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선수만이 아니다. 경기장이 안전해야 하고, 심판 판정이 공정해야 하며, 관중석의 질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있어도 경기장이 엉망이면 좋은 경기는 나오기 어렵다. 오늘날 온라인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은 단순히 사람들이 글과 영상을 올리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나고, 말하고, 믿고, 때로는 싸우는 거대한 디지털 경기장이다.
임지현 서강지속가능경영혁신연구소 센터장
스포츠만큼 이 문제가 민감한 영역도 드물다. 확인되지 않은 이적설과 부상 루머가 하루 만에 기정사실처럼 퍼지고, 승부조작이나 불법도박을 둘러싼 조작 정보가 선수 한 명의 커리어를 흔들기도 한다. 팬덤 사이에서는 상대 팀이나 선수를 겨냥한 허위 사실이 ‘응원’의 이름으로 유통된다. 뜨거운 응원은 스포츠의 힘이지만, 허위정보와 혐오는 응원이 아니다. 그 정보가 오가는 무대가 바로 플랫폼이다.
지난 7월 7일 시행된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개정법은 허위조작정보의 유통을 규율하고, 하루 평균 이용자 100만명 이상의 플랫폼(네이버, 카카오, 에이엑스지, 네이트, 디시인사이드, 구글, 메타, 엑스, 틱톡)에 신고 접수와 처리 절차, 이용자 통지, 자율 운영정책, 투명성 보고서 공개 등의 책임을 요구한다. 쉽게 말하면, 플랫폼이 더 이상 “우리는 공간만 제공했을 뿐”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경기장 주인이 관중석의 난동을 끝없이 방치할 수 없듯이, 플랫폼도 이제 허위정보와 혐오, 조작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퍼지는 상황을 외면하기 어렵게 됐다. 물론 플랫폼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어떤 기준으로 신고를 받고, 어떤 절차로 조치하며,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설명할 책임은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플랫폼의 책임이 곧바로 ‘삭제의 책임’만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허위정보를 막겠다는 명분이 지나치게 넓게 적용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 특히 스포츠 팬덤의 표현은 때로 거칠고 감정적이지만, 비판과 조롱, 의혹 제기와 허위사실 유포 사이의 경계는 늘 단순하지 않다. 플랫폼이 법적 부담을 피하려고 애매한 게시물까지 먼저 지워버린다면, 디지털 공간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조용해질 뿐이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개념이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이다. 플랫폼은 제품을 파는 회사와 다르다. 사람들의 말, 관계, 거래, 여론, 창작, 팬덤까지 연결한다. 그래서 플랫폼의 책임은 단순히 법을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용자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구조, 신고와 이의제기가 공정하게 처리되는 절차, 추천 알고리즘이 혐오와 자극만 키우지 않도록 관리하는 시스템까지 포함해야 한다.
스포츠로 비유하면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은 “좋은 경기장을 만드는 일”이다. 관중이 자유롭게 응원할 수 있어야 하지만, 폭력과 혐오는 막아야 한다. 심판은 필요하지만, 심판이 경기를 지배해서도 안 된다. 규칙은 분명해야 하고, 판정 과정은 설명 가능해야 하며, 억울한 선수와 이용자에게는 항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플랫폼의 책임도 이와 같다. 삭제할 것인가 방치할 것인가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누구에게 설명하며, 잘못된 조치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의 문제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플랫폼 책임 논의를 법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계기다. 그러나 법만으로 좋은 디지털 경기장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법은 최소한의 라인이고, 그 위에 신뢰를 쌓는 일은 플랫폼의 몫이다. 이용자 보호, 표현의 자유, 투명한 운영,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 함께 가야 한다.
앞으로 플랫폼의 경쟁력은 이용자 수나 광고 매출, 혹은 사람들을 얼마나 오래 붙잡아 두느냐 만으로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느냐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좋은 플랫폼은 사람을 많이 모으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믿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경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