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선수들이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1-0으로 꺾은 뒤 홈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2026 북중미 월드컵 ‘참사’에도 팬들은 한국 축구를 외면하지 않았다.
월드컵 32강 진출 실패의 짙은 아쉬움 속에서도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가 다시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월드컵 토너먼트 진출 실패 후 축구팬들의 분노와 아쉬움이 국내 리그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했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팬들은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악천후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K리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며 위기 속에서 더 크게 함성을 질렀다. 축구인들 역시 한목소리로 책임을 통감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K리그1 16라운드 ‘경인더비’에는 경기 전부터 장대비가 쏟아지는 악천후 속에서도 무려 2만 26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면서도 귀가 따가울 정도의 열띤 응원전을 펼치며 현장의 열기를 뜨겁게 달궜다. 정승원이 후반 36분 터뜨린 시즌 마수걸이 골로 서울이 3연승을 확정하자 ‘상암벌’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다른 경기장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전인 4일 전북 현대와 강원FC의 경기에도 1만 5551명의 관중이 ‘전주성’에 몰리는 등, 월드컵 휴식기 이후 재개된 16라운드 6경기에 총 5만 8897명의 관중이 축구장을 찾았다.
FC서울 정승원이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세리머니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이는 월드컵 직전 마지막 라운드였던 15라운드(7만 5409명)보다는 다소 줄어든 수치다. 하지만 13라운드(4만 6844명)나 14라운드(2만 8842명)와 비교하면 훨씬 많은 관중이다.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참사와 본격적인 장마 기간이 겹쳐 관중이 급감할 것으로 우려됐으나 팬들은 K리그 경기장을 외면하지 않았다.
팬들의 변함없는 성원에 축구인들은 무거운 책임감과 감사함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령탑들은 국가대표팀의 부진을 K리그에서 재미있는 축구로 만회하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윤정환 인천 감독은 “혹시나 국내 팬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이 식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다”며 휴식기 동안 가슴 졸였던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김기동 서울 감독 역시 “우리가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그 시각을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커진다”라며 현장의 축구인들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과제를 짚었다.
이날 빗속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른 팬들의 마음도 축구인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를 구하는 힘은 결국 그 뿌리인 K리그에서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서울 팬 김진범씨(28)는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정말 답답했다. 모든 한국 축구팬이 그랬을 것”이라며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그래도 한국 축구가 어려울수록 내가 사랑하는 K리그에 더 애정을 보내고 관심을 줘야 할 것 같아 경기장을 찾았다”며 흔들림 없는 신뢰를 보냈다.
FC서울 김기동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
대표팀은 월드컵 무대에서 큰 아쉬움을 남겼지만 K리그는 다시 힘차게 출발했다. 감독들은 더 큰 책임감을 이야기했고, 팬들은 세차게 치는 빗속에서도 경기장을 찾아 뜨겁게 응원했다. 참사 이후 깊은 수렁에 빠졌던 한국 축구는 이제 K리그 현장에서 팬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