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새 출발’ 황재균 “박수 받고 떠난 야구인생…예능으로 홈런 쳐야죠”

입력 : 2026.07.06 14:58 수정 : 2026.07.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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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이숭용·이강철 감독님이 불러도 지도자는 사양

‘불꽃야구’ 제안받았지만 새로운 길 가고 싶어

한국판 명예의전당 헌액된다면 ‘KT 소속으로’

주량은 소주 10병 이상…그래서 별명이 ‘황이슬’

야구 선수 은퇴 후 엔터네이너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황재균씨가 지난 2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6.6.29 이준헌 기자

야구 선수 은퇴 후 엔터네이너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황재균씨가 지난 2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6.6.29 이준헌 기자

지난해 말, 20년간의 프로 생활과 30년의 야구 인생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은 황재균(39). 기량이 남아있을 때 박수받으며 내려온 그는, 이제 그라운드가 아닌 방송국으로 출근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전지적 참견 시점>(MBC), <전현무계획3>(MBN) 등 간판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화술을 뽐내는가 하면, 티빙(TVING) KBO 리그 해설위원으로도 마이크를 잡으며 은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선수 시절의 그는 찬란했다. KBO 올스타전 MVP를 시작으로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MLB) 진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 프리미어 12 우승, 골든글러브 수상까지 거머쥐었다. 특히 2021년에는 KT 위즈의 주장으로서 팀 창단 첫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견인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고, 호타준족의 상징인 통산 ‘200홈런 -200도루’라는 대기록까지 남겼다.
 “큰 부상 없이 늘 팀에 헌신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던 그가, 이제는 야구 유니폼 대신 예능인의 삶을 선택했다. 강호동, 서장훈, 안정환 등 스포츠 스타 출신 예능 대선배들의 뒤를 이어 ‘황재균’이라는 이름 석 자를 엔터테이너로서 뚜렷이 각인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그가 가진 방송에 대한 뜨거운 의욕, 넓은 대인관계와 타고난 재치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은퇴 후 크로스핏과 러닝 등 혹독한 체력 단련과 식단 조절을 통해 10㎏을 감량했다는 그는, 한층 더 날렵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기자와 마주 앉았다. 묵직했던 거포의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소탈함과 유머 감각이 대화 내내 빛을 발했다. 지난 2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야구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 기량이 떨어진 후 등 떠밀리듯 은퇴하기보다, 1군 주전 선수로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은퇴 후 예능계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현역 시절 비시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방송이 정말 재밌고 제 성향과도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은퇴하면 예능인의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갖고 있었죠. 은퇴 후 지금의 소속사(SM C&C)를 만나면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예요.”

- 지도자가 될 거라는 예상도 많았어요.

“제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지도자는 안 할 거로 생각했어요.”

- 어떤 성격인데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좋아하고, 모르는 사람과도 빨리 친해지는 성격이에요. 낯가림? 30초 있습니다(웃음)”

-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KT 위즈 시절 타격 코치였던 SSG 이숭용 감독이라죠. 이숭용 감독이 SSG 타격 코치로 불러도 거절할 건가요.

“안 가죠. 제가 또 존경하는 KT 이강철 감독님이 불러도 마찬가지예요.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니까. 하하하…”

- 이숭용 감독을 왜 그렇게 좋아합니까.

“넥센 히어로즈에서 뛸 때 룸메이트였는데, 프로 선수의 마음가짐을 비롯해 야구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주셨어요.”

- 은퇴 전 이혼이라는 큰 변화가 있었어요. 그것이 은퇴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나요.

“전혀요.”

지난 5월 11일 방송된 JTBC <톡파원 25시>에 출연하고 있는 황재균. / SM C&C 제공

지난 5월 11일 방송된 JTBC <톡파원 25시>에 출연하고 있는 황재균. / SM C&C 제공

- 티빙(TVING)에서 WBC에 이어 KBO 리그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입니다. 이택근·정근우·윤석민 등 쟁쟁한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해설은 할 만한가요.

“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 말하는 직업 자체가 제 성향에 잘 맞는 것 같아요. 함께 해설하는 형들과의 케미도 잘 맞고요. 예전에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 마이크를 같이 잡으면서 부쩍 가까워졌어요. 신기하게도 넷 다 성격이 비슷해서 호흡이 척척 맞아요.”

