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엔진 중 하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 미국 IT매체 ‘IGN’.
펄어비스의 오픈월드 게임 ‘붉은사막’이 지난달 11일, 출시 83일만에 글로벌 600만 장 판매를 돌파하며 K-게임의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붉은사막’은 콘솔 게임치고는 이례적으로 이용자 피드백을 반영한 빠른 패치와 업데이트로 장기 흥행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
블랙스페이스 엔진으로 구현된 ‘붉은사막’ 속 원경 이미지. |펄어비스
업계는 ‘붉은사막’의 놀라운 성공 배경으로 자체 엔진인 ‘블랙스페이스 엔진’의 기술력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블랙스페이스 엔진으로 구현한 고품질 그래픽과 역동적인 전투 시스템, 다양한 상호작용 등 오픈월드 요소와 함께 출시 이후의 빠른 대응력이 맞물리며 이용자들의 신뢰를 끌어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출시 40여 일만인 5월 1일 업데이트한 1.04.00 패치의 경우, 콘솔 기준 29GB, PC 기준 37GB에 달하는 용량으로 글로벌 업계를 놀라게 했다. DLC(다운로드 가능 콘텐츠·확장팩) 출시에 버금갈 정도의 대규모 패치에 대해 해외 매체들은 “경이로운 패치 속도로 비현실적”이라며 “대부분의 서구권 스튜디오는 펄어비스가 하는 패치 방식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블랙스페이스 엔진은 기존 상용 엔진(언리얼, 유니티 등)에 의존하지 않고 글로벌 AAA급 대작을 개발하기 위해 구축된 핵심 기술로, 시작은 전작인 ‘검은사막’ 개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펄어비스가 제작한 다큐영상 ‘펄어비스는 왜 게임엔진도 직접 만들었을까?’를 보면, 한마디로 “우리 게임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필요 때문이었다. 단순히 그래픽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상용 엔진으로는 원하는 기능을, 원하는 시점에 넣기가 쉽지 않다”라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었다.
블랙스페이스 엔진으로 구현된 ‘붉은사막’ 속 원경 이미지. |펄어비스
당연히 상용 엔진이라는 쉬운 길을 버리고, 게임 개발과 동시에 자체 엔진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붉은사막’ 개발 기간이 늘어질수록 자체 엔진을 고집하는 김대일 의장과 개발팀에 대한 비난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뚝심으로 버텨낸 끝에 결국 ‘붉은사막’을 통해 ‘자체 엔진의 꿈’을 실현하며 K-기술력을 글로벌 시장에 새롭게 각인시키는 주역이 됐다.
글로벌 개발자 컨퍼런스(GDC) 등에서도 극찬을 받았던 블랙스페이스 엔진의 강점은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극사실적인 실시간 그래픽과 레이트레이싱(Ray Tracing, 광원) 기능으로 시각적 정밀함과 자연스러운 환경 표현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예를 들어, 낮과 밤의 주기, 아침 햇살부터 깜깜한 밤까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빛의 경로, 대기의 산란 등을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계산해 시각적 디테일을 극대화한다.
블랙스페이스 엔진으로 구현된 ‘붉은사막’ 속 원경 이미지. |펄어비스
둘째, 고도화된 상호작용 및 물리 엔진으로 게임 속 사물과 캐릭터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살아있는 오픈월드’를 구현한다. 캐릭터가 안개 속을 걸을 때 안개가 입체적으로 헤쳐지는 장면, 물의 흐름과 조수의 움직임, 캐릭터 머리카락 한올 한올의 움직임, 전투에서 가해지는 힘의 크기에 따라 문이나 바리케이드가 조각나는 정밀한 차이 등이 대표적이다.
셋째, 심리스(Seamless) 대규모 오픈월드에 최적화됐다고 설명한다.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화면 중심과 외곽의 디테일(LOD)을 실시간 조절하는 기술을 통해 숲, 중세 도시, 설산, 사막을 로딩 없이 자유롭게 횡단하거나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미국 IT 매체 ‘Wccftech’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기 힘든 작은 디테일과 날씨 등 상호작용 수준에 놀랐다. 이런 요소들은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이다”라는 평가를, 영국 ‘Gamereactor’는 “블랙스페이스 엔진은 해상도와 선명도, 그리고 월드의 생동감을 구현하는 면에서 한층 더 최적화됐으며, 이는 업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정도”라고 극찬을 내놓기도 했다.
‘붉은사막’ 게임속 실제 전투 이미지. |펄어비스
마지막으로 외부 리스크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상용 엔진은 엔진회사의 정책 변화와 업데이트 방향에 따라 프로젝트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체 엔진은 “우리 게임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애초의 목표처럼 100% 최적화된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블랙스페이스 엔진은 범용성을 위해 무거운 코드가 얹어진 상용 엔진과 달리 펄어비스의 자체 개발 게임에 최적화돼 있어 버그 수정과 업데이트 등 라이브 서비스에서 엄청난 강점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펄어비스는 ‘붉은사막’ 출시 후 불과 두 달여 만에 이용자 피드백을 반영한 패치를 15회 이상 진행하는 놀라운 속도전을 통해 게임의 완성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아울러 기획 단계부터 멀티플랫폼 크로스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면서 콘텐츠를 업데이트할 때 PC와 콘솔 플랫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도 블랙스페이스 엔진의 강점이다.
이 같은 정점은 글로벌 커뮤니티에서의 호평으로 이어졌다. 레딧에서는 ‘싱글 게임인데 라이브 서비스 수준의 대응이다’, ‘10점 만점에 9.9점’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그렇다면 글로벌 개발사들이 블랙스페이스 엔진을 이용해 신작을 내놓는 상황을 보게 되는 날은 언제쯤 올까? 관련한 뉴스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펄어비스 관계자는 “현재는 엔진을 개방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아직은 기술력의 독점이 중요하다. 향후 개발할 신작에서 블랙스페이스 엔진을 이용해 우리만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