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장윤정(왼쪽)과 최근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친모 육모씨로 최근 당뇨 등으로 인해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든 모습. 독자 제공 및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른에게도 ‘참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기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피해 금액을 중요하게 본다. 얼마를 편취했는지, 피해자가 몇 명인지, 피해가 얼마나 회복되었는지는 사건의 규모와 처벌 수위를 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피해 금액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사기 피해의 고통은 금액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통장 잔고가 비는 것보다 더 오래 남는 상처가 있다. “내가 왜 믿었을까”라는 자책, “다시는 사람을 믿기 어렵겠다”는 불신, 그리고 주변에 피해 사실조차 말하지 못하는 수치심이 피해자의 일상에 오래 남는다.
가족관계와 유명세가 범행의 도구가 될 때
최근 가수 장윤정 씨의 모친으로 알려진 육모 씨가 투자 사기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육씨는 피해자들에게 “장윤정이 출연한 프로그램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라고 말하며 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장윤정 씨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는 메시지를 보여주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는 내용도 전해졌다.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인 만큼 혐의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사기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유명인의 이름, 가족관계, 방송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이용했다면 피해자는 더 쉽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 “유명인의 가족이니 믿어도 되겠지”, “친엄마가 딸을 이용해 거짓말까지 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가짜 카카오톡 메시지”를 만들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별도의 범죄가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 메시지가 피해자를 속이는 도구로 쓰였다면 사기죄의 죄질을 무겁게 보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그럴듯한 장면을 준비하고, 믿을 만한 상황을 연출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기는 가까운 사이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사기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접근해 벌이는 일만이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 이미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관계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 찜질방에서 알게 된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지인, 가족의 지인처럼 일상적인 관계가 사기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상대를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는 더 쉽게 마음을 연다. “설마 나를 속이겠어”, “이 정도로 아는 사이인데 거짓말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의심을 밀어낸다.
영화 ‘화차’나 여러 범죄 드라마에서 보듯, 거짓은 늘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친절한 말로, 때로는 안타까운 사정으로, 때로는 믿을 만한 관계의 얼굴로 다가온다. 현실의 사기가 더 무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해자는 속은 뒤에야 자신이 믿었던 말과 장면들이 모두 계산된 거짓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피해자는 돈보다 더 무거운 짐을 떠안는다. 잃어버린 돈보다 먼저 자신을 탓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 믿었는지, 왜 의심하지 못했는지, 왜 그때 멈추지 못했는지를 몇 번이고 되묻게 된다. 사기 범행이 악질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피해자는 재산을 잃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탓하는 시간까지 견뎌야 한다.
사기범죄는 피해 금액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피해액이 크고, 피해자가 많으며,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면 형량도 무거워질 수 있다. 피해 회복 여부나 합의 여부도 중요한 판단 요소다. 그러나 사기의 무게를 숫자로만 잴 수는 없다. 3천만 원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은 노후자금일 수 있고, 수백만 원도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돈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액수만이 아니다. 그 돈에 담긴 피해자의 시간과 삶의 무게도 함께 살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또 다른 상처가 될 때
이번 사건에서 더 안타까운 점은 장윤정 씨의 이름이 계속 거론된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장윤정 씨와는 무관한 모친의 단독 범행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윤정 씨 측도 오래전부터 연락을 끊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른 가족의 잘못까지 함께 짊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이름이 언급됐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책임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책임은 그 행위를 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계속 오르내리면 당사자는 사건과 무관한 곳에서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된다.
가족이라는 말은 대개 따뜻하게 들린다. 하지만 현실의 가족관계가 늘 따뜻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보다 가족이 더 어렵고, 더 아픈 존재일 수 있다. 오랜 시간 연락을 끊고 살아왔는데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시 과거의 상처가 불려 나오는 일도 있다.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말은 쉽게 던져지지만, 누군가에게 가족은 보호막이 아니라 짐이 되기도 한다.
수사가 멈춘 자리에서 피해자의 시간은 계속된다
수사기관의 어려움도 분명 있을 것이다. 피의자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휴대전화나 카드 사용 내역 같은 생활 반응마저 없다면 수사가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순간도 생긴다.
그러나 피해자는 그 시간 동안 계속 기다린다. 이 사건처럼 피해자뿐 아니라 사건과 무관한 가족에게까지 피해가 번지고 있다면, 수사기관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피의자의 소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처음부터 계획된 사기였다는 정황이 있고, 최근까지 누군가와 연락이 닿았던 사정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피의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피해자의 고통도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피해자의 하루는 그만큼 더 길어진다.
악질적인 사기에는 관용보다 책임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사기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물론 모든 사건을 무겁게 처벌할 수는 없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고, 피해 회복 여부나 반성의 정도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러나 반복적이고 계획적인 사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람의 관계와 신뢰를 이용하고, 피해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 장면까지 만들어냈다면 더 엄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전력이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이는 단순한 실수나 일시적인 금전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를 속이는 방식에 익숙해진 범행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속인다는 것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용하는 일이다. 그 사람의 판단을 흔들고,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잘못 내리게 만들며, 때로는 일상까지 무너뜨린다. 피해자는 돈을 잃은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을 탓한다.
법원도 이 점을 더 깊이 보아야 한다. 피해 금액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돈이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피해자가 어떤 관계를 믿고 돈을 건넸는지, 그 믿음이 어떻게 배신당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악질적인 사기범죄에 관대한 사회는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이번 사건은 아직 의혹 단계이고,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기는 돈만 빼앗는 범죄가 아니다. 사람의 믿음과 시간을 빼앗는 범죄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건과 무관한 가족에게 번지는 2차 피해를 막고,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신속하게 책임을 묻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이 사건을 바라보며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다.
■ 정태원 변호사는?
검찰청 재직 시절 2023년 대검찰청 상반기 우수공판부장을 수상하고, 2010년 검찰업무유공 검찰총장 표창을 받았다. 현재는 LKB평산에서 대표 변호사로 다양한 형사 사건과 대형 사건을 다루고 있다.