- 이택근·정근우씨를 비롯해 롯데 자이언츠 선배인 이대호씨 등 많은 전직 야구선수들이 야구 예능 ‘불꽃야구’에서 활약 중이에요. 동참하라는 제안은 없었습니까.

“제안은 있었지만 사양했어요. 은퇴한 야구 선수 형들이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계시는데, 저는 형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어서예요.”

황재균은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넥센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 등을 거치며 내야수로 활약했다. 2016 시즌을 마친 뒤에는 메이저리그(MLB) 도전을 선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플릿 계약을 맺었다. 시범경기 활약에 이어 마침내 빅리그 콜업을 받아 데뷔전 홈런을 터뜨리는 등 꿈의 무대를 밟았지만 그 시간은 짧디짧았다. 1년 만에 귀국해 KT 위즈와 계약하고 2018년 KBO 리그에 복귀했다.

- 부산시 기장군에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야구박물관)이 개관해요. 만약 여기에 헌액된다면 어느 팀 유니폼을 입을 텐가요.

“KT 위즈 유니폼을 입어야죠. 가장 오래, 가장 마지막에 몸담았고, 주장을 맡으면서 우승도 했던 팀이니까요.”

- 2017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1호 코리안 리거’로 활약했습니다. 미국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았던 순간과 홈구장인 AT&T파크에 처음 섰을 때예요. 마이너리그 경기를 마치고 통역과 밥을 먹던 중 에이전트에게 콜업 전화를 받았는데 정말 기뻤어요. 스프링캠프 때 봤던 직원들과 빅리그 선수들이 ‘더 빨리 올 줄 알았다’며 크게 반겨줬어요. 이후 AT&T파크에 섰는데, ‘내가 이 흙을 밟는구나’ 하는 황홀감에 취했어요. 구장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됐죠. 그런 상태로 라커룸까지 걸어가는데 기분이 아주 이상했어요.”

- 오랜 꿈이었던 메이저리그였던 만큼, 더 남고 싶다는 아쉬움은 없었습니까.

“당연히 더 오래 뛰고 싶었지만, 제 실력이 그 정도까지는 미치지 못했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에 갔기 때문에 향후 야구 인생을 설계하려면 빠른 판단이 필요했어요. 꿈은 한 번 이뤄봤으니, 이제 돌아가 한국 야구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결단했어요.”

- 히어로즈 후배인 이정후 선수가 같은 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고 있어요. 이정후 선수도 부상 등으로 초반에는 다소 부침이 있었는데, 황재균 선수 역시 3년 정도 머물렀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정후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워낙 대단했던 선수였어요. 미국 무대에 적응만 마치면 무조건 잘 칠 거라고 예상했는데, 올해 그걸 증명해 내고 있잖아요. 나이 차이가 있어서 히어로즈 시절에는 같이 뛰지 못했고 국가대표팀에서만 호흡을 맞췄는데, 그때도 참 대단했어요.”

- 미국 생활을 하면서 혹시 인종 차별을 겪지는 않았나요.

“동료들과 워낙 잘 지냈어요. 원정 경기를 가면 먼저 같이 밥 먹자고 제안하는 선수들도 많았죠. 사실 제가 현지에서 피부가 워낙 까맣게 타서, 한국에서 온 기자분들이 마이너리그 훈련장에서 저를 못 찾았을 정도예요(웃음). 당시 소속팀이 있던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가 햇살이 워낙 강한 도시라 정말 많이 탔거든요.”

-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경기가 없는 쉬는 날에는 주로 뭘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까.

“트리플A 마이너리그 팀들이 주로 한적한 시골에 있다 보니, 쉴 때는 혼자 자주 돌아다녔어요. 구글 맵으로 동네 맛집을 검색해 찾아가 혼밥을 먹기도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게 소소한 힐링이었죠.”

