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부터 시작된 테스트베드, 7번의 도전 과제 결과물
‘그랜저’는 지난 1986년 7월 출시 이래 40여 년간 사실상 국내 고급 세단 상품성 증대를 위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해왔다. 어찌보면 세단계 맏형 역할 아래 온갖 풍파, 다 겪은 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으로 치면 ‘팔자’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실제 1세대 그랜저(프로젝트명 YFL)는 현대차와 미쓰비시 자동차의 긴밀한 기술 제휴를 통해 탄생했다. 개발비를 줄여야 하는 일본 미씨비사와 88 올림픽을 준비하며 한국 최초 플래그십 세단이 필요했던 현대차가 맞손 잡고, 엔진도 빌려 개발한 차로 출발을 했다.
그랜저 1세대. 1986년 7월에 출시되었다
이후 양사는 각각의 명확한 목표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 차를 투자 개발했는데 중형 세단인 ‘쏘나타 Y2’ 산모 역할까지 한 차가 ‘그랜저’다. 1세대 그랜저 차량 플랫폼은 이후 현대차 중형 효자 모델 쏘나타Y2에 적용된 ‘Y2’였다.
‘그랜저’가 없었다면 국내 대형, 중형, 준중형 세단들의 계보가 복잡다단하게 이어질 수 밖에 없던 시절에 뿌리를 잡아준게 그랜저였고, 이 덕에 1세대 모델 대부분의 부품들은 쏘나타 Y2가 그대로 전수 받게된다.
■ 어쩌다 미쓰비시? 88 올림픽 앞두고 플래그십 필요했던 현대
익히 알려진 대로 1980년대 중반, 미쓰비시 자동차는 1세대 ‘데보네어’로 인해 고민이 깊었다.
일본 내 대형 세단 시장에서 토요타 센추리 등 경쟁사에 밀려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미쓰비시는 신형 데보네어 개발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랜저 1세대. 쏘나타 Y2와 같이 미쓰비시 자동차 엔진을 썼다.
하지만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신차를 개발하기에는 일본 내 고급차 시장 수익성이 불투명했다. 비싸고 큰 차에 대한 수요가 일본에선 그리 많지 않았다.
이때 현대차는 기존 플래그십 모델이었던 ‘그라나다’의 노후화로 이를 대체할 새로운 고급 세단을 찾고 있었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 앞두고 VIP 의전용 차량 필요성이 대두되던 시점이었다.
■ 기술과 비용의 교환, ‘공동 개발’ 최선의 선택
결국 미쓰비시는 현대차에 대형 세단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개발 비용을 분담하는 조건으로 ‘신형 데보네어 및 차세대 그랜저’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미쓰비시 입장에서는 현대차를 통해 개발비를 절감하고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할 수 있었고, 현대차는 최신 대형 세단 기술을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었다.
이러한 협업 끝에 1986년 7월 24일 출시된 1세대 그랜저는 대한민국 고급 세단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며, 이후 현대차 기술 자립과 글로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세대 그랜저
이를 두고 완성차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미쓰비시와의 협업은 단순히 차를 만드는 과정을 넘어, 한국 자동차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기술적 밑거름이 된 중대한 역사”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헤리티지를 지닌 그랜저는 지난달 7세대 그랜저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를 선보였다.
무려 40년이란 세월 뒤 나온 차세대 그랜저는 ‘1.6 터보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탑재했고, 디자인에는 첨단 설계 방식이 적용됐다.
지금의 7세대 F/L 그랜저, 어디까지 왔나
시스템 최고 출력 239마력, 최대 토크 38.7kgf∙m, 복합연비 18.4km/L를 달성한 이번 모델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 시간을 8.0초로 단축했다.
특히, 엔진 정지각 제어 및 모터 역위상 제어 기술을 통해 하이브리드 차량 특유의 진동과 이질감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엔진 시동 시 발생하는 진동을 기존 대비 최대 51% 저감하고, 실내 부밍 소음을 약 3dB 개선해 정숙성을 극대화했다.
또한, 하이브리드 세단 최초로 2열 리클라이닝 및 통풍 시트를 적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현대차는 차체 구조와 배터리 냉각 경로를 최적화하는 설계를 통해, 하이브리드 모델의 기술적 제약을 극복하고 뒷좌석 탑승객에게도 최상의 편의를 제공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기억 후진 보조, 듀얼 스마트폰 무선 충전 시스템 등 운전자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첨단 기능이 대거 탑재되어 만든 플래그십 세단이 지금의 ‘그랜저’다.
현대차 최초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도 더해진 준대형 세단이다.
이 OS는 17인치 중앙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현해 차량 정보와 콘텐츠를 보다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제공한다. 대형 언어 모델 기반의 생성형 AI 에이전트 글레오 AI도 추가됐다. 이를 통해 SDV 수준의 개인 맞춤형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