장을 써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투정처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됐죠. 제가 고향 버스에서 담아온 사연, 농촌 골목 골목에서 건져 올린 기록들이 사라져가는 농촌의 생활 문화사를 담고 있다는 걸요. 그래서 자서전 <뛰뛰빵빵 김정연의 인생 버스>에 어르신들 이야기를 담았어요. 제 자서전은 연예인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사람 냄새 나는 삶과,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농촌의 풍경을 기록한 책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엄마로서의 삶은 어땠나요?

늦둥이 아들이 100일밖에 안 됐을 때부터 지방 촬영을 다녔어요. 늘 미안했죠. 몸이 둘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아이 걱정으로 가슴 태우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 마음은 결국 같은 방향 자식을 향한 내리사랑으로 아프다는 걸요. 아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어르신들이 달래주었고 그렇게 버티는 사이 아들이 어느덧 13살이 되었네요.

최근 문경시 홍보대사로 발탁되셨어요. 왕성한 활동이 기대되는데요 농촌을 바라보는 철학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단순히 “농산물이 좋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농산물을 키운 사람들의 삶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허리 굽혀 일한 어머니 아버지의 시간, 새벽안개를 걷어내며 밭으로 나간 어르신들의 땀과 눈물, 정성을 포장지로 삼고 싶어요. 도시는 상품을 소비하지만,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합니다. 저는 그 감동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가 30년 동안 현장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강연 요청이 쇄도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론 전문가가 아닌 ‘가수 김정연’의 강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제 강연에는 딱딱한 이론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웃음) 제 핵심 브랜드인 ‘힐링 토크 콘서트’는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고 진솔하게 삶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적재적소에 위로가 되는 노래를 곁들이는 소통의 무대죠. 진심으로 다가가니 청중분들도 쉽게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의 자산은 수천 명의 어르신들과 무릎을 맞대고 나눈 눈물과 웃음입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투박하지만 삶의 본질을 꿰뚫는 힘이 있어요. 어떤 통계나 빅데이터도 담아내지 못하는 ‘한국인의 정서 지도’를 제가 현장에서 온몸으로 배워서 귀한 현장의 에너지를 강연장으로 고스란히 옮겨와 나누고 있는데 그런 진정성에 많은 공감을 하시는 거 같습니다.

[이사람] 김정연의 휴먼터치 “소통·공감으로 가뭄에 ‘단비’가 될래요”

강연 요청이 쇄도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론 전문가가 아닌 ‘가수 김정연’의 강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치열한 야외 현장을 누비며 쌓인 내공을 믿어주시는 거 아닐까요? (웃음) 저는 강연장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돌발 상황을 유쾌한 입담으로 받아쳐 강연장을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바꾸어 놓곤 하는데요. 지자체 교육 담당자분들이 이런 저의 ‘성실함이 주는 신뢰’와 ‘현장 장악력’을 믿고 마이크를 맡겨주시는 것 같습니다.

신곡 발표를 ‘홍단비’로 하실 거 같은데.. 홍단비가 걸어갈 새로운 길은 어떤 길일까요?

안내양 유니폼은 벗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실어 나르는 일은 계속할 겁니다. 신곡도 사람의 마음을 실어 나르는 음악이 분명하고요. 리얼 휴먼 터치식의 생동감 있는 유튜브 콘텐츠도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버스에서 내렸다고 말하지만, 저는 아직도 길 위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더 느리게, 더 깊게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 누군가의 상처 난 하루에 위로가 되고, 메마른 마음에 촉촉한 단비가 될 겁니다. 홍단비가 운전하는 단비 버스가 조만간 여러분 삶 속으로 출발합니다.

1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 농촌의 거친 숨결과 애환을 온몸으로 품어냈던 ‘국민 안내양’. 그가 이제 ‘홍단비’라는 정감어린 새 이름표를 달고 다시 길 위에 선다. 치열했던 현장의 훈장처럼 무릎은 닳아 헐거워졌을지언정, 사람을 향한 그의 시선은 도리어 더 형형하고 깊어졌다. 쉰일곱, 누군가는 인생의 속도를 줄이며 마침표를 고민할 나이에 그는 거침없이 행선지를 바꾸고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인간 홍단비’의 진짜 인생 버스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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