- 비인기 팀 넥센 히어로즈에서 가장 인기 있던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됐고, 미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꼴찌 팀이던 KT 위즈와 계약했어요. 복귀 당시 친정팀(롯데) 계약 불발 후 KT를 선택하며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당시 저를 포함해 팀의 중심 선수 세 명이 동시에 FA로 나왔기 때문에 롯데 구단으로서도 상황이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어요. 다른 선수를 우선순위에 둔 구단의 판단을 충분히 이해했죠. 오히려 당시 KT 위즈가 저를 가장 강력히 원해 이 팀에서 잘해야겠다, 꼴찌 팀을 위로 끌어올려 놔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2021년 11월 1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kt 대 두산의 경기에서 kt가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우승 확정 후 황재균 선수가 동료 선수들과 기뻐하며 포옹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1년 11월 1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kt 대 두산의 경기에서 kt가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우승 확정 후 황재균 선수가 동료 선수들과 기뻐하며 포옹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로 2015년부터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던 KT 위즈는 황재균 영입 이후 무섭게 반등했다. 2018년 9위, 2019년 6위, 2020년 3위로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랐고, 그가 주장을 맡았던 2021년에는 마침내 창단 첫 통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황재균은 “꼴찌팀에서 함께 시작했기에 내 야구 인생에서 2021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도, 동료들도 그날 펑펑 울었다”며 “KT 시절 내가 눈물을 흘린 건 1위 결정전(타이브레이크)에서 이겼을 때와 우승 확정 순간, 딱 두 번뿐이었다”고 덧붙였다.

- 황재균 선수의 은퇴로 KT 위즈의 전력 손실이 꽤 클 것 같습니다.

“지금 더 잘하고 있더라고요. 하하하…”

- 올스타전 MVP, 메이저리그 진출, 아시안게임 금메달, 프리미어 12 우승, 골든글러브, 한국시리즈 우승에 통산 200홈런-200도루까지 달성했어요. 선수로서 이룰 건 다 이뤘는데, 아쉽거나 후회되는 순간은 없습니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글쎄요, 그 부분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 만약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야구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럼요, 당연히 할 거예요. 야구를 치열하게 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고, 이렇게 방송도 하는 거니까요.”

2005년 ‘제60회 청룡기 서울지역 예선대회에서 경기고가 우승한 후 경기고 황재균 선수가 우수 선수상을 받고 있다. / 본인 제공

2005년 ‘제60회 청룡기 서울지역 예선대회에서 경기고가 우승한 후 경기고 황재균 선수가 우수 선수상을 받고 있다. / 본인 제공

그는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인 황정곤·설민경 씨의 1남 1녀 중 장남이다. 어머니 설민경씨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테니스 복식 금메달리스트다. 황재균 역시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모자(母子)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라는 진기록을 썼다. 그에게 처음 운동을 시킨 사람은 아들이 스포츠 선수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 황정곤씨였다.

- 한국산업은행 실업팀 감독이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입학도 아직 안 한 어린 아들을 성인 선수들과 함께 훈련시켰다고요.

“성인 선수들과 같이 산을 뛰어 오르내려야 했으니 너무 힘들어 울면서 훈련했어요. 결국 초등학교 입학 후 운동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고 공부만 했죠. 그러다 4학년 때 반 대항 야구대회에 투수로 나갔는데, 야구부 감독님이 ‘쟤 누구냐?’면서 아빠에게 연락하셨어요. 반색한 아빠는 야구를 하면 당시 다니던 학원 4~5곳을 다 그만두게 해주겠다고 저를 설득했죠. 그래서 덜컥 시작했는데, 일주일 만에 너무 힘들어 또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빠가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한다’고 엄하게 붙잡으셔서 결국 여기까지 온 거죠(웃음).”

- 어머니는 아들의 야구 입문을 흔쾌히 찬성하셨습니까.

“오히려 엄청 반대하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전교 1등을 도맡아 했거든요. 엄마는 야구를 하더라도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거셨고, 실제로 저는 5학년 때도 전교 1등을 유지했어요. 그러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운동부 특성상 4교시까지만 듣고 훈련을 하러 가야 했어요. 5, 6교시에 있던 수학을 단 한 시간만 빠져도 수업을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라고. 늘 자신 있던 수학이 어느 순간 외계어처럼 느껴졌어요. 결국 엄마에게 학업 병행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그때서야 엄마도 공부를 내려놓으라고 허락해 주셨어요.”

- 탄탄한 신체 조건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전자 덕분이겠습니다.

