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테인먼트

영화 ‘왕사남’ 엄흥도를 만난다…시대의 태풍을 뚫은 유(柔)해진 그, 대구 군위에서~

입력 : 2026.07.08 23:44
  • 글자크기 설정

태풍이 지나갔다. 1453년 계유정난은 태풍이었다. 그날 이후 휘(본명) 홍위는 단종1년을 맞는다. 2026년 태풍은 폭풍이 됐다. 또다시 한반도는 단종을 연호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를 통해 스멀스멀 무덤을 나와 생전 못한 자신의 땅을 산책했으리라.

단(端)은 끝인데, 바르다는 뜻도 담겨있다. 애궂은 해석이다. 산자들이 자기들 편하라고 이기적으로 붙인 묘호다. 당시 그는 영화 속 박지훈보다 더 깊은 슬픔에 빠졌을테니….

너무도 다행인 것은 엄흥도의 존재다. 단종을 딛고 입에 풀칠 제대로 하려던 꼼수는, 비정한 정치적 논리 앞에 무너졌다. 엄흥도(극중 유해진)는 무지랭이가 맞았다. 잃을 게 없었던 그는 인간을 부여잡고 인간미를 지켰다. 그리고 인간으로 남았다. 그 인간을 찾아 떠난다. 묏자리가 몇 곳에 널렸고, 실제 묘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그 중 한 곳에서 ‘왕사남’의 그 남자 엄흥도를 만난다.

군위 엄흥도 묘

대구 군위군에 있는 엄흥도 실묘

대구 군위군에 있는 엄흥도 실묘

군위 엄흥도 묘

군위 엄흥도 묘

군위 엄흥도 묘

군위 엄흥도 묘

군위 엄흥도 묘. 엄흥도의 18대 직계 후손 엄종훈 씨가 엄흥도 묘소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군위 엄흥도 묘. 엄흥도의 18대 직계 후손 엄종훈 씨가 엄흥도 묘소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다시 주목받는 충의공 엄흥도의 묘가 대구광역시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있다. 엄흥도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내준 충신으로 유명하다.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엄명에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단종의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을 때 영월의 호장으로 있던 엄흥도 선생은 친히 관까지 준비해 단종의 장례를 치렀다. 이 후 은거하여 생을 마쳤으며 현종 때 송시열의 건의로 그의 자손이 등용되고, 숙종 24년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에 배향되었다. 순조 때 공조참판으로 추증되었으며, 고종 13년에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하사했다.

엄흥도 선생이 은거한 지역으로 영월, 청주, 군위 세 지역 중 하나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국학연구론 총 제3집에 발표된 논문 ‘충의공 엄흥도의 삶과 묘소 진위에 관한 고찰’을 통해 엄흥도선생은 군위에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으며 군위에서 전해지는 엄흥도 묘가 진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밝혀졌다.

엄흥도의 묘소가 있는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일대는 ‘충의공 엄흥도 역사탐방로’로 조성되어 있다. 묘소~전망쉼터~육각정자까지 이어지는 숲길로 산책하기 좋다. 묘소는 산중턱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비석에는 ‘증공조판서충의공엄공지묘(贈工曹判書忠毅公嚴公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묘소 앞에는 망주석과 석사자, 석등 등 석물이 남아 있다.

하목정

화목정

화목정

1604년(선조37)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이종문이 세운 정자로 1995년 5월 12일 대구시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

하목정이라는 명칭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맏아들 이지영에게 써준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우측 1칸에는 앞쪽으로 누 1칸을 첨가하고 뒤쪽으로 방 1칸을 더 만들어 평면이 정자형으로 구성되었다. 처마곡선이 부채모양의 곡선으로 된 특이한 형태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육신사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육신사 내부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육신사 내부

육신사

육신사

육신사

육신사

육신사

육신사

대구 달성군에 있는 육신사

대구 달성군에 있는 육신사

사육신 위패를 모신 육신사

사육신 위패를 모신 육신사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으로 일컫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박팽년 선생만을 모셔 제사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기일에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로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육신사의 전신인 낙빈사를 지어 제향해 오다가 1691년(숙종17) 낙빈서원을 건립하여 제사를 지냈다. 1866년(고종3)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함께 철거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위패를 다시 봉안하게 되었다.

이곳은 묘골마을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사육신 사건 이후 박팽년 가문도 멸문 위기에 처했지만, 후손이 극적으로 살아남으며 가문의 맥이 이어졌다.

이후 1974년 충효위인 유적정화사업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사당을 재건했다. 사우건물인 숭정사는 정면5칸, 측면3칸의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경내에는 이외에도 정면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인 숭절당, 외삼문, 삼층각 등이 있고 사당 앞에는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각기념비(1979년 건립)가 세워져 있다.

쉬어갈 곳

묘골마을에 자리한 한옥 카페 ‘묘운’은 충효당 곁에 들어선 새 명소다

묘골마을에 자리한 한옥 카페 ‘묘운’은 충효당 곁에 들어선 새 명소다

대구 달성군 묘골마을에 있는 카페 ‘묘운’

대구 달성군 묘골마을에 있는 카페 ‘묘운’

카페 묘운

카페 묘운

묘골마을의 한옥 카페 ‘묘운’은 박팽년 후손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2022년 12월 한옥 카페 ‘묘운’이 문을 열었다. ‘묘골마을의 구름’을 뜻하는 묘운은 박팽년의 22대손인 박상혁 씨가 운영하고 있다. 마을 안에는 박팽년의 7대손이자 금산군수를 지낸 박숭고가 인조 22년에 건립한 충효당이 남아 있다.

사진 위는 녹양구이, 아래 왼쪽은 대성장어, 오른쪽은 효령매운탕

사진 위는 녹양구이, 아래 왼쪽은 대성장어, 오른쪽은 효령매운탕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대구에는 녹양구이, 대성장어, 효령매운탕 등 맛집에서 여행의 피로를 해소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

기자 정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