“엄마는 169㎝로 큰 편이신데, 아빠는 본인이 171㎝라고 주장하시지만 제가 보기엔 170㎝가 안 되세요(웃음). 사실 저도 초등학생 때까지는 키가 엄청 작았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갈 때 14㎝가 훌쩍 자라면서 그때 이미 180㎝ 가까이 됐어요.”

- 현역 시절 부모님께서 자주 해주셨던 조언이나 당부가 있었나요.

“아빠는 늘 ‘운동선수의 성패는 99%의 노력과 1%의 재능으로 갈린다’며 노력의 가치를 강조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예체능 세계는 70%가 타고난 재능이라며 매번 장난스럽게 반박하곤 했죠(웃음).”

- 선수 시절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한 모범생이었다더군요. 술·담배를 멀리한 것도 부모님의 교육 영향인가요.

“부모님께 가정교육을 단단히 잘 받은 건 사실이에요 솔직히 초등학생 때까지는 아버지가 무척 무서웠는데, 중학생이 되자 ‘너도 컸으니 이제 대화를 하자’며 존중해 주셨어요. 그 과정을 통해 타인과 논의하며 결론을 도출하는 법을 배웠죠. 그래도 고3 때까지 통금 시간이 밤 10시였을 정도로 엄격하셨어요. 사고를 치면 안 된다는 인식은 어릴 때부터 뼈에 새겨져 있었고요. 참고로 술은 스무 살 이후부터는 마셨어요(웃음).”

- 주량은 얼마나 되나요.

“앉은 자리에서 소주 3병…”

이때 옆에 앉아있던 매니저들이 슬쩍 비밀을 폭로했다. 그는 “황재균은 소주 10병 이상을 마셔도 끄떡없어 별명이 ‘황이슬’”이라는 것이다. 주사는 전혀 없지만, 술자리가 무르익을수록 주변 사람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다정한 성격 덕분에 같이 마시는 이들을 늘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귀띔도 보탰다.

- 종목을 불문하고 유소년 선수의 부모님들은 온종일 연습장과 경기장을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하곤 하던데요.

“부모님이 맞벌이하셨기에 그러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도 농협 테니스 선수로 뛰시다가 은퇴 후 은행 직원으로 계속 근무하셨거든요.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저와 여동생은 늘 집 근처에 사시는 이모할머니 댁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황재균씨는 “야구장에 설 때 분비되는 도파민이 정말 엄청나게 강한데, 지금은 그걸 느낄 수 없어 몸을 혹사해 그 결핍을 대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6.6.29 이준헌 기자

황재균씨는 “야구장에 설 때 분비되는 도파민이 정말 엄청나게 강한데, 지금은 그걸 느낄 수 없어 몸을 혹사해 그 결핍을 대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6.6.29 이준헌 기자

- 건담 프라모델 조립이 취미라죠.

“지금은 안 해요. 대신 크로스핏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죠. 하루에 서너 번씩 나눠서 총 4시간 정도 해요. 중간중간 개인 트레이닝(PT)을 받고 매일 한강공원도 10㎞씩 뛰어요. 식단 조절까지 병행했더니, 선수 시절보다 10㎏이 빠져 현재 88㎏을 유지하고 있어요.”

- 선수 생활을 은퇴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몸을 혹사하는 건가요.

“야구장에 설 때 분비되는 도파민이 정말 엄청나게 강해요. 하지만 은퇴한 지금은 그걸 느낄 수 없잖아요. 그래서 몸을 혹사할 정도로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며 그 결핍을 대체하는 것 같아요.”(그는 체력 경쟁 대회인 하이록스 참가를 목표로 운동을 시작했다가, 내친김에 7월 말 바디 프로필 촬영까지 계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회가 된다면 재혼해 내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어요. 현재 만나는 사람이 있나요. 없다면 어떤 이성이 잘 맞을까요.

“현재 만나는 사람은 없고, 특별히 정해둔 이상형은 없어요. 연상이나 연하든 상관없이 대화가 통하고 끌리는 사람이 좋아요. 굳이 꼽자면 저와 함께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면 좋겠고, 키는 조금 컸으면 해요. 한 170㎝ 정도?(웃음).”

스포츠 세계의 냉정한 승부를 온몸으로 겪어낸 뒤 예능이라는 새로운 그라운드에 선 황재균. 그가 펼쳐 보일 ‘인생의 두 번째 전성기’의 서막이 이제 막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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